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전략
박종국
여우는 고슴도치를 기습할 전략을 무수히 짜낼 줄 아는 교활한 동물이다. 고슴도치 굴 주변을 빙빙 돌며 날이 어두워지도록 기다리다가 고슴도치를 덮칠 완벽한 순간을 기다린다.
늘씬하고 잘 생기고 발빠르게 간사한 여우와 촌스럽게 생긴 고슴도치와의 승자는 이미 예측된다. 고슴도치는 어기적어기적 거리며 점심거리를 찾아다니는 단순한 일상에 열중한다. 여우는 갈림길에서 교활한 침묵 속에 고슴도치를 기다린다. 고슴도치가 제 일에만 신경을 쓰면서 여우가 숨은 곳으로 다가온다.
'야, 이제 잡았다!'고 생각한 여우가 후닥닥 뛰쳐나가 번개처럼 앞을 가로지른다. 위험을 느낀 고슴도치는 여우를 올려다 보며 '또 만났군. 아직도 덜 배웠나?'하고 생각하면서 재빨리 몸을 말아 동그란 작은 공으로 변신한다. 공 둘레에는 작은 가시가 사방으로 돋았다. 사냥감 앞으로 달려온 여우는 고슴도치의 방어 태세를 보고 공격을 멈춘다. 숲 속으로 퇴각한 여우는 새로운 공격전략을 구상한다.
고슴도치와 여우 사이에 이런 싸움의 비슷한 버전을 매일같이 펼쳐진다. 그런데, 여우가 훨씬 교활함에도 이기는 건 늘 고슴도치다. 벌린은 이 작은 우화에 비유하여 사람을 여우와 고슴도치 두 가지 기본그룹으로 나눈다. 여우는 여러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며 세상의 그 복잡한 면면을 두루 살핀다. 그들은 '어지럽고 산만하고 여러 단계를 오르내리는' 탓에 자신의 생각을 하나의 종합적인 개념이나 통일된 비전으로 통합하지 못한다고 벌린은 말한다.
그에 반해 고슴도치는 복잡한 세계를, 모든 일을 한데 모아 하나의 체계적인 개념이나 기본원리와 개념으로 단순화 한다.
고슴도치는 세상이 제 아무리 복잡하건 관계없이, 모든 과제와 딜레마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단순한 고슴도치 컨셉으로 축소시킨다. 고슴도치는 고슴도치 컨셉에 다소나마 부합하지 않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프로이트와 무의식, 다윈의 자연선택, 마르크스와 계급투쟁,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원리, 애덤 스미스와 분업 등은 모두 고슴도치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복잡한 현상을 단순화 했다. 고슴도치는 멍청한 게 아니고 오히려 정반대라는 논리다. 심원한 통찰의 본질이 단순함으로 귀결된다.
고슴도치는 본질적인 일만 보고 나머지는 무시한다. 성공한 사람, 성공한 기업, 성공한 지도자를 모두 고슴도치 근성으로 보면 무리일까?
|박종국에세이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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