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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누구인가 - 도종환
엄마가 갑자기 실종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돌아가셨다면 명확해진 부재 앞에서 슬퍼하며 그 슬픔을
시간 속에 다스려 갈 텐데, 아버지가 지하철을 타고 보니
엄마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리하여 며칠을 허둥대며 찾다가
그 며칠이 몇 달이 되어가고 있을 때 자식의 심정은 어떨까?
연락을 받고 달려가 보면 큰아들이 처음 근무하던
동사무소 근처를 서성이다 간 흔적이 있고, 다시 소식이 와서 가 보면
처음 집을 장만하고 기뻐하던 아들집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갈 때 아들과 딸들은 어떤 마음일까?
엄마의 가방을 아버지가 들고 있었으므로 엄마는 지금 빈손으로 떠돌고 있으며,
뇌졸중 후유증으로 두통에 시달리고 있고, 뇌혈관성 치매 증세가 있던 엄마라면
그 엄마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작가 신경숙은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을 통해 이런 난감한 상황을 던져 놓고
큰딸의 입장에서 엄마를 생각해 보게 하고, 아들의 입장, 남편의 입장,
막내딸의 입장에서 엄마는 누구였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들은 엄마가 실종되던 그 시간 중국에서 열린 북페어행사에 참여하느라
북경 천안문광장으로 가고 있거나, 아파트 분양사업 건으로 무척 바빴거나,
어린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마는 엄마의 시간, 엄마의 일상을 잘 보내고 있어야만 한다고 여겼다.
그러다 엄마가 실종되면서 비로소 엄마는 우리에게 누구였는지 묻게 되는 것이다.
"한 여자. 태어난 기쁨도 어린 시절도 소녀시절도 꿈도 잊은 채
초경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혼을 해 다섯 아이를 낳고 그 자식들이 성장하는 동안
점점 사라진 여인. 자식을 위해서는 그 무엇에 놀라지도 흔들리지도 않은 여인.
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당한 여인."
엄마는 그런 여인이었다. 엄마는 그저 우리에게 언제나 엄마일 뿐
다른 누구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나의 소녀시절을, 나의 처녀시절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엄마는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시대가 엄마 손에 쥐여준 가난하고
슬프고 혼자서 모든 것과 맞서고, 그리고 꼭 이겨나갈밖에 다른 길이 없는
아주 나쁜 패를 들고서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몸과 마음을 바친 일생이었는데,
난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까."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딸이 그랬듯이 엄마에게도 어린 시절, 소녀시절 처녀시절이 있었고,
엄마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으며, 남몰래 정인을 생각하기도 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엄마의 부재를 통해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자식들이 엄마를 찾지 못해
통곡하고 있을 때 엄마의 영혼은 자식의 집이 아니라
자기가 태어난 집으로 가고 있었다.
"저기, 내가 태어난 어두운 집 마루에 엄마가 앉아 있네 (....)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이렇게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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