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을 떤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대통령께 뭔 말을 한다는 게 옛날 군인정치 시대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죠.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때였으니까요.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간 마음속으로 얼마나 만지작거리던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왜 마음속으로만 만지작거렸냐고요?
그 첫째는 작은 시골교회 목사가 중앙의 장로 대통령님께 말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해서고요. 둘째는 무슨 얘길한 데도 대통령에게 전달될까 해서입니다. 좀 과장인 것을 감안해도 대통령님 주변의 사람들은 소위 ‘고소영’과 ‘강부자’, 아니면 비슷한 분들 아닙니까. 저는 그들의 눈에 변두리일 뿐이니까요. 그들의 고급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계시기에 가소로운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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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벽대전>이란 영화를 보고는 이내 결심했습니다. 왜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을 만난 이들이 예수쟁이란 자들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 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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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적벽대전- 위대한 전쟁의 시작>에 기대어
<적벽대전- 위대한 전쟁의 시작>(이하 적벽대전>이란 영화를 보고는 이내 결심했습니다. 왜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을 만난 이들이 예수쟁이란 자들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 빛, 제가 그렇듯 대통령님도 그러리라 믿습니다. 전 비록 영화지만 그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았습니다. 아울러 너무 야무진 생각인지 몰라도 제가 드리는 이 글이 대통령님께 한 줄기 빛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이나 사물, 사건, 자연, 심지어는 문화작품들을 통해서 일하신다고 믿습니다. 영화라고 예외이겠습니까? <적벽대전>은 시놉시스에서 이미 무슨 영화인지를 말합니다.
“10만 VS 100만의 대결… 마음의 눈으로 지략을 세우고, 뜨거운 용기로 전세를 역전시켜라!”
한마디로 중국의 역사 속 전쟁이야기, 그렇습니다. 그러나 거기 정치가 있더군요. 똘마니 정치가 아닌 진짜 대장부들의 정치말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그런 싸움인데, 조조(장풍의 분)에게 패한 유비(우용 분)가 손권(장첸 분)과 손을 잡고 고작해야 10만 군으로 조조의 100만 대군을 물리치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삼국지>를 통하여 잘 알려진 얘기기에 소소한 설명은 않겠습니다.
승리는 마음과 생각을 쓰는 자의 것
무기와 전략,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전 전략을 고르겠습니다. 무기는 육신의 것입니다. 그러나 전략은 마음, 영혼의 몫입니다. 전쟁이나 정치는 무기나 정치기반을 전혀 무시하면 안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신, 마음, 영혼입니다. <적벽대전>은 무기와 전략의 싸움입니다. 당연히 전략이 이깁니다. 혹 서울시장으로 지내실 때 세웠던 업적, CEO시절의 업적 등이 무기인 것은 아닌지요? 국민들은 그때를 회상하며 표를 찍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님, 이젠 마음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대통령님의 다른 이름을 아시는지요? ‘2MB’, 듣기 싫어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메가바이트 시대가 아니죠. 적어도 기가로 가죠. 대통령이 듣기 싫다는 데도 국민들이 자꾸 사용하네요. 왜일까요? ‘경제 대통령’, 물론 이 말은 대통령님이 들고 나온 슬로건입니다. 전 이 슬로건을 정말 장로님께서 들고 나왔단 말인가 하고 의심했었습니다.
그것은 무기거든요, 전략이 아니고. 숫자가 아니라 ‘구궁팔괘진’과 ‘황금방패전법’이 승리했습니다. 무기를 들지 마시고 전략을 드십시오. 지금 모든 국민이 경제라고 말합니다. 이때 경제 그 밑의 기본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보이는 것의 위대함을 말할 때 지도자인 대통령님께서는 그 위대함의 기초가 무엇인지 보아야 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유비 측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사 제갈량(금성무 분)을 필두로 손을 잡은 손권은 물론, 그의 휘하의 명장 주유(양조위 분), 그리고 그 유명한 세 장수 관우, 장비, 조자룡 등 모두가 용맹스럽고 탁월한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적벽대전>의 승리는 없습니다. 지금 대통령님 주변을 보십시오. 누가 관우요, 장비며 조자룡인지요? 누가 책사 제갈량인지요? 손을 잡은 손권은 어디 있습니까? 미국인가요? 아니면 일본인가요?
이 이야기는 서기 208년, 중원의 주인이 된 위나라 조조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 이를 보다 못해 반기를 든 촉나라의 유비가 책사 제갈량을 앞세워 오나라 손권과 손을 잡으므로 조조를 물리친 이야기입니다. 손권 휘하의 명장 주유의 역할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영화 <적벽대전>은 유비에게만 집중되던 조명을 주유에게 돌렸다는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란 헌법1조가 무색하게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두세 걸음 앞서 달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전봇대 뽑아내는 것은 일이 아니죠. 이제 주유를 생각하십시오. 주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집중되는 권력을 물리는 자만이 진정한 용자입니다. 혹 주변에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를 사랑하십시오. 타 종교인을 많이 기용하십시오. 그가 주유가 될 것입니다.
첫째도 위민, 둘째도 위민, 마지막도 위민입니다
첫 전쟁 신에서 유비군이 조조군에게 져 퇴각을 하게 됩니다. 조조군은 특유의 잔인함으로 국민들을 죽입니다. 전쟁이란 이름하에 저질러지는 학살이죠. 근데 유비군은 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래도 열세이다 보니 퇴각명령을 내립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부하가 빨리 퇴각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다고 합니다. 국민들은 놔두고 빨리 퇴각하자는 것이지요. 그때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전쟁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호통을 칩니다. 전 그 말이 왜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는지요. 물론 그렇게 말했지만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시위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한 지난 5월 장로님께서는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면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위민하는 정신으로 하신 말씀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대통령의 임기를 마칠 때까지 변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진정성과 실효성을 의심하는 국민이 있음에도 저는 그리 믿고 싶습니다.
전쟁은 왜 할까요? 정치는 왜 할까요? 분명히 국민을 위해 애쓰시는 것 잘 압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안 되는 것도 잘 압니다. 오우삼 감독이 이 영화를 “나의 필생의 프로젝트였다”라고 말했는데 아마 장로님도 지금의 대통령직이 ‘필생의 프로젝트’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합니다. 위민(爲民)입니다. 위민하신다고요?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지난 대통령들도 다 그랬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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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서기 208년, 중원의 주인이 된 위나라 조조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 이를 보다 못해 반기를 든 촉나라의 유비가 책사 제갈량을 앞세워 오나라 손권과 손을 잡으므로 조조를 물리친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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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용기로 전세를 역전시키십시오
대부분의 국민이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지지율의 하락을 아시죠? 그게 바로 국민의 자리입니다. 사랑하는데 상대는 미움으로 받아들이니 어쩝니까. ‘이제 시작인데 좀 봐주지.’ 전두환 전 대통령도 그런 말을 했더군요. 예, 그래야 하는데 우리 민족은 너무 다급한 성격인지라. 대통령님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벌써부터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을 들고 나오는 사람도 있으니.
그것은 일부 반대자들의 말이라고요? 그런 얘기 어디서 들었습니까?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주변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주변에 참말을 하는 자가 많아야 합니다. 나단의 말을 들었던 다윗을 아시죠. 목을 걸고 그처럼 말하는 사람이 곁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역전은 멀지 않았습니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로 편을 가른 냉전구도가 우리나라 안에 있습니다. 진보주의도 보수주의도 진리가 아닙니다. ‘내 사람, 네 사람’이 아닙니다. 국민 모두가 ‘내 사람’이어야 합니다. 절대주의를 아시죠?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사…’
첨에 멋지게 이기다가 중반 이후 역전당해 끝에서 지는 것보다, 처음에 호되게 당하다 중반이후 역전해 끝을 아름답게 장식하면 됩니다. <적벽대전>의 유비군은 그걸 보여줍니다. 대통령님, 이제 <거대한 전쟁의 시작>일 뿐입니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주변에 영웅을 보는 눈을 가지십시오. 주유 같은 영웅을 만드십시오.
그 뜨거웠던 CEO시절, 서울시장 시절의 용기로 전세를 역전시키십시오. 제가 정치는 문외한인지라 구체적 사안을 지적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무기보다 더 중요한 게 정신이란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궁중 예언자였던 나단처럼 권세도 없고 그저 촌구석에서 무지렁이 촌티 팍팍 풍기며 목회하는 목사가 중앙무대의 대통령이신 장로님께 훈수 한 수 뒀습니다. 원래 하수라도 남의 바둑은 훈수를 둘 수 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