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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강타 프랑스 '이삭 줍는 사람들' 등장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3. 1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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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뒷문 열리면 쓰레기통으로 우르르~
불황 강타 프랑스 '이삭 줍는 사람들' 등장
[해외리포트] "먹고살기 힘들어 주워 먹는다"
09.03.13 08:52 ㅣ최종 업데이트 09.03.13 08:52 한경미 (cfhp)

프랑스 남서부 지방의 대도시인 툴루즈. 한 대형 슈퍼마켓의 뒷문 앞에서 여러 명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대형 쓰레기통 몇 개가 길거리에 놓인다. 모였던 사람들이 동시에 쓰레기통으로 달려간다.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오랫동안 팔리지 않는 물건들이 이들의 관심대상이다.

 

"포장지도 뜯지 않은 바나나를 찾았다"고 누군가 말한다.

"난 야쿠르트가 너무 많아. 누구 원하는 사람 있어?" 옆 사람이 말을 받는다.

 

  
파장을 기다리는 글라네르를 다룬 <옵저버> 보도. 경제위기가 장기화되면서 프랑스에서는 파장 후 버려진 과일이나 야채를 주우러 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옵저버
프랑스 글라네르

쓰레기통이 거리에 놓이고 수거트럭이 오기까지 여유시간은 10여 분. 수확품을 회수한 이들은 재빨리 각자의 집으로 흩어진다.

 

위 글은 프랑스 리베라시옹의 남부 대도시 툴루즈의 지역신문인 <리베툴루즈> 1월 26일자 기사에 실린 내용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파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외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장에 가서 남들처럼 돈을 주고 장을 볼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시들해서 팔리지 않아 버려진 과일이나 야채를 주워 끼니를 때우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들을 '글라네르(glaneur)'라고 부른다. 원래 '이삭 줍는 사람들'이란 뜻의 이 용어는 추수를 하고 난 밭에서 굴러다니는 이삭을 주워 끼니를 해결했던 가난한 사람들을 지칭했던 말이다.

 

대도시 뒷골목에선 "먹고살기 힘들어 쓰레기통 뒤진다"

 

이렇게 파장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작년 후반기부터이다.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로 원유 값이 턱없이 인상되고 물가가 하루가 멀다하게 오르는 상황에서 서민들의 경우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렵기 때문이다. 프랑스 언론매체들도 이런 현상을 주요하게 소개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용돈이 턱없이 부족한 대학생들, 혼자서 아이 몇을 키워야 하는 싱글맘, 매달 받는 퇴직연금으로는 생활이 안 되는 퇴직자들이 주로 파장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옷차림이 멀쩡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평일에는 보이지 않다가 주말만 되면 나타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엄연히 직업을 갖고 있지만 충분치 않은 월급을 보충하기 위해 주말마다 글라네르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라네르가 늘어나면서 시들한 야채를 한구석에 모아놓는 상인들도 늘었다. 마음씨 좋은 상인들은 때로는 멀쩡한 과일이나 야채를 기분 좋게 집어 주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상인들이 이들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일부 상인들은 이들이 나타나면 듣는 앞에서 "저기 쥐새끼들 몰려오네"라고 공공연히 떠들기도 한다고.

 

<프레스 파피에> 2월 2일자는 주변의 이런 반응에 대한 글라네르의 항변을 소개하기도 했다.

 

"우리가 지금 주워 담고 있는 것은 5분 전만 해도 돈을 주고 사야했던 물건이다."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버리는 물건을 주워서 재사용하는 것뿐인데 편치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글라네르의 삶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이삭줍다'는 뜻의 글라네르라는 말은 최근에는 버려진 음식이나 물건을 줍는 프랑스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 .
프랑스 글라네르

 

이유 있는 선택 "먹고살 수는 있지만 주워 먹는다"

 

<리베툴루즈>는 6년째 글라네르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중년남자의 이야기도 소개했다. 그는 장을 볼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식료비로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글라네르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절약한 비용으로 전 여행을 떠납니다. 며칠 전에도 아들과 같이 태국을 갔다 왔죠. 우리가 사는 툴루즈에는 대략 15명이 파장에 갑니다. 그러고는 다 같이 모여서 서로 수확물을 나눠가지죠. 우린 모두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조금이라도 절약하고자 이 행동을 하고 있어요."

 

프랑스 중부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26세의 청년 페드로도 같은 이유로 주말마다 집 근처의 파장을 드나든다. 그는 툴루즈의 지역신문인 <신공화국> 3월 3일자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잉생산이 이루어지고 남는 물건을 마구 버리는 현 자본주의 시스템에 반기를 들기 위해 글라네르를 자처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글라네르라 부르지만 이 말 속에는 도둑질이란 개념이 들어있으므로 난 별로 이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글라네르가 된 것은 과잉생산을 장려하는 사회에 우리 나름대로 반기를 들기 위해서입니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는 우리가 필요한 것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소비 장려 사회와 대항해서 싸우고 있는 거죠."

 

과잉생산에 반기를 들고 경제활동에 되도록 적게 참여하면서 소비생활을 줄이고자 하는 이들은 'D 시스템 지지자'라고도 불린다. D는 감소(decroissance)라는 단어의 이니셜이다.

 

프랑스 남부 지방도시인 엑상프로방스에 사는 트리스켈은 'Freegan'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는데 이 사회의 경제순환을 최대한 제한하기 위해서였다. <옵저버> 2월 9일자에 따르면, 트리스켈도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글라네르가 되었다. 맥도날드나 슈퍼마켓의 쓰레기통을 뒤지던 그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옆에서 매일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을 보게 되었고, 결국 이들과 함께 수확물을 나눠 갖게 됐다.

 

이들은 음식물 수거만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재활용 품목은 전부 수거한다. 길거리에 내던져진 찌그러진 의자, 낡은 침대 등을 거두어 수리한 뒤 필요한 사람에게 헐값으로 넘긴다. 재활용품 판매로 그가 벌어들이는 수익은 한 달 90유로(약 18만원)이다.

 

  
과잉생산에 반기를 들고 경제활동에 되도록 적게 참여하면서 소비생활을 줄이고자 하는 'D 시스템 지지자'들도 버려진 물건을 주워 생활한다. 사진은 D시스템 지지자인 마틸드의 삶을 소개한 기사.
ⓒ www.presse-papier.fr
프랑스 경제위기

 

글라네르, D시스템 지지자, 다음엔 어떤 현상이?

 

'D시스템 지지자'들은 부가 불공평하게 배분되고 있는 현 사회 시스템을 비판한다. 유명 축구 선수나 대스타, 대기업 사장들의 한 달 월급이 일부 직장인들의 평생 월급을 초과하고 있는 현실이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D 시스템 지지자'들은 조금이라도 경제활동에 덜 참여하며 자급자족의 길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경제통계 조사기관인 INSEE에 의하면 지난해 4분기(10월~12월) 프랑스의 실업률은 7.8%였다. 그런데 <르 피가로> 2월 26일자에 의하면 올 1월 신규 구직자로 등록된 자만 9만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991년 이후 최고치로, 현 프랑스 총 구직자 수는 이로써 220만4500명에 도달하였다. 작년 12월에서 올 1월 한 달간 실업자의 연령별 증가상황을 보면 25세 미만 실업자가 5.1%, 25세~49세 사이의 실업자가 4.1%, 50세 이상의 실업자가 3.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모든 연령층이 실업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이 글라네르라는 새로운 현상을 불러온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이렇다 할 조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민들의 삶이 점점 더 각박해진다면 또 다른 어떤 기현상이 사회에 등장하게 될까.

 

"생수 대신 수돗물 먹고, 음식은 직접 만들어 먹고"

경제위기에 처한 프랑스 서민들의 '행동지침'

 
  
요리된 음식을 파는 가게 트레퇴르. 경기불황으로 매출액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 한경미
경제위기

실업률 증가가 글라네르라는 새로운 현상을 불러온 것은 사실이나 필요에 의해서건 선택에 의해서건 글라네르가 전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 크지 않다. 많은 프랑스인들이 생활고에 쪼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들이 보는 앞에서 버려진 물건을 줍거나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서민들은 어떻게 경제위기를 헤쳐 나가고 있을까.

 

프랑스에선 올 1월의 소비지수가 0.4% 하락했는데 이는 199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라고 한다. 지난 2월 20일 재정 인터넷 사이트인 Surf Finance는 '경제위기에 처한 프랑스인의 행동'이란 글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많은 프랑스인이 고가품이나 사치품 등 일상생활의 필수품이 아닌 제품의 구매를 자제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물을 사먹지 않고 수돗물을 받아먹는다든지, 데워먹는 음식을 사먹기보다 직접 조리해서 먹는다든지, 레스토랑에 가는 횟수를 줄이는 일 등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세제나 비누 등의 사용빈도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건 대량구매 문화도 많이 사라졌다. 인터넷을 통한 물품 구매도 젊은 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데 "실생활에 유용한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좀 더 빠르게" 구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물물교환이나 중고제품의 사용자가 늘어나고 대중교통수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었다. 정장이나 연회복의 경우, 대여점이 호황이다.

 

한편,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 때문에 유기농 제품 사용자의 수는 오히려 늘었는데, 유기농가와 직거래를 통해 중간 상인의 마진을 배제하는 방식이 널리 전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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