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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세 번째 대권도전의 의미와 과제

세상사는얘기/다산함께읽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7. 9. 1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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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세 번째 대권도전의 의미와 과제
  '참신함․역동성' 제고가 관건…내부로는 '변화와 혁신'
  2007-09-15 오후 4:40:53
  권영길 후보가 세 번째 대권 도전의 장정에 나섰다. '대표선수 교체론'을 앞세운 심상정, 노회찬 후보의 거센 추격을 권 후보는 지난 두 차례의 대선출마를 통해 구축한 인물의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따돌렸다.
  
  권영길의 기회와 과제
  
  이로써 권 후보는 민노당의 실질적 얼굴로서 연말 대선까지 당의 중심에 서게 됐다. 대국민 인지도와 당내 조직력의 우위, 권 후보가 그동안 보여온 통합적 지도력에 대한 당원들의 평가가 어우러진 결과다.
  
  하지만 당초 무난한 낙승 예상을 깨고 결선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을 거치며 권 후보가 입은 정치적 내상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대선 3수'에 대한 여론의 시각이 어떻게 작용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권 후보의 주장대로 경륜과 관록, 안정과 신뢰감에 대한 '플러스 요인'이 있지만 참신함이나 역동성에서 떨어진다는 평가도 상존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85%에 달하는 인지도에 비해 2%대에 맴도는 후보 지지율의 괴리를 극복하는 게 권 후보의 우선적 과제.
  
  권 후보 측은 "추석 직후 당과 후보의 지지율 급상승에 모든 승부를 걸겠다"며 "추석 직후 실시하는 여론조사에서 대파란을 일으킬 자신이 있다"고 밝혔다. 경선 과정에서도 권 후보는 추석까지 후보 지지율을 1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권 후보 측은 "언론만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달라진 민노당, '뉴 권영길'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권 후보 측이 '다이내믹 권영길'을 강조한 것도 '역동성 부족'이란 평가를 의식한 대목. 이와 관련해 권 후보 측은 "파격적인 행보와 발언을 통해 민노당을 둘러싼 각종 부정적 이미지를 혁파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당장 16일 대선후보로서의 첫 행보에 현충원 방문이 포함된 점이 눈길을 끈다. 권 후보는 광주 망월동 5.18 묘역 참배 직후 민노당 창당 이후 처음으로 현충원을 참배한다. 낡은 이념대립을 뛰어넘고 남과 북 상호 체제인정을 위한 상징적 행보라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현충원 참배에 대한 당내의 곱지 않은 시각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특히 현충원 참배의 연장선에서 경선과정에서 공언한 북한 혁명열사릉 참배를 실제로 추진할 경우 이에 대한 논란이 더욱 증폭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민노당 최대 정파인 자주파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당선된 게 아니냐는 세간의 눈총과 연결되는 민감한 사안이어서 추진 여부가 주목된다.
  
  정파를 고리로 패인 위기요인은 경선 후유증 극복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노회찬, 심상정 후보가 대선 승리를 위한 '어시스트'를 다짐한 만큼 후보 및 명망가들의 지원을 이끌어내기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추석을 전후해 구성될 선대위의 주요 직책에 이들이 포진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네거티브 동영상' 파문 등 정파 간 반목이 재현된 게 사실이어서 정파와 각 조직의 유기적 결합을 이끌어내는 작업이 결코 간단치는 않다.
  
  권 후보는 이에 대해 "나는 한 번도 정파에 서본 적이 없다"며 "대선후보들이 말했던 정파는 이제 용납하지 않겠다. 누구든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가 하면 "건전한 정파를 키우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대대적인 정파구조 수술에 대한 의지를 표하기도 했다.
  
민노당 경선의 교훈
  
  권 후보는 당선 발표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민노당 경선은 아름다운 경선이었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일부 네거티브 선거전이 없었던 건 아니나 최초로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를 배출한 민노당의 실험은 대단히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심상정 후보의 돌풍이 흥행 요인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민노당 선거의 제도적 선진성이 '성공적 경선'의 그릇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노당은 올해 초 '민중참여 경선제' 도입 여부를 두고 진통을 겪었으나 결국 진성당원제에 기반한 현행 당원직선제 원칙을 지켜냄으로써 정당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였다. 정당은 국민 앞에 책임을 지기에 앞서 당원 앞에 책임을 진다는 정당 정치의 교과서를 보여준 셈이다.
  
  특히 선거 때만 되면 정당의 부실한 대표성을 은폐하기 위해 여론조사나 국민경선제 등 대중적 이벤트를 실시해 관심을 끄는 보수정당과의 차별성을 보여준 것. 이는 민노당과 비슷한 시기에 경선을 치르고 있는 대통합민주신당이 선거인단 모집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구태정치를 노출한 것과 단적으로 대비된다.
  
  당 경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이벤트가 아닌, 내용 있는 승부에서 결정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증명해 낸 것이다.
  
  단순다수결제도로 인해 불과 30%의 지지를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정치권에서 유일하게 민노당만 도입하고 있는 결선투표제도 다시금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결선을 통해 50% 이상을 얻은 후보를 배출해 냄으로써 대표성을 부여하고 소위 '소수 후보'에게도 본선 진출의 기회를 확대시킨 제도다.
  
  심상정 돌풍도 대표성을 인정받은 권 후보의 당선도 결국 당원직선제와 결선투표제라는 제도의 힘에 힘입은 셈이다.
   
 
  임경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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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 민노당 대선후보로 확정
  '진보집권' 선포…"'다이내믹 권' 보여주겠다"
  2007-09-15 오후 3:35:27
  이변은 없었다. 권영길 후보가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심바람'을 일으키며 무서운 상승세로 권 후보를 위협했던 심상정 후보는 결국 권영길의 벽을 넘지 못했다.
  
  권 후보는 15일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결선투표에서 심 후보를 1987표(5.52%) 차로 따돌리는 신승을 거뒀다.
  
  "보수와 진보의 한판 승부"
  
  이날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치러진 결선투표에서 권 후보는 1만9109 표(52.74%)를 얻어 1만7122표(47.26%)를 얻은 심 후보를 눌렀다. 눌렀다. 투표율은 73.62%. 지난 9일 1차선거 투표율보다 4%포인트 가량이 낮다.
  
  권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이번 대선은 진보와 보수의 한판 승부"라며 "서민의 경제를 만들 권영길과 부자의 경제를 추구하는 보수정치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선과정에서 역동의 권영길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한 대로 본선에서 '다이내믹 권영길'을 기대해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 진보진영의 힘을 모아 대선 승리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진보대연합' 추진을 강하게 시사하는 한편, "비정규직 없는 나라, 농민이 웃으며 일하는 나라, 한미 FTA 없는 나라를 만들어 내고 부유세, 무상교육, 무상의료의 나라를 우리가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후보는 또한 "미국의 눈치만 보던 나라에서 자주적이고 당당한 나라로, 민족 간 대결과 경쟁에서 통일과 공존의 새로운 한반도를 열어 가겠다"며 "코리아연방공화국은 기존의 낡은 시대의 국가체제를 근본부터 뜯어고쳐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 후보는 이어 "권영길의 승리는 심상정 후보, 노회찬 후보의 승리"라며 "두 분과 함께 한 지난 경선은 권영길에게 더 없는 영광이었다"고 격려했다. 그는 "앞으로 우리는 진보적 정권교체의 길을 함께 걸어가겠다"고 덧붙였다.
  
  낙선한 심 후보는 "권영길과 민노당의 대선승리를 위해 심상정이 멋지게 어시스트 하겠다"며 "권영길과 함께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단결하고 혁신하자"고 단합을 촉구했다.
  
  앞서 권 후보는 지난 9일 1차 선거에서도 1위를 차지했으나 과반득표에 실패해 2위 심상정 후보와 엿새간의 결선투표를 진행해 왔다.
  
  권영길 후보는…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외아들로 1941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다. 경남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뒤 서울신문 파리 특파원을 지내는 등 언론계를 통해 사회에 발을 디딘 그는 1988년 언론노조 설립을 주도하며 본격적으로 진보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95년 민주노총 설립,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을 주도한 한국 진보운동 역사의 산 증인으로 자리매김했다. 96년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 2000년 초대 민노당 대표를 역임한 그의 이력이 이를 웅변한다. 진보진영에선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통할만큼 통합적 리더십을 인정받는다.
  
  97년과 2002년에는 각각 민노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과 민노당의 대선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2004년 4.15 총선에서 창원(을)에서 당선 원내에 진출한 이후 통일외교통상위 소속으로 전략적 유연성, 한미 FTA 등 굵직한 이슈에 대한 반대론을 주도해왔다. 지난해엔 민노당 의원단 대표를 맡아 원내를 진두지휘했다.
   
 
  임경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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