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배 닮은 감자 한번 보실래요?

한국작가회의/[문학회스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5. 1. 16. 00:17

본문

728x90
<포토에세이> 배 닮은 감자 한번 보실래요?
보물창고 텃밭에서 감자 캐고, 행복 캤습니다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민수(dach) 기자   
ⓒ2005 김진희
아침 일찍 나의 보물창고인 텃밭에 지난 가을에 심은 감자를 캐러 나갔습니다. 나의 텃밭이 보물창고인 이유는 우리 식구들 식탁에 올라올 채소들이 자라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채소들을 키우고 거두면서 삶의 단상들을 수없이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흔히 잡초라고 하는 것들도 각양각색의 꽃을 피우고, 텃밭 한쪽에 자리를 잡고 계절 따라 피는 꽃들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또 절로 자라는 냉이, 달래 같은 것들을 캐서 나물을 해 먹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씨앗을 심은 후 자라는 과정들을 보면서 흙을 만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지만 감자밭을 돌아 보니 알이 굵어진 감자들이 흙을 비집고 나와 있었습니다. 더는 미룰 수 없을 것 같아서 감자 수확에 들어간 것입니다. 쌀쌀한 바람에 온몸이 으슬으슬, 손끝이 시려옵니다.

"자, 노다지를 캐러 갈거나!"
"아이들 같기는..."

장갑을 챙겨 주며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 감자열매. 잘 익으면 황갈색이라고 합니다
ⓒ2005 김민수
감자를 캐는데 군데군데 감자밭에 이상한 열매가 떨어져 있습니다. '어라, 이게 뭐지?' 아무리 보아도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누가 감자밭에 이걸 던져 놓았나? 장난도…'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감자 줄기를 뽑는데 감자 줄기에 그 열매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감자열매'였습니다.

감자꽃이 피니 당연히 열매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먹는 영양줄기인 감자에만 집착해 그것을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감자 열매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시골 생활을 하면서 감자를 직접 심고 거두기를 세번째 하는 오늘에서야 감자열매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 것이죠. 방울 토마토만한 열매들이었는데 감자꽃을 따야 감자가 실하게 된다고 하더니 바로 이 열매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감자열매의 속내. 크기는 방울토마토 정도 되더군요.
ⓒ2005 김민수
감자를 다 거둔 후 감자 열매를 몇 개 가지고 들어와 그 속내를 살펴보았습니다. 아직은 다 익지 않은 듯했는데 그 속내에는 하얀 씨앗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이 씨앗을 뿌려도 감자를 맺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신기해서 감자 열매에 대해 조사해 보니 역시 열매의 씨앗으로도 감자를 거둘 수 있다고 합니다. 단, 이전보다 더 좋지 않은 품종으로 변하기 때문에 영양 줄기를 잘라서 심는다고 합니다. 종자 개량에는 이 열매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감자에 대한 선입견, 그것이 감자의 열매를 보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선입견의 다른 말은 편견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각기 자기의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니 어떤 안경을 끼고 있는가가 참으로 중요한 일이겠지요.

▲ 자주빛이 강한 것이 자주꽃을 피웁니다.
ⓒ2005 김민수
두어 시간이 지나니 추운 것은 사라졌는데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픕니다. 일당 3만원 정도를 받고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감자를 캐면서 권태응님의 '감자꽃'을 흥얼거립니다.

자주꽃 핀 건 자주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감자


분명 우리 감자밭에도 자주 꽃이 있었는데 어떤 것인가 확인하려고 감자를 보아도 확연하게 구분이 가질 않습니다. 물론 흙을 비집고 나온 감자 부분이 하양 꽃을 피웠던 감자는 초록빛을 띠고, 자주 꽃을 피웠던 것은 자줏빛을 띠긴 합니다. 그러나 뭐 그렇게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만 보니 감자의 줄기에서 확연하게 자줏빛 감자와 하양 감자가 드러납니다. 줄기를 보니 '꽃 보나마나 자주 꽃이요 하양 꽃'입니다.

▲ 영락없이 배를 닮았습니다.
ⓒ2005 김민수
감자는 예상외로 잘되었습니다. 작년에 실패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의 심은 것보다 조금 더 거두었으니 완전 실패였죠. 그래서 올해는 기대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 집에 있는 컨테이너에 모두 채우고도 남아서 어디 보낼까 고심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감자의 모양도 가지가지입니다. 달걀처럼 동그랗게 생긴 것이 있는가 하면 눈사람처럼 생긴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은 너무 급하게 자라느라 그랬는지 쩍쩍 갈라진 것도 있습니다. 감자전을 해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은 것도 있고, 그냥 소금을 살살 뿌려서 쪄먹으면 맛있을 것 같은 것도 있고, 감자 조림을 해먹으면 맛날 것 같은 것도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로 '배'를 닮은 감자였습니다. '사과 같다'고 생각했는데 색깔까지 보니 사과보다는 배를 많이 닮았습니다. 그 감자를 가지고 와서 막내에게 "아빠가, 밭에서 배 캐왔다"하니 무슨 농담을 하시나 흘끗 보다가 다시 돌아봅니다. "어, 정말이네." 곧이어 "에이, 감자잖아"합니다.

▲ 오늘 저녁에 식탁에 올라올 싱싱한 감자들입니다.
ⓒ2005 김민수
캔 감자를 컨테이너에 담아 볕이 들지 않도록 신문지로 잘 덮어 창고에 두고, 바로 먹을 것만 담아 왔습니다. 감자전도 해 먹고, 삶아도 먹고, 감자 튀김도 해 주려고 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혼자서 감자 수확을 했습니다. 일을 다 마치고 들어 왔더니 그 믿었던 아내가 나만 빼놓고 아이들하고 찐빵하고 옥수수를 쪄놓고 자기들끼리만 먹고 있습니다. 아, 그 순간의 배신감.

"어쭈, 자기들끼리만..."
"아빤, 왕따!"

그래서 흙 묻은 손으로 뛰어들어가 차가운 손으로 얼굴 한 번씩 쓰다듬어주었습니다.

"으악, 차가워."
"꼼짝마!"

나의 보물창고 텃밭에서 감자뿐만 아니라 행복까지 덤으로 캐왔습니다. 참 행복한 날입니다.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이며 자연산문집<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와 <내게로 다가온 꽃들 1, 2>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들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2005/01/14 오후 4:38
ⓒ 2005 Ohmynews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