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 5월 당시 전남도청 앞에서 궐기대회를 하고 있는 광주 시민들.
이같은 궐기대회는 목포 등 전남 지역으로 급속히 번져갔다. (사진자료, 5.18기념재단)
왜 우리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게 열려 있어야한다. 하나의 문제 사단만 챙기는 극단주의는 위험하다. 요즘은 전국 어디를 가든지 사통팔달로 훤히 뚫린 도로망 덕분에 여행하는 게 즐겁다. 하지만 국토의 대동맥처럼 쫙쫙 뻗은 교통사정에 비해 우리의 대화와 토론 문화는 너무나 정체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되러 구습을 답습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때가 있다. 이해타산만 좇는 정치집단의 보신행위가 그러하고, 각종 게이트와 리스트에 연루된 사람들의 엉거주춤한 태도가 또한 그렇다. 무엇 하나 명쾌함을 보여주는 떳떳함이 부족하다. 너무 극단에만 목을 매고 있다.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다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다. 똑 같은 것보다 다 다른 빛깔을 가졌기에 삶이 아름다워진다. 이즈음에서 강준만 교수가 제시하는 냉소주의 ․ 가족주의 ․ 서열과 추종주의 ․ 극단주의 등 한국인의 코드 10가지를 치우침 없이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극단에만 목을 매는 것은 너무 천박하다.
한국인의 자기방어기제 10가지 코드는 냉소주의, 빨리빨리 문화, 한국형 평등주의, 최고-최대-최초에 집착하는 자존감을 위한 투쟁이며, 가족주의-정실주의-부정부패로 드러나는 정(情) 문화, 6.25 심성, 쏠림의 소용돌이 문화, 서열 문화, 아버지 추종주의, 목숨 거는 극단주의 등이다(『한국인 코드』,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 광주시민들이 시민군들에게 주기 위해 밥을 짓고 있다(사진자료, 518기념재단).
사실, 한국인의 극단주의는 여러 영역에서 많은 세계 최고기록을 수립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학입시 전쟁의 치열함도 세계 최고요, 유행도 세계 최고다. 인터넷이건 핸드폰이건 뭐든 빠져들었다 하면 세계 최고다. 하지만, 극단주의가 다른 쪽으로 쏠리면 세계 최고에서 세계 최저로 곤두박질치는 속도도 가장 빠르다. 오직 최고만을 우선하는 병폐다.
하지만 그런 낭패감은 운동 경기도 그냥 지켜보지 못한다. 지역주의의 망령이 경기장 내를 어슬렁거린다. 아세안 게임 ․ 올림픽 ․ 월드컵 등 각종 경기는 물론, 근래에 벌어진 여러 국제 경기를 보아도 오직 최고만을, 승리만을 지상최고의 목표인 것처럼 매달린다. 경기 결과는 한국인 특유의 동질성으로 결집된다. 이는 성장일변도의 저급한 경제논리가 우리 사회전반에 길들여진 탓이다.
한국인은 운동경기에만 목숨 거는 게 아니다. 사랑에도, 정치에도, 일등이 되는 것이라면 모든 것에 목숨을 건다. 그렇기에 극단주의 이상으로 집단주의 성향이 도드라진다. 이와 같은 논거 앞에 한국인이라면 그 누구도 ‘나는 아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그는 이미 우리 사회의 ‘왕따’가 되고 만다.
국가간 운동경기로 열광하는 자리에서 ‘대한민국!’을 외치지 않고 상대편을 응원해 봐라. 아마 그 순간 주변의 따끔한 눈초리에 주눅이 들어 기겁을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 80년 당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광주지역 고등학생들(사진자료, 518 기념재단).
오늘은 광주 시민들을 폭군으로 몰아붙였던 광주518 민중민주화항쟁이 일어난 지 29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날의 숭고한 시민정신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아, 근데도 아직 518 정신이 계승되기보다는 대한민국은 오직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극단에 목을 매는 천박함이 도를 넘고 있다. 전남도청 별관 철거 논쟁이 한창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