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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은 죽지 않는다

한국작가회의/문학행사공모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8. 11. 4.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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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은 죽지 않는다 [민병욱] 비슷한제목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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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은 죽지 않는다


                                                      민 병 욱(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지난 칼럼 “컴퓨터 시대에 웬 책?”을 읽고 의견을 보내온 분이 꽤 있었다. “컴퓨터가 종이책의 자리를 차고앉은 게 언젠데 새삼스럽게 책 타령이냐”부터 “정부 국민이 온통 경제, 경제, 경제 얘기뿐이니 책문화의 쇠락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란 지적까지 의견은 다양했다. 재미있는 것은 뜻을 전한 모두가 한 가지 이상 종이책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갖고 있으며 그걸 무척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거였다.

추억의 종이책, 갖가지 기발한 용도

책 예찬론자들은 종이책이 컴퓨터보다 훨씬 ‘쓸모’가 많다고 주장했다. 들고 간 책 한 권 덕에 연애나 취직, 출세에 성공한 사람이 참 많았다. 좀 어려운 제목의 교양서나 예쁜 시집, 고품격 시사지 등을 들고 나타나면 상대가 그야말로 ‘존경의 염’을 감추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거기다 책 속 멋진 글귀를 눈이라도 감고 읊을라치면 지남철보다 세게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컴퓨터를 들고 갔다면 그렇게 사람을 끌진 못했을 게 분명하다.

우스갯소리로 도구로서 책의 유용성을 얘기하는 사람도 적잖았다. 뜨거운 찌개냄비를 책으로 들거나 받침으로 썼다는 것이다. 하숙생 시절 친구 여럿이 둘러앉아 책 위에 올려놓고 후후 불며 먹은 음식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교사들은 출석부와 함께 회초리 대용품으로 책을 쓴 일이 있고 파리, 모기 등을 쫓거나 잡는데도 책을 사용했다. 눈 비올 때 우산, 빚쟁이와 마주쳤을 때의 얼굴 가리개, 책걸상 다리의 균형자, 베개, 덮개, 망치, 도배지, 부채, 불쏘시개, 신분증 등의 쓰임새도 책은 훌륭하게 수행했다.

월급쟁이들은 비자금 은닉처, 숨은 지갑으로 책을 애용했다고 말했다. 무심코 옛 책을 뒤적이다 만 원짜리 몇 장이 흩뿌려질 때의 행복감을 잊을 수 없더라는 얘기다. 봄, 가을엔 꽃잎과 낙엽을 책갈피에 껴놓아 ‘그 해의 내 마음’을 감춰놓았다는 사람, 헌책방 책에서 옛 친구 이름을 발견하고 상념에 젖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는 “혼인서약 등 종교제례 때나 법정에서 컴퓨터 위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느냐?”는 반어법으로 종이책의 엄숙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컴퓨터가 책의 임무를 떠맡았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책이 지닌 부피, 쓸모, 눈에 뜨임과 그 정서적 크기를 전면부정하진 않았다. 다만 컴퓨터가 빠르게 진화하고 사람들이 거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종이책 같은 ‘옛 매체’는 결국 스러지고 말 것이란 의견이었다. 과연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라디오가 나오자 사람들은 신문이 사라질 거라 했고, TV가 나오자 라디오 신문이 다 죽는다고 했지만 그러지 않았듯 책도 건재하리라고 믿는다. 컴퓨터, 디지털, 하이테크, 하이퍼텍스트의 시대에도 종이책은 살아 숨쉬며 그들과 함께 진화해 갈 것이다. 물론 요즘 눈으로 보면 변종 아니면 잡종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희귀본, 큰돈 될 수도?

한 숨 돌려보자. ‘꽃밭에 넘어진 소녀가 정강이에 난 피에 놀라 울다 보니 빨간 꽃잎이었네’ 이야기가 실린 초등학교 국어책을 기억하는가. 경제, 경제하니 얘긴데 요즘 그런 책은 상태만 좋으면 50만원도 받는다고 한다. 조선 말기 군지나 한글소설, 옛 잡지도 몇 백 만원을 훌쩍 넘겨받는다. 옛 것, 특히 서화나 전적이 돈 되는 세상이 온 지 오래 됐다. 지금 컴퓨터에 밀리는 종이책들이 머잖아 희귀본 수집품이 된다면 바로 그를 겨냥한 출판진흥책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목판 책 금속활자 책 모두 세계 최고(最古)를 자랑하면서도 그 맥을 잇지 못한 아쉬움을 21세기 출판대국, 독서 강국으로 보상 받자고 하면 꿈같은 얘기일까. 장삿속으로라도 인류문화 유산으로 남을만한 종이책을 만들어가자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요즘 돈을 벌어주는 컴퓨터 정보산업만 애지중지하고 당장 돈이 안 되는 종이책 독서출판계엔 흘기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니 해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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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민병욱
·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 경원대 초빙교수
· 전(前) 동아일보 정치부장 논설위원 출판국장
· 저서: <들꽃길 달빛에 젖어>(나남출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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