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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보따리

세상사는얘기/삶부추기는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1. 4. 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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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보따리

 


형색이 남루한 할머니가 보따리 두 개를 들고 거리를 헤매는 게 목격되었습니다.


"한 시간째 왔다갔다. 하네요. 할머니가 좀 이상해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이것저것 여쭤봤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보따리만 꼭 끌어안고 계셨습니다.


"우리 딸이 병원에서 애를 낳았어요.."
라는 말씀만 반복하셨습니다.


경찰관은 할머니가 슬리퍼 차림으로 보아 인근 주민이라 판단하고, 할머니 사진을 찍어 동네에 수소문을 해보았습니다.
마침내 딸이 입원한 병원까지 순찰차로 모시고 가게 되었습니다.

 

 


갓난아이와 함께 침대에 누웠던 딸이 조그맣게 외쳤습니다.


"엄마!"


엄마라고 불린 할머니는 주섬주섬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거기에는 다 식어버린 미역국과 나물반찬, 흰 밥이 들었습니다.


"어여 무라."


얼굴이 핼쓱한 엄마를 보고 딸은 가슴이 미어집니다.
치매를 앓던 엄마가 기억하는 건 단 한 가지 오직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병실은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을 앓으면서도 잊어버리지 않았던 사실 하나.


 '내 딸이 아이를 낳는구나'


어머니의 사랑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죽음의 직전, 혹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사랑하는 자녀를 걱정 하는 사랑.

 

* 카페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생>에서 펌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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