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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글]호박꽃 단상

박종국에세이/[포토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8. 7. 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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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문 출근길에 불쑥 차를 멈췄더니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던 차량들이 쭈볏쭈볏 섰습니다.

고장이 났다는 것을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하기사 제가 타고 다니는 차는 96년산 에스페로입니다)

차량 몰골을 보면 뻔히 알 수 있다는 듯 차창에 고개를 내밀고는 한 말씩 거듭니다.

견인차를 불러라고.

하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다고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들을 보냈습니다.

내가 길 가장자리에 우두커니 차를 세운 까닭은 딴데 있습니다.

무심코 쳐다본 호박꽃무더기가

너무나 샛노랗게 피어 있어서 출근길을 마다하고 차를 멈췄던 것입니다.

 

 

 칠월의 농촌 들녁, 그리고 호박꽃

이는 농촌살이를 하지 않으면 쉬 만날 수 없는 정경입니다.

혹자는 호박꽃도 꽃이냐고 반문하시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호박꽃 참으로 예쁩니다.

아침 햇살을 머금고 함초롬히 피어있는 그 자태를 보고있노라면 그저 마음이 샛노래집니다.

원래 샛노랗다는 표현은 무슨에 황당스럽게 놀랬거나 무척 화가 났을 때의 표정이겠지만,

호박꽃을 들여다보고 있는 제 마음이 샛노랗다는 것은 수수한 호박꽃의 정감에 푹 빠졌다는 얘깁니다.

한참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좋든지요.

 

 

아마 호박농사만큼 쉬운 게 또 없을 겁니다.

호박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살이 좋은 땅이나 척박한 언덕배가를 탓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어느 밭머리나 호박은 땅심 좋은 자리에는 선택을 받지 못하고, 밭 가장자리나 사람이나

동물들의 출입을 저지하기 위한 울타리 삼아 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소외에도 불구하고 밭머리에서 호박순의 기세는 과히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 기세를 당해낼 자는 아마 잡초, 그 중에서도 바랭이풀 하나밖에 없을 겁니다.

땅에 머리를 맞대고 기면서도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폼이 칠월의 싱그러운 건강성입니다.

들에 나가거든 호박꽃을 만나보세요.

 

 

오늘 아침에 만난 호박꽃 한무리는 지난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호젓함을 안겨줍니다.

얼키고 설켜 살아도 어느 것 하나 불평불만하지 않고 제각기 함초름한 꽃을 피웠습니다.

사람 사는 이치도 이와 같아야할 겁니다.

서로 잘잘못이 있어도, 남보다 내 것이 조금 적게 주어졌다 하더라도 크게 얼굴 붉힐 일이 아닙니다.

다시 차를 몰아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습니다.

지천명을 코앞에 둔 지금도 이렇게 덜컥거리는 것을 보면 제 삶의 신실함이 많이 부족한가봅니다.

왜 나는 조그만 일에도 분개하는 일이 그렇게 많은지요?

 

 

 

사람이 신실하게 산다는 것은 처음과 끝이 한결같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하면서 하찮고 사소한 일 하나 때문에 차마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얘기를 일삼는 것은 그 순간에 신뢰가 바닥이 난 것입니다. 그것은 부부간에, 자녀에, 친구간에, 동료간에 도덕률로 자리하는 철칙입니다. 하지만 그러한데도 우리 항상 제 그릇이 작다고, 제 입장을 먼저 헤아려 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해댑니다.

누구나 제 뒤가 구린 것은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만큼 낯짝이 두껍고 제 속을 드러내는 데 용의주도하고 면밀한 까닭입니다.

스스로 반성해야합니다. 제 그릇을 부시는 데 좀더 신실하지 못했다고.

아침에 만났던 호박꽃은 저처럼 옥수수와 좋게 어우러져 사는데,

 

 

학교에 도착하니 여름 풀꽃같은 아이들의 웃음이 나를 반깁니다.

어젯밤 다소 의맞지 않는 얘기로 침울했던 기분이 밑바닥에 남아 있었는데 말끔해집니다.

세상 사는 일 아이들 웃음만큼 순수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는데, 마음이 훌쩍 늙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스스로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하고, 더 많은 것을 반성케합니다.

'나답게 산다는 것'에 책임을 져야겠습니다.

세상일들 늦었다고 깨달았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듯이

 

 

고추밭머리 사진은 오늘 아침 호박꽃의 애상을 밝히는 덤입니다.

요즘같은 장맛철에 저렇게도 싱싱한 고추를 잘고 있을 수 있는 농심을 경외할 따름입니다.

20년을 고추하우스를 하고 있는 사촌의 말을 빌면 약을 치지 않으면 충실한 고추, 제값받는 고추를

딸 수 없다고 하는데, 오늘 아침 호박꽃과 더불어 만난 고추는 그런 기우를 다 접고도 남습니다.

아직 장맛비가 그치지 않았지만 빠알간 고춧빛을 소원하며 충실한 결과를 기다려보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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