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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나, 고향 간다. 넌 안 오니?" 한가위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기 하루 전, 초등학교 동창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인점에서 시댁어른들께 드릴 선물을 고르고 있던 나는 친구의 전화에서 고향이라는 말에 "응? 무슨 고향!"하면서 되물었다. 그러자 그 동창생은 "너 벌써 고향도 잊었어? 네가 옛날에 살았던 동네 말야"하고 어이없다는 듯이 말한다. 그때서야 나는 "응…고향?"하며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 고향. 어찌 잊었겠는가? 고향집 앞에는 금강이 흐르고, 뒤로는 고즈넉한 산이 있었다. 그리고 봄이 되면 그 뒷동산은 진달래꽃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마을 어귀에는 수양버들나무가 가로수를 이루며 여름철 그늘을 만들어 줬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이런 명절이 다가올 때 한 번도 두고 온 내 고향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뭍에서 섬으로 시집온 지 20년이 지났지만 명절 때 고향을 찾은 때는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갓 시집 와서는 시부모님 마음을 거슬리지 않기 위해 친정 가겠다는 말을 못했고, 이제는 그 습성에 젖어버렸다. 아니면 벌써 어쭙잖게도 집안 어른이 되어 버렸는데, 큰살림 맡아 하면서 어찌 친정 가겠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내 자신을 가두는 게 맘 편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게다.
잠시 하던 일을 중단하고 아파트 베란다에 걸쳐 있는 한라산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조금은 서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등산을 결심했다. 추석 연휴를 틈타 객지에서 내려온 대학 2년생인 아들 녀석도 오늘은 고향의 포근함에 푹 빠져 있다. "엄마, 저 모처럼 집에 왔으니 쉬고 싶은데, 아빠랑 한라산 가면 안돼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던 아들 녀석도 이제는 꽤 철이 들었는지, 아니면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했는지 등산 채비를 한다. 한라산으로 향하는 길은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렸다. 안개를 뚫고 달리는 길이 온통 뿌옇다. 그런데 웬일인지 한라산 영실 입구에 다다르자 안개가 걷히고 가을 햇살이 비친다.
한라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에 발길을 멈춘다. 아직은 설익은 낙엽 하나를 뚝-하고 따서 흐르는 계곡에 띄웠더니 어느새 물줄기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간밤에 한라산에는 무척 비가 많이 왔나보다. 해발 1400고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노라니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앞서가던 남편도 아들 녀석도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참다못한 아들 녀석은 저만치 가던 길을 다시 돌아와 내 등을 밀기 시작한다. "너나 빨라 가거라. 엄만 쉬엄쉬엄 갈 테니." 그래도 그 녀석은 마음이 편치 않는지, 가다가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고향을 찾은 사람들, 그리고 고향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서로 엉켜 오르내리는 한라산. 산은 언제든지 자연 그대로다. 어느 땐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빨리 가라고 채찍을 가하기도 한다.
구름을 머리에 이고 산에 오르니, 그 위에는 가을 햇빛이 우리를 기다린다, 선작지왓에서 바라본 윗세오름은 고향마을 뒷동산 같았다. 고즈넉이 자리잡은 오름을 보니 동산에서 뛰어 놀던 어린시절 친구들이 생각난다. 이제는 까마득히 이름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동산 아래에는 늘 연기가 자욱했다. 지금 한라산에 하얗게 피어나는 저 안개처럼 말이다.
컵라면에 김밥, 캔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면서 우리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남편과 아들은 자신들의 고향 정취에 푹 빠져 있을테지만, 나는 자꾸만 정상의 뒤편, 구름이 걷히는 고향 마을을 바라봤으니 말이다. 이산가족도 아니고, 비행기를 타고 가면 금방 갈 수 있는 곳인데도 왜 이렇게 친정 부모님 성묘 한번 제대로 가지 못했을까? 그러나 누가 알랴. 내가 내 고향을 헤아리는 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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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6 오후 9:21 ⓒ 2004 Ohmynew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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