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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며느리의 지혜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8. 9. 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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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며느리의 지혜


              
"저, 애비야, 삼 만원만 주고 가렴."
"없어요!"
여든살 넘은 아버지가 회사에 출근하는 아들에게 어렵게 말했건만, 아들은 박정하게 돌아서 나갔다.
연만한 아버지는 이웃 노인들과 어울리며 얻어만 먹어, 오늘은 소주라도 한잔씩 갚아주고 싶었다.

설거지를 하다 부자간의 대화를 듣고 시아버지의 그늘진 얼굴을 훔쳐본 며느리는, 한참 무엇을 생각하더니 밖으로 달려나갔다.
버스를 막 타려는 남편을 불려세워 숨찬 목소리로 손을 내밀었다.

"여보, 돈 좀 주고 가요."
"뭐 하게?"
"얘들 옷도 사야하고, 여고 동창 계모임도 가야겠어요."
남편은 안주머니에서 몇만원 가량을 꺼내 헤아리며 점심값이 어쩌고, 대포값이 어쩌고 하는 모습을 보고, 몽당 빼았아 차비만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아파트 양지바른 벽에 기대어 하늘만 바라보는 시아버지께 그 돈을 몽땅 드리며 말했다.
"아버님, 이 돈으로 친구들과 소주도 사 드시고, 대공원에도 가시고, 바람도 쐬고 오세요."

연신 눈물을 쏟으려는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고마워서 말을 잊은 채, 어떻게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한참을 서 계셨다.
그날 저녁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왜 얘들 얼굴에 꾸정물이 흐르듯 이렇게 더렵느냐?"

고 물었다.
그 이튿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얘들 꼴이 엉망이 되었다.
새까만 손등이며, 며칠전까지만해도 반드레하던 얘들이 거지꼴로 변해갔다. 남편은 화를 내며
"당신은 하루 종일 뭐하길래. 얘들 꼴을 저렇게 만들어 놓았소?"
남편의 화난 소리에, 아내도 화난 목소리로,
"저, 얘들을 곱게 키워봐야. 당신이 아버지께 냉정히 돈 삼만원을 거절했듯이, 우리가 늙어서 삼만원 달래도 안 줄 거 아니예요? 당신은 뭣 때문에 얘들을 깨끗이 키우려고 해요?"

정곡을 찌르는 아내 말에 무언가를 느낀 남편은, 고개를 떨구고는 아버지의 방문을 열었다.
늙은 아버지는 아들의 무정함을 잊은 채,
"회사일이 고되지 않느냐?"
"환절기가 되었으니 감기 조심하고, 차조심해야 한다."

라며 어린애처럼 타이렀다.
아버지의 더 없는 사랑에 아들은 그만 엎드려 엉엉 울고 말았다.

독일 속담에도
"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키우나, 열 아들은 한 아버지를 봉양하기 어렵다." 
자식이 배부르고 따뜻한가 부모는 늘 묻지만, 부모가 아프고, 추운가를 자식들은 우선하지 않는다. 자식의 효성이 지극해도, 부모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한다.


지금 그대는 어떤 아들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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