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피랍과 선교 세계의 분쟁 지역 가운데 하나인 아프카니스탄에서 발생한 23명의 한국인 인질 납치 사태가 안타까운 2명의 희생자와 함께 나머지 21명이 무사히 귀국하게 됨에 따라 42일 간의 피말리는 고통과 가슴 졸였던 시간들이 마무리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분당에 소재한 샘물교회의 단기 해외 선교사업에 따른 일회성 사건으로만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생채기를 남겼다. 인터넷 상에서의 수 많은 논쟁 뿐 만이 아니라 철저하게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한 국가의 비밀정보기관의 수장인 국가정보원장이 탈레반 조직과의 협상을 현지에서 직접 지휘한 사실이 세계의 언론 앞에서 노출되고 마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말았다. 국제적으로 금기시 하고 있는 테러 조직과의 직접 협상을 할 수 밖에 없었을 정도로 절박했던 상황을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는 이런 현실 앞에서 기독교계에서는 국민 앞에 송구스럽다고 얘기하면서도 정부가 탈레반 세력에게 약속한 협상 내용 중에서 향후 아프간 선교를 금지하겠다는 조항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분당샘물교회 박은조 목사를 즉각 구속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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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의 종교시평] 개신교는 배형규, 심성민의 죽음에 책임지고 거듭나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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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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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일 넘게 온 국민을 불안, 초조하게 만들었던 아프간 피랍사태가 끝났다. 아니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그동안 정부의 보도 방침에 너무나 고분고분하게 순종하던 공중파, 대형 언론들도 이제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최근 며칠 동안 각 언론들이 언급하고 있는 논점은 정부의 구상권 청구에 대한 논란과 공격적 해외선교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아직도 봉사냐 선교냐 하는 어이없는 논란이 현존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두들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필자는 아프간 피랍 초기 ‘분당 샘물교회, 살인방조죄로 처벌하라’라는 칼럼을 쓴 바 있는데, 이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아프간 피랍 사건의 마무리와 향후의 교훈을 위해 구상권 청구 같은 민사소송도 필요하며 선교제국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개신교의 선교 방식에 대한 제어방법도 검토되어야겠지만, 이번 사건은 범죄의 측면으로도 다뤄야 한다고 믿는다.
1)살인방조의 혐의
형법 제252조 ②항에 의하면 “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라는 규정이 있다. 이번 샘물교회의 단기선교팀에 속한 자들이 출발하기 전 유서를 작성했다는 세간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유서를 작성하게 한 자는 분명히 살인 방조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검찰은 유서 작성 여부를 철저히 수사해야만 할 것이다.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은 이 범죄의 형량이다.
2)업무상과실·중과실 치사상의 혐의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형법 제268조는 말한다. 고 배형규 목사는 샘물교회로부터 봉급을 받고 있던 부목사였으며 이번 단기선교팀의 인솔자였다.
봉사이든 선교이든 배형규 목사에겐 업무상의 여행이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배목사는 근무 중 사망했음에 틀림없다. 배목사를 아프간에 파송한 자, 즉 박은조 샘물교회 당회장은 아프간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배목사에게 업무를 지시했으므로, 업무상 과실 혐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검찰은 박은조를 즉시 구속하고 그의 혐의에 대해 철저히 추궁해야만 한다.
3)헛된죽음
험한 말을 한 마디 해야겠다. 아무런 보람이나 가치가 없는 죽음을 우리는 흔히 ‘개죽음’이라고 말한다. 죽음은 '어떻게 죽었느냐' 보다, '어떻게 살았느냐'를 더 중요시 한다는 말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아름다운 죽음이란 없다. 그러함에도 산자는 죽은자를 기억하며 남은자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기 위해 죽은자를 포장하는 관행을 허락하고 있다.
배형규 목사의 죽음은 업무 중 순직했다고도 불 수 있다. 반면 심성민(29)의 경우는 너무나 억울하게 죽은 측면이 강하다. 그의 아버지 심진표 경남도의원(고성2, 한나라당)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아들은 믿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측이 데리고 갔다가 말했으며, 집에는 전혀 알리지도 않았다고 교회 측을 비난했다.
그리고 "아들은 직장 초년생으로 있다가 주말에 시간이 나서 교회에 가서 잠시 봉사를 한 것으로 안다. 아이는 그렇게 믿음이 있는 교인은 아니었다. 그런데 데리고 갔다"고 말했다. 일설에 의하면 사귀는 여자의 권유에 의해 최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으며 이번 아프간 행도 여자 친구와의 동행이 주목적이었다는 소문이다. 항간의 세설이 참이라면 심성민은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경망한 표현으로 소위 ‘개죽음’을 당한 셈이다.
소송을 하겠다는 심진표 의원의 심정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이라크, 아프간 파병에 절대적 지지를 표했던 한나라당 당원의 입장으로서 정부에 대한 소송 운운은 아무래도 지나친 듯하니 참조 바란다. 샘물교회와 한민족복지재단 등에 대해 고소를 하겠다면 힘이 닿는 한 도움을 주고 싶다.
4)배형규 순교자 만들기
한기총의 말 바꾸기는 그 집단이 위선의 집단임을 명확하게 증명하는 듯하다. 한기총은 8월29일자 논평에서 “분쟁지역에서 고통 받는 소외된 이웃을 향한 인류애로 아프가니스탄을 향했던 봉사단원들이 피랍되어 온 국민들께 심려를 끼치게 된 것에 대해 한국교회는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사회와 국민을 향해 더욱 스스로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자 노력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관계당국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가운데 분쟁지역 등에 대한 선교에 신중을 기할 것과 국내외 소외된 이웃을 향한 봉사와 섬김에 더욱 애쓸 것을 다짐한다.”라고 발표함으로서 공격적 선교에 대한 여론의 질타에 대해 어느 정도 반성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30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등 기독교 주요단체 관계자들의 사후대책 실무회의에선 “이웃사랑을 기본으로 하는 한국교계로서는 (아프간 내에서의 기독교 선교금지 조항에)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다시 위기상황에 빠진다면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정부와의 일전 불사를 외치던 한기총이 31일 오후 2시59분께는 “정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아프간 내에서의 기독교 선교금지 조항’에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입장을 다시 선회했다.
기독교의 말 바꾸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더욱 문제되는 것은 대외용 발언과 내부에서의 의견 조율이 너무나 상이하다는데 있다. 샘물교회와 한민족복지재단 등 이번 사건의 관련자뿐 아니라 대부분의 개신교 관련 인사와 단체들은 이번 아프간 건은 봉사활동이었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이들의 주장이 참이라면 배형규 목사의 경우도 봉사활동 갔다가 탈레반이라는 과격무장단체에게 재수 없게 죽음을 당했다고 해야 옳다.
그러나 개신교 내부에선 배형규 순교자 만들기가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고발한다. 배목사는 예장(고신)에 속하는 샘물교회의 부목사 겸 청년회 담임목사를 겸하고 있었지만 정작 신대원은 예장(통합)측의 장신대를 나왔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예장(통합)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故배형규 목사님 헌화하러가기>라는 사이버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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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의 홈페이지에 마련된 '故배형규 목사님 헌화하러가기' 사이버 분향소 ©예장 통합 홈페이지 | 이곳에서의 댓글은 회원만이 가능하므로 대부분 개신교인들이 조문을 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8월31일 현재 56명이 참여했는데, 거의 모든 방문객들이 배목사의 죽음을 순교로 단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몇몇 댓글을 소개하겠다.
*이병우 인도네시아 가나안한인교회 2007-08-31 오전 12:49:14 목사님께서 흘리신 순교의 피가 마지막시대 세계선교의 썩어져가는 밀알이 되길 기원합니다.
*임영범 신덕교회 2007-08-30 오전 10:53:19 끝까지 흔들림 없이 믿음의 선한 본을 보여주신 유족들에게 위로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친구요 동기인 배목사님은 주의 선지자처럼 먼저 순교했지만. 그 열매는 반드시 아프카니스탄 땅에서 거두게 될 겁니다. 남은 유족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축복합니다. 항상 기도하는 동기들이 있음을 잊지 마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정채화 헝가리 2007-08-27 오전 4:58:20 목사님의 순교(사랑의 원자탄)로 말미암아 구 공산 국가였던 헝가리 땅에까지-현지교회와 시민들은-진정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빕니다. 목사님의 순교가 헛되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삶의 현장에서 복음 들고 앞장서겠습니다. 유가족 모든 분들께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최중빈목사 참된교회 2007-08-25 오후 9:27:0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씀하신 주님!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며 순교하신 배목사님의 순교의 피가 헛되지 않게 하소서. 그 곳에 주님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임순임 광주벧엘교회 2007-08-25 오후 2:49:37 이제는 구름떼와 같은 허다한 증인의 한 무리 속에 서계시는 목사님...대한민국은 이제 선교의 장자로 더욱 더 견고하고 확신에 찬 전략으로 그 사랑의 빚을 계속 갚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전진할 것입니다...샬롬 또 샬롬~
*이양일목사 문래교회 2007-08-24 오후 9:03:03 배형규 목사님의 순교가 평양부흥100주년을 즈음하여 새로운 부흥에 밑거름이 되셨습니다. 사모님과 따님과 모든 유족에게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인용하지 않은 다른 내용도 상기 글과 대동소이한데, 궁금하신 분들은 예장(통합)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길 권한다. 2004년 카메라 앞에서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하는 김선일을 순교자로 만들기에 주저하지 않았던 온누리교회 및 한국 개신교 집단들이 배형규를 순교자로 만들지 않을 리 없다. 대외적으론 언론과 여론의 추이에 따라 봉사니 뭐니 하며 연막을 치지만 그들의 속성상 배형규의 피는 어쩌면 그들에게 복음일 지도 모른다.
한국 개신교의 선교제국주의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판단된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신학교 졸업자의 수를 대폭 줄이고, 목사의 정년을 낮추는 등 구조조정을 해야만 되겠지만, 외부의 충격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여 진다. 배형규, 심성민 두 젊은이의 죽음에는 한국 개신교가 공동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이번 기회에 박은조 및 아프간 피랍 사건에 관여했던 기관 단체의 책임자들을 구속, 처벌함으로서 법의 준엄함 그리고 생명의 존귀함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국 개신교는 다시 태어나는 아픔을 감수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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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1 [10:44] ⓒ대자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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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니까 보따리 까지 달라”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종교의 영역을 넘어서 속된 말로 오버한 것인가! 한 국가의 국제적 위상까지도 뒤흔들 만큼 엄청난 사건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선교란 무엇일까? 이슬람 근본주의를 자처하는 탈레반을 포함한 아프카니스탄의 무슬림과 이들에게 봉사와 구호의 손길을 통해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선교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것인가? 기독교(카톨릭, 개신교, 정교회, 성공회 등 포함), 이슬람, 유대교에서 공히 신앙의 조상이라고 추앙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처하는, 같은 하나님을 따르는 신앙인들이 이스마엘과 이삭의 관계 만큼이나 서로를 질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작금의 지구촌의 현실이 중동지역을 포함한 세계의 여러곳을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닐까? 기독교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사랑”의 정신과 이슬람의 5대 의무 중 하나인 “자선”의 베품이 왜 하나될 수 없는가? 이것은 분명히 자신의 선교 방식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우리” 이외의 세력은 사탄으로 규정하는 양 극단의 근본주의자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슬람의 정통 근본주의 정신을 수호하고 신앙의 지침을 세우고 성전(?)을 주도하는 신학생인 탈레반과 세계에서 미국과 더불어서 기독교(프로테스탄트)의 근본주의가 가장 활발한 한국의 공격적인 선교 방식이 이런 커다란 충돌을 불러온 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판단이 맞는다면 또 다른 아프간 피랍 사태는 재현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의 “한국의 선교 방식은 19세기에 미국에서 행했던 방식을 똑같이 따라하고 있다.”는 외신보도를 접하면서 서울광장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를 목청껏 외치며 참여정부와 진보 개혁세력에게 친북좌파라는 굴레를 덧씌우며 저주의 기도를 퍼부어대던 보수 기독교 세력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진정한 선교는 “삶 자체”라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에게 모범이 되고 존경받는 삶을 살다보면 굳이 하나님을 말하지 않더라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말이다.
해외 단기선교는 단지 여행일 뿐이라는 동료 기독교인의 말에 공감한다. 어느 한국의 기독교인이 네팔에 여행가서 몰래 남의 건물에 들어가 불상의 목을 베고 그 앞에서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인천공항에서 아프간 여행을 자제하라는 경고 문구앞에서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또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부르짖으며 걸식 노숙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구걸을 하는 스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회개하라고 외치는 전도자의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철저히 배타적인 신앙 행태 때문이다. 내가 믿는 신 외의 모든 신은 그저 우상일 뿐이고 이를 믿는 자 들은 영원히 증오해야 할 사탄의 세력에 불과한 것이다. 종교의 다원주의를 철저히 배제하고 우리 이외에는 어떤 형태의 신앙 행위도 부정하는 배타적인 신앙 속에서 아프카니스탄의 무슬림과 국민들은 베푸는 자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풀면, 단지 고맙게 받아 들여야만 하는 한낱 대상에 불과했던 것은 아닌지 진심으로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교란 이질적인 그들의 문화를 그대로 인정하고 더욱 더 낮은 자세로 다가가 그들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함께 극복해 갈 것인지, 베푸는 자의 입장에서 스스로 선을 베풀고 있다는 자기 만족감이나 카타르시스 해소의 대상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야할 동시대인으로서 더불어 사는 삶 자체로 진심으로 다가갈 때 세상이 하나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선교”는 가능할 것이다. 교회가 세상 위에 군림하여 세상과 하나님을 연결하는 메신저로서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하나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도록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일진대 작금의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선교 자세는 주객이 전도되어 선교를 위해서 선교의 대상이 존재하는 것 처럼 착각에 빠진 것은 아닌지 진정으로 되돌아 보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계속할 때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