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다 가도록 선암사의 600년 된 고매화는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았다. 광양의 홍쌍리 여사네 매화는 이미 만개해 절정이 지나버렸다는데, 선암사 고매화는 아직도 숨만 고르고 있다는 종무소 스님의 전언이다.
▲ 무우전 담길에서 600번째 봄을 맞고 있는 선암사 고매화
ⓒ2003 장권호
선암사의 600년 된 고매화는 아무에게나 만개한 자신의 자태를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스님의 귀뜸이 빈말이 아니었는지 이번 3월에만 두 번 헛걸음을 했다. 시인 황동규도 몇 번의 헛걸음 끝에 딱 한번 만개한 선암사 고매화를 친견(?)할 수 있었고, 그때의 감동을 <풍장40>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선암사 매화 처음 만나 수인사 나누고 그 향기 가슴으로 마시고 피부로 마시고 내장(內臟)으로 마시고 꿀에 취한 벌처럼 흐늘흐늘대다 진짜 꿀벌을 만났다.
결이 다 드러난 은은한 질감의 오래된 나무기둥과 낡은 기와 지붕으로 된, 여염집 사랑채 같은 느낌을 주는 무우전(無憂殿) 널찍한 마루에 앉으면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늘어선 10여 주의 고풍스런 고매화의 자태를 완상할 수 있다. 선암사 스님이 귀뜸해 준 바로는 저녁 햇살이 비켜드는 오후 다섯시 즈음이 가장 환상적이라고 한다. 3월 말에서 4월 초가 되어야 비로소 만개하는 이들 고매화의 깊고 두터운 향기로 지금 선암사 무우전(無憂殿) 주변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 무우전 마루에 앉아 조개산 자락을 바라보면 비로소 안다.
ⓒ2003 장권호
운수암에서 흘러드는 개울물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무우전(無憂殿) 마루에 앉아 정남향으로 바라다 보이는 조계산 자락의 안온한 산세에 눈길을 주면 비로소 이 집 당호가 무우전(無憂殿)임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운이 좋아 저녁 예불 시간에 맞출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일이 없다. 법고와 운판, 목어 소리에 이어 긴 여운으로 느린 걸음의 범종 소리가 고샅길을 건너 낮은 담장 너머로 들려오면 어둠에 묻혀 가는 담장 너머 고매화는 이윽고 은은한 꽃등을 켜기 시작한다.
무반주로 거닐기 좋은 절집
‘왜 하필 선암사냐’고 물으면 딱 부러지게 이유를 대지 못해도 선암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냥 선암사가 좋단다. 선암사는 그냥 좋은 절 집이다. 몇 번을 찾아도 그냥 좋은 절인 것이다. 좋은 사람이 그냥 좋은 것처럼.
▲ 매화
ⓒ2003 장권호
고건축을 전공한 한 선배에 의하면 선암사 공간 배치의 미덕은 쉽게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깊고 그윽함에 있다고 했다. 그것은 여느 절 집의 공간 배치와는 달리 선암사 공간배치가 다양한 주제와 변조를 가지고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보통의 절들은 그 중심이 대웅보전이고 나머지 공간은 그냥 주변을 이루는 형식으로 되어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대웅전 주변 한번 둘러보고 사진 한장 찍고 나면 딱히 할 일이 없어 그냥 맨숭맨숭 돌아갈 일밖에 없는 경우를 우린 경험하곤 한다.
하지만 선암사는 이런 형식에서 벗어나 설선당, 창파당, 심검당, 원통전 등 각각의 독립된 공간들이 저마다 그들의 독자적인 주제와 모습을 가지고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 하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중앙 집중적 공간 배치가 아닌, 주변 공간들이 각각의 주제와 독자적인 모습으로 다양한 변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 한 모금이면 영혼까지 맑아지는 선암사 약수.
ⓒ2003 장권호
그래서 선암사는 몇 번을 찾아도 지루하지 않고 또한 찾을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을 연출하는 절 집이라고 한다. 들어서는 공간마다 각각의 주제가 있기 때문에 감동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할까? 그래서 선암사는 이른 저녁 공양을 마친 후나 아니면 이른 새벽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여기저기 무반주로 거닐기에 딱 좋은 절 집이다. 산너머 송광사에 비해 비록 규모는 작지만 그 깊이와 폭에 있어서 결코 뒤지지 않는 매력이 선암사에는 분명 있다.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암사 뒷간
아주 오래 전 건축가 김수근이 어느 잡지에 기고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 건축의 과학성과 아름다움, 이름 없는 장인들의 빼어난 눈썰미를 칭찬하면서 그는 선암사 뒷간 이야기를 잠깐 했다. 이 땅에서 가장 깔끔하고 아름다운 화장실을 꼽으라면 자기는 주저하지 않고 선암사 뒷간을 꼽겠다고. 만일 그가 김수근이 아니었다면 그냥 웃고 넘겨버렸을 것이다.
한겨레 신문의 최성민 기자도 언젠가 선암사 명물 세 가지를 말하면서 선암 매화와 선암 김치 그리고 뒷간 이야기를 했다. 아무튼 이 땅에서 글쟁이로 밥먹고 사는 사람치고 선암사 화장실 이야기를 안한 사람이 드물 정도이니 화장실로서는 톡톡히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 건축가 김수근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이라 예찬한 선암사 뒷간.
ⓒ2003 장권호
대각암 가는 길 해천당 옆에 자리잡은 丁자형 뒷간이 그것이다. 입구에 가로로 걸려진 ‘ 뒤’라 쓰여진 문패 때문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지만 이내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박장대소다. 선암사를 초토화시켰던 정유재란의 전란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유서 깊은 내력의 선암사 뒷간은 재래식 화장실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냄새에서 완벽하리만큼 자유롭다. 출입구와 양면 벽이 성근 나무 창살로 처리되어 있고 화장실 깊이가 만만치 않아서인지 통풍성에서도 정말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뒷간 밑바닥에는 마른 풀과 재로 두텁게 채워져 있어 시각적으로도 부담이 없다.
그리고 건축학적으로도 아주 빼어난 건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거기 앉아 보아야 비로소 선암사 뒷간의 미덕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어둑하고 서늘한 뒷간 공간에 앉아 성근 나무 창살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과 꽃핀 매화를 내다보면서 창 너머 따뜻한 봄 햇살과 바람 소리에 눈과 귀를 맡긴 채 우리의 우환(?)을 해결할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둑한 바닥에서 우리가 눈 배설물은 고요히 아주 고요히 삭아가고 있을 것이다.
여행의 마무리
광주에서 40분 거리인 선암사는 평일 오후에도 훌쩍 다녀오기에 별 부담이 없다. 만일 저녁 예불 시간에 맞출 수 있다면 극적 연출로 사람을 붙잡아 매는 그 드라마틱한(?) ‘선암사 저녁 예불’도 참관할 수 있다. 저녁 예불이 끝나고 경내 여기저기 불이 밝혀질 무렵 어둠이 내린 진입로의 흙 길을, 좋은 사람과 함께 아다지오로 걷는 저녁 산책의 여유로움까지 만끽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