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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뜰로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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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0. 2. 2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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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뜰로 나가

 

주 오 돈(교사, 시인)

 

텔레비전 프로에 관심 두지 않은 지는 오래다. 요새는 눈길이 머물 만한 칼럼도 드물어 종이신문도 펼치지 않는다. 고작 휴대폰으로 뉴스를 몇 줄 검색하고 일기 예보만 눈여겨 살펴둔다. 코로나 사태로 바깥 활동에 제약이 따라 갑갑하기 그지없다. 자가운전을 하지 않아 버스를 타야 하는데 눈치가 이만저만 아니다. 면역력이 약한 기저 질환자를 둔 집에서는 더 신경 쓰인다.

 

어제 아침나절 집에서부터 걸어 교육 단지로 산책 나섰다가 충혼탑 사거리에서 녹색버스를 타고 북면 지인 농장을 둘러왔다. 귀로에 반송시장 노점 할머니한테 콩나물과 두부를 마련하고 농협 마트에 들려 과일을 샀다. 양손에 봉지를 들고 집으로 드니 아내는 펄쩍 뛰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원죄에다 세정이 안 된 손으로 시장까지 봐갔으니 치사는커녕 잔소리만 잔뜩 들어야 했다.

 

2월 넷째 목요일이다. 오전에는 집 안에 머물면서 어디로 산책 나가나? 행선지를 물색했다. 이른 점심을 먹고 빈 배낭 둘러메고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용호동 주택가를 지났다. 도청 후문으로 들어 도청 뜰로 들었다. 겨울을 지낸 잔디는 시든 채 봄을 맞았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목련 꽃망울은 연방 꽃잎을 펼칠 듯했다. 연못가 능수버들 가지는 파릇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정을 잘해 분재처럼 모양을 낸 매실나무는 매화가 활짝 피어 절정이었다. 그 곁에 자라는 산수유는 노란 꽃을 피워 화사했다. 마침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무렵이라 도청 앞 식당가로 식사를 나갔던 직원들이 우르르 청사 안으로 들어왔다. 경찰청 앞으로 가니 거기도 매화가 만발하였고, 목련은 가지마다 꽃망울은 오리 주둥이처럼 꽃잎을 벌리는 즈음이었다.

 

창원대학 동문 앞에서 창원중앙역으로 올라갔다. 철길 굴다리를 지나 용추계곡으로 들었다. 겨우내 비가 잦아 계곡에 흘러가는 물소리가 멀리 감치서도 들려왔다. 나목으로 겨울을 난 활엽수들은 수액을 빨아올려 잎과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응달 어디선가 생강나무도 꽃망울이 부풀어 꽃잎을 펼칠 태세지 싶다. 산수유꽃이 지면 생강꽃이 피어난다.

 

용추계곡 들머리 포곡정에 이르렀을 때 누가 곁으로 다가와 인사를 나누었다. 수 년 전 김해 어느 고교에서 정년퇴직한 대학 선배였다. 지난번 무학산 둘레길에선 고향 친구분들과 산행을 하던 선배였다. 그 초등학교 친구들과는 매주 정한 요일에 산행하고 점심을 같이 든다고 했다. 오늘은 개원하는 문화강좌 수강생으로 나가는 날인데 코로나로 휴강이라 산행을 나섰다고 했다.

 

계곡으로 오르면서 선배의 퇴직 후 근황을 들으면서 내가 갈 길을 먼저 밟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출렁다리를 건너 숲속 나들이길 이정표에서 선배와 헤어졌다. 선배는 계곡을 따라 좀 더 올라가 되돌아 나올 거라 했다. 난 비음산 날개봉으로 난 숲속 길을 걸어 고산 쉼터 쪽으로 나갈 일이 생겼다. 법원 뒤 창원축구센터 부근에서 대학 동기가 가꾸는 텃밭으로 갈 예정이었다.

 

산허리를 돌아가다 전망이 좋은 바위에 앉았다. 한동안 지자기를 받으면서 명상에 잠겼다. 마주한 정병산 산세를 한참 바라보다 일어났다. 숲속 나들이길은 산행객이 많이 다녀 길이 반질반질했다. 평일임에도 등산로에서 오가는 사람을 더러 만났다. 진례산성 남문 아래 고산 쉼터에서 대암산 약수터 방향으로 계속 나아갔다. 비음산으로 오르는 갈림길에서 창원축구센터로 내려섰다.

 

텃밭은 축구센터와 인접한 시청 소유 공한지였다. 동기는 어떤 계기로 연이 닿은 지인 소개로 십여 년째 농사를 잘 짓는다. 겨울을 난 푸성귀가 파릇하고 감자를 심어 놓았다. 내가 먼저 닿아 시금치를 자르니 동기가 퇴근해 나타났다. 쪽파와 배추도 뽑아주어 배낭에 담고 동기가 마련해 온 곡차를 노천에서 들고 내려왔다. 법원 근처에서 헤어져 나는 집까지 걸어왔다. 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