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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是非)와 이해(利害)의 기준에 따른 네 등급

세상사는얘기/다산함께읽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3. 2. 2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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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是非)와 이해(利害)의 기준에 따른 네 등급


권 순 긍(세명대학교 명예교수, 전 한국고전문학회 회장)


   다산(茶山)의 큰아들인 정학연(鄭學淵, 1983~1859)이 유배지 다산에게 유배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홍의호에게 편지를 해서 항복을 빌고, 강준흠과 이기경에게 꼬리치며 동정을 받도록 애걸해”보라는 청탁 권유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다산은 이 제의를 거절하고, 사람의 행위를 평가하는 시비(是非)와 이해(利害)의 두 기준을 제시하며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보내준 편지 자세히 보았다. 천하에는 두 개의 큰 기준이 있다. 하나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의 기준이다. 이 두 개의 큰 기준에서 네 개의 등급이 생겨난다. 옳음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 것이 가장 으뜸이고, 다음은 옳음을 지키지만 해를 입는 것이다. 그 다음은 그릇됨을 따라가 이로움을 얻는 것이며, 가장 낮은 것은 그릇됨을 따르고 해를 입는 것이다.”(<답연아(答淵兒)>에서)

  세상의 가치 기준인 시비와 이해에 따라 크게 네 가지 등급이 존재함을 말한 것이다. 요즘의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담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옳은 일을 하고 이로움을 얻는 경우가 가장 으뜸이지만 그런 행복한 조합은 쉽게 기대하기 어렵다.


  옳은 길을 지키지만 피해를 입는다

  오히려 두 번째 등급으로 옳은 길을 가지만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우지만 정치적으로 박해를 당해 잡혀가거나 옥고(獄苦)를 치르는 경우를 한국현대사에서 얼마나 많이 목격했던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그랬고,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여기에 저항했던 수많은 정치인과 민주인사들이 해를 입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군사정권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할 위기에 내몰렸으며, 김영삼 대통령도 수없이 투옥되는 고통을 겪었다. 그러면서도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또 어떤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검찰에 불려나와 모욕을 감수해야 했지만 결국 자신도 몰랐던 시계를 선물로 받은 수치심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모두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인물들이다.

  어디 정치인뿐이랴.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그리고 제주 4.3 희생자와 4.19와 광주 5.18 희생자 등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영령들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그럼에도 가끔 튀어나오는 4.3과 5.18의 유치하고도 해괴한 망언들은 기가 막히다.)

  최근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를 검찰에서 여러 번 소환하더니 이제는 작정하고 잡겠다 벼르고 있다.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중요한 사실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잣대가 검찰에게 있다는 것이다. 검찰에서는 대장동에서 뭔가 나오리라 기대하고 뒤지고 있으며, 성남 FC 후원으로 갔다가, 쌍방울 변호사비 대납으로도 수사하고, 위례 신도시를 거쳐 백현동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이야말로 전방위 몰이식 수사다. 한 건만 걸리기만 해봐라 하고 있으니 어찌 하겠는가?

  문제는 과연 사익(私益)을 얻었느냐 하는 점이다. 만약 (검찰의 주장처럼) 김만배가 428억원을 주기로 약정했다는데, 그 돈의 일부라도 챙겼다면 명분을 잃고 마지막 등급으로 추락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두 번째 등급에 머문다. 이익을 챙기지 않았다면 옳음을 사수해야 한다.

  다산도 아들에게 보내는 답장에서 “죽이려 한다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오직 고즈넉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물며 해배(解配)의 관문을 막는 사소한 일을 가지고 절조를 잃어버려서야 되겠느냐. 비록 내가 절조를 지키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세 번째 등급도 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네 번째 등급으로 떨어지는 것만은 면하려는 것이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릇된 길을 따라가 이익을 얻는다

  반면 그릇된 길을 따라가 이익을 얻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최근 대장동과 관련해서 이른바 ‘50억 클럽’의 실체로 곽상도 전의원의 아들에게 화천대유에서 퇴직금으로 50억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재판 과정에서 그 돈이 뇌물이 아니라고 ‘무죄’(!)로 판결난 것이다. 곽상도는 국회의원 당시 부동산특조위원으로 활동했고 하나은행 등 금융권 청탁 등으로 화천대유의 대장동 사업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아들과 따로 살기에 뇌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조국 교수의 딸 조민은 재판과정에서 600만원 장학금 받은 것이 뇌물로 판정 되었다.) 그렇다면 6년차 대리가 퇴직금으로 50억을 받는 것이 한국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일일까? 삼성물산에서 10년간 근무했던 과장의 퇴직금이 5천만 원 정도인데 이에 비해 무려 100배에 해당되는 돈이다. 어떤 계산법이 적용됐는지 2심 재판을 지켜볼 일이다.

  김학의 전법무부차관의 ‘별장 성접대’ 사건은 또 어떤가? 건축업자 윤중천으로부터 받은 별장 성접대에서 촬영된 비디오에 본인이 그대로 나오는데도 검찰에서는 특정인으로 확정할 수 없다며 ‘증거불충분’으로 계속해 무혐의 처리하여 불기소했다. 그런데 9년간 5번의 재판을 거친 끝에 작년 8월 11일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재판부에서는 해당 동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이 김학의란 사실은 인정하나(이제 와서!), 범죄 사실의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으며 받은 금품의 직무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그러면 왜 이제까지 검찰은 같은 비디오를 보면서도 특정인을 확정짓지 못했나? 참으로 소가 웃을 일이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검찰 출신으로 고위직을 지냈다는 점이다. 그릇된 길을 따라가 해를 입는 네 번째 등급에 해당돼야 하지만 시비를 가리는 잣대가 검찰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로움을 얻는다. 어찌할 것인가? 다산이 <애절양(哀絶陽)>에서 한탄했듯이, “다 같은 백성인데 어찌 이다지 불공평하냐![均吾赤子何厚薄]”고 문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글쓴이 / 권 순 긍(세명대학교 명예교수, 전 한국고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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