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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입맛을 잃을 수 있는 그런 시기라 생각이 되니 뭐 맛있는 것 없을까 싶어 고민에 빠지기도 합니다. 지난달에는 사랑니 때문에 도통 먹질 못했습니다. 잇몸이 붓고, 헐어서 병원 치료도 받아가면서 고생스런 그런 한 달을 보냈습니다. 그 원인이 사랑니를 뽑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 했습니다. 그 원인을 해결하고 나니 먹고 싶었던 것을 제대로 먹고 싶은 충동은 더 일어났습니다. 사실, 어머니 태권도를 다니면서 통장님이 늘 하신 얘기가 있습니다. 여름이 다가오기 전에 쫄면 파티를 한번 하자고요. 그런데 그 얘기가 나온 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싶었지만 도무지 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통장님의 바쁜 일상 속에서 하루 날을 잡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집안일로 며칠 도장에 못 나갔습니다. 다른 어머니들과의 교류가 며칠 없었던 탓인지 며칠 전 아침, 통장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부탁한 쫄면에 넣을 양념이 도착했으니 점심시간 전에 도장으로 급히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야채 준비하고 면 삶고 하려면 바쁘니 다시 전화하지 않도록 알아서 얼른 오라고 말입니다. 오월엔 참 행사가 많았습니다. 통장님은 그제야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쫄면파티를 하려나 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가서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갔습니다. 집안일 때문에 안나가고 있다가 먹는다고 가려니 그것도 참 민망하고 미안했습니다.
어머니 태권도를 다니지 않는 주위 다른 분들도 초대를 했습니다. 상가 아래 슈퍼아주머니, 식육점, 옷가게, 반찬가게, 포장마차분식집 아주머니까지 다 불렀습니다. 작년엔 30인분을 했다고 했습니다. 열명 좀 넘는 사람들이 그 30인분을 다 먹어서 한동안 쫄면의 ‘쫄’자도 생각하기 싫었다는 얘기를 늘어놓습니다. 그런 쓰라린(?) 기억을 없애기 위해 올해는 20인분으로 줄였다고 말은 했지만 그 분량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통장님의 통솔아래 야채와 면이 만나 쫄면은 비벼졌습니다. 매콤한 냄새가 코끝을 스며듭니다. 입안엔 어느새 침이 고이고, 눈은 통장님의 손놀림 따라 바쁘게 돌아갔습니다. 침묵을 깨고 통장님은 한마디 하십니다. "자, 이제 그릇 이리 주라." 그 한마디에 모두 긴장했습니다. 먹고는 싶은데 그릇에 담기는 양만큼은 남길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릇 하나씩을 들고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지요.
쫄면도 쫄면이지만 그때의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더욱 그 맛을 첨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일장에서 어묵 사오다 조용한 나무그늘에 차를 주차시킨 다음 아이들과 쭉 앉아 그 어묵 다 먹고 돌아온 기억도 좋았고, 옆집 새댁의 '아줌마 콧바람 쐬러간다'는 명목상 이유를 들어 정자바닷가며, 감포, 경주의 유적지를 다녀온 것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사이 20인분의 쫄면은 바닥을 보였습니다. 작년처럼 못 먹는다던 사람들은 어느새 주어진 분량의 그릇을 비웠습니다. 미처 도장으로 나오지 못한 다른 한 사람의 쫄면 한 그릇만이 남았습니다.
그릇을 챙겨 도장에서 나오는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흐뭇한 표정의 저를 보고 통장님은 그러십니다. "우째, 맛있었고, 재밌제? 사는 기 다 이런 게 아니겠나?" 저의 양손에 있는 그릇의 무게보다 마음은 더없이 가벼워짐을 통장님은 눈치채셨나 봅니다. | ||||||||||||||||||||||||||||||
2004/05/22 오전 10:54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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