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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의료와 특활비 

세상사는얘기/다산함께읽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8. 12. 2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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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의료와 특활비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30년 가까이 된 일이다. 박사과정을 겨우 마치고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할 때였다. 전철을 타고 가는 데만 1시간 20분쯤 걸렸다.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합하면 가고 오는 데 꼬박 4시간이 걸렸다. 강의는 당연히 서서 하는 것이고, 전철에서도 거의 앉지 못해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주 파김치가 되었다.


“대학은 시간강사를 착취함으로써 존립”


  강의는 2시간이었다. 1시간 강의를 하고 중간에 10분을 쉬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10분 동안 갈 곳이 없었다. 화장실에 가서 나오지 않은 소변을 쥐어짜거나 화단 옆에서 서성대다가 다시 강의실로 돌아갔다. 시간강사(요즘의 비정규교수)를 배려하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뒤 다른 어떤 대학에 강의를 나갔더니, 계단 아래 ‘강사휴게실’란 명패가 붙은 곳이 있었다. 열쇠를 달래서 열어 보았더니 책상과 소파, 탁자가 먼지와 거미줄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건물관리인이 열쇠 달라는 나를 한참 멀뚱히 바라본 것도 이해가 되었다.


  강의료가 풍성했다면 대학 안에 몸을 둘 공간이 없다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의료란 것은 생활은커녕 용돈에도 보탬이 되지 않았다. 언제 있을지 모르지만 교수공채에 응모할 때 이력서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강의를 나가는 것이 정확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게 강의를 다니다가 어쩌다 정말 운이 좋아서 지금 몸담고 있는 대학에 자리를 얻었다. 같이 공부하던 동료 중 대학에 자리 잡지 못하고 공부까지 접은 사람들이 허다한 사실을 떠올리면 나는 정말이지 재수가 좋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대학에 자리를 잡은 그해 어느 사립대학에 갔다가 시간강사 문제에 대한 발표를 들었다. 발표를 맡은 강사 선생님은 “대한민국 대학은 시간강사를 착취함으로써 존립하고 있다”고 직설하였다. 핵심을 찌르는 그 말을 듣고 대학에서 강사들이 착취에 저항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생각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예컨대 총장직선제가 시행될 때에도 강사(비정규교수)들은 선거권이 없었다. 교수는 물론이고 학부 학생들, 조교, 직원들도 정해진 비율로 투표권을 나눠 가졌지만, 정작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들은 단 한 표도 갖지 못했다. 대학은 연구하고 교육하는 곳이다. 강사들도 꼭 같이 그 일을 하고 있건만 전혀 대학 안에서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다. 당연히 지금도 없다!


개정 강사법에 필요한 재정은 뒷전


  최근 대학과 강사, 정부가 합의한 강사법이 국회본회의 통과했다. 착취와 열악한 처우의 개선을 외치며 비정규교수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태까지 일어나자 마지못해 강사법을 개정한 것이다. 하지만 개정된 강사법을 시행할 때 필요한 재정을 함께 마련한 것은 아니다. 법은 고쳐주지만, 고친 법에 따라 발생하는 추가 재원은 대학에서 알아서 마련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마다 강사를 해고하고, 개설 과목을 줄이고, 대형강의를 만들고, 졸업이수학점도 줄이겠단다. 이게 대한민국 대학(그리고 정부의 교육당국)의 민낯이다.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한 목소리가 있을 때마다 대학과 정부는 예산, 곧 돈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였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30년 동안 강의료를 제대로 지불할 능력이 없는 대학이 어찌하여 그렇게 규모를 키울 수 있었던가? 호사스런 건물을 어찌 그렇게 많이 지을 수 있었단 말인가. 또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특활비는 어디서 난 것인가? 4대강과 경인운하에 쏟아 부은 돈은 또 어떤가? 대한민국은 이제 해방 직후의 적빈(赤貧)의 나라가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이다. 강사법의 시행에 필요한 돈은 당연히 대학과 정부에서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글쓴이 / 강 명 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한국 철학

· 저서
〈신태영의 이혼 소송 1704~1713〉, 휴머니스트, 2016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휴머니스트, 2015
〈이 외로운 사람들아〉, 천년의상상, 2015
〈홍대용과 1766년〉, 한국고전번역원, 2014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천년의상상, 2014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 휴머니스트, 2012
〈조선풍속사 1,2,3〉, 푸른역사, 2010
〈열녀의 탄생〉, 돌베개, 2009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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