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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좋아하면 망하고, 전쟁을 잊으면 위태롭다

세상사는얘기/다산함께읽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3. 2. 1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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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좋아하면 망하고, 전쟁을 잊으면 위태롭다


김태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새삼 우리의 평화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전쟁과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일까?

  조선은 건국 후 유교의 인(仁)을 근본 가치로 내세웠다. 공자와 맹자는 전쟁에 관한 언급을 삼갔지만, 조선은 전쟁을 소홀하게 여기지 않았다. 조선초기 유학자 관료였던 변계량(1369~1430)이 쓴 ‘진설문답(陣說問答)’이라는 글에서 인용한 두 문장을 보자.

  “나라가 비록 크더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고, 천하가 비록 평안하지만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롭다.”(國雖大 好戰必亡, 天下雖安 忘戰必危) 조선시대 주요 병법서였던 <사마법>에 나온 말이다. 강대국이라도 전쟁만 일삼아서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동서고금의 진리다.

  “병(兵)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 병을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단속하지 못해 스스로 불타 죽는 재앙이 있다. 병을 싫어해서도 안 된다. 병을 싫어한 자는 반드시 남에게 병을 넘겨주는 화(禍)가 있다.”(兵不可好 好兵者必有不戢自焚之災 亦不可惡 惡兵者必有授人以兵之禍) 남송(南宋) 학자 호안국의 말이다. ‘병(兵)’은 군대와 무기를 아우르는 뜻이다. 간추려 말하면, 군사를 좋아하면 스스로 망하고, 군사를 싫어하면 남에게 망한다고 하겠다.

  변계량이 군사적인 내용의 글을 쓰면서 왜 이런 인용문을 덧붙였을까? 유교의 성현인 공자와 맹자의 반전평화의 추구와 어긋나지 않느냐는 고지식한 의문을 해소하면서, 전쟁과 군사에 대한 균형 잡힌 생각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쟁 없는 세월이 오래되고 성리학 공부에 너무 몰두했던 탓인지, 조선의 전쟁에 대한 생각과 방비는 느슨해졌다. 그 결과가 임진년과 병자년의 전쟁으로 겪은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큰 고통이었다. 안타깝게도 두 전쟁을 겪은 후 조선후기 사회는 명분과 실제가 더욱 괴리되고, 위정자들은 허위의식과 인순고식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대해 깊은 반성과 실천적 궁리의 흐름도 없지 않았으니, 훗날 ‘실학’이란 개념으로 포착했던 바로 그것이다.

  대표적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전쟁과 평화에 관한 다수의 글을 남겼다. 그는 척화(주전)론자들의 허장성세와 무책임성을 통렬하게 비판했으며, 기본적으로 평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군사의 중요성을 조금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군사는 백 년 동안 쓰지 않더라도, 갖추는 것을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된다.”(兵可百年不用 不可一日忘備) ‘병비(兵備)’란 글의 첫 문장이다.

  “한두 세대 동안 전쟁의 참화를 면했다 하더라도, 무사(武士)를 노예처럼 보고 병기(兵器)를 똥막대기처럼 천하게 여기며, 조정에서 강론하는 것이 문벌의 높고 낮음에 불과하며, 선비들이 하는 일이 문장의 잘되고 못됨을 따지는 것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이웃나라에 소문이 날 것이니, 어찌 문단속을 게을리해 도적을 불러오는 격이 아니겠는가? 귀중한 보물을 지닌 자는 밤길을 가지 않고 큰일을 맡은 자는 적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고 나는 들었다. 이는 겁 없이 위태로운 곳에 가지 않고, 안일에 빠져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같은 글에서 한 성호의 주장이다.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부분 미국과 서방의 언론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른 시각도 있다. 미국 중심의 일방적 세계질서에 책임을 묻는 반론이다. 관점의 균형에 일조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강대국 논리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항전의지를 간과하고, 동유럽 사람들이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서 겪었던 아픔의 역사를 도외시할 수 없다. 우리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에 끼어서 아픔의 역사를 겪었지 않았는가? 동병상련이다. 어떤 거룩한 명분도 침공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하여 세계 모든 곳에서의 전쟁이 하루 속히 그치길 바란다. 현대의 전쟁에서 명백한 승패란 있기 어렵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많은 희생자가 있기 마련이고, 이를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이 ‘따로’ 있을 뿐이다. 우리가 민족 상잔과 국토 파괴의 전쟁을 겪은 지 어느덧 70년이 지났다. 밖으로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고 안으로 갈등 요소를 잘 관리하면서, 전쟁을 걱정하고 평화를 굳건히 해야 할 터이다.



글쓴이 / 김 태 희(역사연구자)
       - 전  다산연구소장, 전 실학박물관장
       - 저서 <실학의 숲에서 오늘을 보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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