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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은 새까맣게 타고 있다

박종국에세이/[포토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8. 7. 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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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은 까맣게 타고 있다.

 

이게 뭔 사진일까? 경운기에 마늘을 가득 실은 채 거리를 달리는 저 행렬은

오늘부터 실시되는 '2008년 창녕군 마늘경매'에 신새벽부터 줄 이은 채 경매 차례를 가다리고

있는 긴긴 대열이다.

출근하다가 차를 멈췄다. 매년 되풀이 되는 이 행사(?)를 그냥 스쳐지나지 못했다.

길 가장자리에 차를 멈추고 경매장 주변을 기웃거렸다.

근데 경매장 안팎의 풍경은 너무나 달랐다.

미리 일찍 도착해서 경매장 안으로 마늘을 들여놓은 농민들은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하고 있는 반면, 미처 대에 맞춰 도착하지 못한 농민들은 문을 걸어 잠근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몸도 성치 않은데, 남의 경운기, 짐차를 삯을 주고 빌러 실고 왔는데, 오늘 경매물품 입하는

그만이란다고 인도에 주저앉아 넋을 놓고 있었다.

초로의 병약한 얼굴이 더 초췌해 보였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한 마디 들이밀었더니

하루에 경매볼 수 있는 물량이 1만 2천망 정도(경매가 4억원 정도)로 일단은 더 이상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거리를 사지르고 앉은 저 분들은 어쩌나?

 

 

경매장 바깥에 무더기로 쌓인 마늘이다.

아직 경매장 안으로 들여다 놓지 못한 것도 안타까운데 어렵사리 경매장 안마당까지 그것을 들여놓은 농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보다 오늘 마늘 경매가에 마음이 더 쏠려있지 않을까. 농협 경매담당자에게 귀뜸으로 물어봤더니 경매가는 하루하루가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 첫 경매로 농민들이 받게 될 가격을 이미 불보듯 빤한 얘기로 한 망에 1만원 정도로 귀착될 것이다. 이미 산지에서 그렇게 팔리고 있으니

하지만 한 망에 만원이라는 가격은 농민들 죽자고 마늘농사를 지어봤다 이문이 남는 게 없다는 증거다.

종자값 농약 비료값 품삯 구전비를 떼고 나면 실상 손에 얼마나 남을까.

쥐꼬리만한 봉투를 걸머쥐고 소주나발이나 불고 앉으면 거덜날 돈이다.

죽어라 하늘 믿고 땅심을 믿으며 일한 죄밖에 없는데, 다른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라도

이 놈의 마늘값은 작년보다 되레 내렸다. 말이 될 말인가.

마늘값이 똥값이다.

 

 

 

마늘값 똥값이라도 이왕에 실고 온 것 경매라도 부쳐 봐야지.

근데 경매장 문이 꽁꽁 닫혀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농민들은 경매장 담당자에게 문 열어달라고 애걸복걸 하듯 사투를 벌였으나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다. 참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경매장 면적이 협소해서 더 많은 물량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농협측과 누군 받아주고 누구는 받아주지 않느냐며 손사래를 치는 농민들 사이에 마른 한숨만 가득했다.

당초 마늘 농사를 독려할 때는 수확한 전량을 경매한다고 확약했다는 데,

그 말만 믿고 착하게 마늘 농사를 지은 농민들은 닭 쫓던 개 하늘 쳐다보는 식으로 말을 멈 출 수 밖에

'시러벌, 대체 이 놈의 세상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

속이 탄다며 연신 찬물만 들이키던 한 농민의 가시돋힌 푸념이었다.

 

 

북적대던 농민들이 잠시 자리를 뜬 채 2008년 건마늘 경매개장을 알리는 플랭카드가 내걸렸다.

이 자리에서 농협을 대표하는 수많은(?) 인사들의 얼굴 내놓기에 이어 오전 11시부터 경매가 시작된다.

올해는 예년보다 마늘농사가 흉년인데도 마늘값은 지랄같다는 농민들의 악쓰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그네들의 외침이 결코 흰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작년 역시 똥값으로 농민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내몰았던 양파가 올해는 날개를 달았다.

양파 한 망에 만오천원 이만원을 상회한다고 하니 마늘에 비견할 게재가 아니다.

이미 생산물량 전부를 저온창고 깊숙히 묻어뒀다는 한 농민은 머잖아 양파 한 망이 4만원에 호가할 거란다. 이 어찌 하늘의 장단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

평생을 농투성이를 살아도 양파마늘배추고추값 때 한번 맞춰보지 못했다는 사람을 두고.

아직 경매에 들어가지 않았을 테지만 오늘 첫 건마늘 경매가 얼떨까?

 

 

경매장 한켠에서 경매개시를 기다리는 노부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겔까.

 

 

미쳐 경매장에 입고하지 못한 마늘을 실은 차량들이 줄지어 있다.

 

 

경매장 입고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길가장자리 한 차선이 부족해 두 차선을 점유(?)한 채 경매를 기다리고 있다.

 

 

경매장 정문 앞에서는 마늘을 들여놓겠다는 농민들과 더 받을 수 없다는 농협측과 실랑이가 오갔다.

 

 

마늘을 실고 사방팔방에서 모여든 이 차량들을 어찌 할 것인가?

 

 

그래도 끝내 경매장 정문은 열리지 않았다.

 

 

경매장 벽면에 '창녕마늘 전국 최고의 값을 받도록 하자'는 격문이 내걸렸다.

아침 땀에 절은 농투성이들의 담배내를 맡았다.

참 씁쓸한 기분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들은 마늘은 거저 먹는다는 기분과 함께

심한 자괴감을 갖는다. 

농심이 까맣게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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