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은소리]새로운 행복 코드
2007년 09월 21일 (금) 고정필진 webmaster@idomin.com
최근 학계에서 행복이라는 주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진정한 학문적 관심은 구체적인 일상과 괴리되지 않는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면, 이는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 틀의 형성과정일 것이다. '행복경제학'은 최적의 자원분배 메커니즘으로서 시장을 맹신하는 주류경제학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긍정의 심리학'은 행복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낙관적인 태도에 기초한 긍정적 사고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공통점을 단순히 요약하면 '돈=행복'이라는 방정식이 틀렸다는 것이다.
'돈 = 행복'에 반대하는 경제학
그럼에도, 우리들의 일상과 행동은 폐기를 눈앞에 둔 방정식에 따라 짜여 있다. 어느새 우리는 자본주의가 생산해낸 욕망의 기계가 되어 버렸다. 많은 것을 가질수록 풍요함 보다는 더욱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만 커질 뿐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OECD 국가 중 최고수준의 자살률, 주요 선진국과 비교 대상조차 안 되는 장시간 노동체제,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과로사까지. 이 같은 '가짜 행복'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행복의 기준은 역사적·사회적으로 끊임없이 변형·구성되어 왔다. 불변적으로 주어진 것도 아니며 단일한 기준으로 수렴될 수도 없다. 현대사회의 행복코드인 돈, 신분상승, 권력, 쾌락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주어진 행복코드의 무의식적 수용이 아니라 각자의 행복코드 만들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이는 급진적인 자기성찰을 요구하며 통제되지 않는 욕망을 멈추는 것이 출발점이 될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소비욕망이 없이는 지탱될 수 없는 체제이기 때문에 물질적 욕망을 멈추는 것은 사실상 '반체제적' 성격을 갖는다. 많은 사람이 대안적 삶을 꿈꾸고, 현재의 삶의 방식에 회의를 품는 것은 매우 '불온'하지만 희망적 사고의 징표이다. 우리는 체제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강요된' 행복코드와 기존 체제의 해체와 아름다운 재구성을 위한 행복코드가 교차하는 시점에 사는 셈이다. 이제 선택은 각자에게 달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소유의 탐욕과 남들과의 배타적 '구별 짓기'(distinction) 전쟁을 과감히 거부할 수 있는 새로운 행복의 공식이다. 경제성장률에 모든 사회경제정책을 맞추는 패러다임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성장을 통한 분배'와 '분배를 통한 성장' 논쟁도 행복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별 소용이 없어 보인다.
다른 논리처럼 보이지만 과정만 다를 뿐 성장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달성했지만 한 조사에 의하면 178개국 중 행복지수는 102위로 밀려나 있다. 이 수치는 경제적 성장과 행복지수의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일부에서는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위해 또다시 양보와 희생을 요구한다. 이제 더는 경제성장을 위해 우리의 행복을 희생시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대안적 패러다임은 '국민행복지수(GNH)'를 사회경제정책 수립에 중심척도로 삼는다. 이번 대선에서 그리고 내년 총선에서의 선택기준은 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돈과 욕망에 기초한 행복공식이 아니라 각자가 새롭게 만든 행복공식에 따라 스스로 사람과 정책, 핵심공약을 판단하여 선택해보자.
어떤 후보가 보편적 권리 추구 할까?
모든 정치세력들이 이번 선거는 경제정책 선거가 될 것이라고들 한다. 경제정책은 전체 사회운영에 필요한 많은 정책 중 일부에 불과하다. 경제정책이 사회의 모든 정책생산에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앞으로의 선거는 사회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행복정책'으로 중심이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책수행평가도 자본주의적 효율성과 합리성을 넘어 국민행복지수의 상승수준에 의해 판단될 수 있다.
헌법에도 '행복추구권'이 명시되어 있지만 상징적 의미 이상의 효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행복은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권리'이다. 상징적 의미의 행복추구권을 현실화시켜 더욱 광범위한 영역에 실제 적용해야 한다. 누가, 그리고 어떤 세력들이 이 권리를 침해하고 박탈하는가를 판정할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백두주(부산대 사회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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