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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돈얘기로 시작해 돈얘기로 끝나는 하루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7. 1. 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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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하루 일과는 어떻습니까?
'돈'얘기로 시작해 '돈'얘기로 끝난 흉측한(?) 나의 하루
텍스트만보기   서부원(ernesto) 기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챙겨 읽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입니다. 연말연시인 까닭인지 금연이나 건강, 재테크 등 한 해 소망과 설계에 관련된 특집 기사들이 늘 그렇듯 많습니다. 황금돼지의 해니 뭐니 하면서 부(富)와 관한 정보가 유난히 많아진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지금껏 주식 투자는 물론, 복권 한 장 사 본 적이 없는 저는 주변의 지인들은 물론, 식구들에게도 '천연기념물' 취급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신문의 경제면 기사는 그저 지나쳐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눈에 거슬리는 구절이 눈에 띕니다. 몇 가지 설문에 응하라고 하더니만, 대체 저-와 같은 부류-더러 '금융 문맹'이니 반성(?)하랍니다.

   오늘의 브리핑
벌써 잊었나
2003년 카드대란
"'국민후보'로 수구세력의 집권 막자"
강재섭 "조철봉이 요즘 너무 안해"
시민기자, UN에서 반 총장을 만나다
'정권교체' 위해 거리로 나선 목사들
납득하기 힘든 불법파견 무혐의 결정
유영철을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정치권의 반값아파트 논쟁 감상법
"공중에 20분간 방치된 기분 아세요"
머리숙인 원희룡 "초심은 변치 않아"
아침부터 '문맹' 대접을 받으니 기분이 떨떠름해집니다. 대충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을 하려니 차 안 라디오에서 한 연예인 신혼부부의 파경 소식이 들립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양가의 혼수 문제가 얽힌 폭력 사건이라고 합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돈과 폭력이 하늘이 맺어준 인륜지대사라는 결혼에 얽혀 있다는 자체가 소름 돋게 합니다.

시작종이 울렸습니다. 기말시험도 끝나고 방학을 코앞에 두고 있어 수업 시간에 짬을 내어 '20년 후의 자신의 미래 모습'에 대해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용인즉슨 거창하게도 '미래의 자신에게 띄우는 편지'입니다. 아이들이 괴발개발 써내려간 편지들을 대충 읽노라니 대부분 자신의 직업과 결혼에 대한 얘기뿐입니다.

(꼭 20년 뒤에) 의사와 변호사가 되어 있는 아이, 최고의 일식 요리사가 되어 유명 호텔 주방장이 된 아이, 동시통역사가 되어 유엔본부에서 근무하는 아이, 프로게이머가 되어 세계 무대를 평정한 아이, 조금은 엉뚱하지만 로또에 당첨되어 별장과 골프장을 짓고 낭만적으로 사는 아이 등 각양각색의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아이들마다의 장래 직업과 행복의 기준이 다 돈으로 수렴되고 있었고, 그들의 다양한 바람과 기대들의 공통점을 뽑아 보면 모두 '돈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뿐 뭐 특별하달 것이 없습니다.

점심시간. 급식소로 향하는데 길가에 근사한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습니다. 번듯하고 말끔한 고급차들인데 더러 이름도 모르는 외제차들도 끼어 있습니다. 듣자니까 학교운영위원회 회의가 있는 날입니다. 주차된 차들로 미루어보아 어느 정도 돈 좀 있는 분들이 대부분인 모양입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각종 행사 등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과정 전반을 두루 심의하고 자문하는 중요한 기구입니다. 학교의 일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지역 인사와 학부모들로 구성되는데, 공교롭게도 (물론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없이 사는' 분들이 문을 두드리기에는 문턱이 조금 높은 듯해 보입니다. 하긴 휴일도 아닌 평일에, 그것도 대낮에 시간을 낼 수 있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나른한 오후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들어오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립니다. 학부모의 상담 전화입니다. 방학을 앞두고 자녀와 '수준이 맞는' 아이들끼리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막무가내로 학원에 보내는 것보다 괜찮은 방법이다 싶었습니다. 과목별 성적과 흥미, 성격, 친한 정도 등 어떤 것을 더 고려해야 하나 싶어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한두 가지만 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성적(정확히는 석차)과 어디에 사는가(정확히는 아파트의 이름과 평수)만 보면 '대충 답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또, 사는 곳과 성적은 정비례하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결국 '수준에 맞다'는 의미는 비슷한 경제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던 셈입니다.

괜히 (성적이 좋은 나쁘든) 가난한 아이가 끼면 피차 어색해지고 상처 받을 수 있다는 얘기도 친절하게(?) 덧붙였습니다. 자녀의 방학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노라니 담임인 제가 학부모에게 상담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완벽하게 꿰고 관리하는 학부모에게 담임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맞장구쳐주는 일밖에는.

퇴근하는 길, 지난 학기 '독서교육'에 관해 수강했던 대학엘 들렀습니다. 몇 푼 되지 않는 수업료였지만 연말정산 관련 서류를 챙기려던 이유에서였습니다. 캠퍼스 곳곳에 현수막이 내걸려 있는데 조금 과장하자면 파란 하늘을 덮어버릴 정도였습니다. 차를 교문 근처에 세워두고 걸으며 하릴없이 현수막에 적힌 내용을 읽어보았습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온통 각종 학원 광고, 면접 특강과 외국어 시험 등 취업에 관련된 내용뿐입니다. 고루한 생각 탓인지, 그런 것보다는 각종 세미나 안내 현수막과 심지어 정치적인 내용의 대자보가 훨씬 더 익숙했던 십수 년 전 제 대학 재학 시절과 자꾸만 비교가 되었습니다.

대학의 꽃이라는 동아리도 취업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고, 대학 도서관도 학문 연구 공간이라는 말조차 남우세스러워진, 이미 '취업센터'가 된 현실을 나부끼는 현수막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먹을거리 몇 가지 살 요량으로 조그만 동네 마트에 들렀습니다. 이태 전까지만 해도 소소한 물건 하나를 사도 제품도 다양한데다가 값도 싼 대형 마트를 찾았습니다. 그것이 '합리적인' 소비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찬찬히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많이 싼 건 사실이지만 묶음으로 샀을 때의 얘기이고, 필요 이상으로 산 것은 결국 낭비되는 꼴이니 딱히 싼 것도 아니며, 오고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자동차 기름값 등 이러저러한 걸 감안하면 굳이 대형 마트까지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과일 등을 상자로 살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늘 그렇듯 동네 마트는 한산합니다. 그다지 넓지도 않은데 황량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주인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물론 과장된 표현일 테지만) '얘들 과자 부스러기하고 어른들 담배'밖에 팔리지 않는답니다. 화려한 조명과 음악에 24시간 영업을 하고, 게다가 날마다 TV 등에 광고를 내는 등 돈을 마구잡이로 뿌려대는 대형 유통업체에 완전히 굴복당한 모습입니다. 카운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표정이 어째 좀 불쌍하다 싶습니다.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볼 생각으로 TV를 켜니, 참 착하게 생긴 강원도 산골의 꼬마 아이가 카메라 앞에서 자기가 다니는 학교를 살려달라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마을 주민들도 학교가 마을을 유지시키는 중심 공간일 뿐만 아니라, 학교가 사라지면 다른 곳의 사람들이 이사를 오기는커녕 몇 남지 않은 주민들마저 이곳을 떠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입만 열면 세계화와 효율, 경쟁력을 외치는 정부가 전교생이 세 명 뿐인 산골 학교를 가만둘 리 없습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것, 미래를 위한 영속적인 투자이며 (현실이 아닌) 이상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도 요즘 정부의 시각에서 보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일 뿐입니다.

전라북도와 강원도의 어느 지자체에는 산부인과 병원이 단 한 군데도 없다고 하고, 웬만한 마을마다 꼭 하나씩은 있던 초등학교 건물이 폐교된 채 흉물스럽게 방치된 경우가 부지기수랍니다. 면적으로 따진다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땅이 버려지고 있는 셈인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밑 빠진 독에 마냥 물 부을 수는 없는 것'이라며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다 그놈의 돈 때문입니다.

늘 하던 대로 잠자리에 누워 지나온 하루를 되짚어 봅니다. 가만히 보니 돈 얘기로 시작해서 돈 얘기로 끝난 흉측한(?) 하루였습니다. 오늘의 경험이 저만의, 그리고 유별난 것이 아닐진대 지금 우리 이웃들 역시도 좋든 싫든 '돈의, 돈에 의해, 돈을 위해'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겪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을 지켜주고 존재를 부각시키며 위로해주는 유일한 도구를 돈으로 여기고, 그 달콤한 맛에 사람들 모두가 완전히 취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하늘 한 번 올려다 볼 여유조차 없이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얼굴에는 돈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삶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맹목적인 확신이 서려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되짚어보니 어째 좀 섬뜩합니다.
저희 집 가훈(?)은 '적게 벌어서 적게 쓰자'입니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 '자족'과 '성찰' 등을 되뇌며 하루를 반성하는데, 오늘은 어째 이런 아름다운 다짐말들이 생뚱맞고 사치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2007-01-03 19:2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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