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소금장인_김선영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6. 22. 23:30

본문

728x90

/ 월간에세이 / 지난 에세이
[ 월간에세이 ] 2009년 2월호
에세이다큐 꾼-소금장인 / 김신영, 월간에세이 기자
“하늘에서 소금꽃이 내리다”

 

질퍽질퍽한 삶의 덩어리가 알알이 박힌 갯벌이 펼쳐지고, 하늘과 땅, 그리고 햇볕과 바람의 끊임없는 들숨과 날숨이 만들어낸 염전이 있는 곳, 증도. 중국 송-원대의 도자기 2만 3000여 점이 발견되어 보물섬이라고도 불리지만,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은 바로 ‘소금’이다. 계절을 망각한 하얀 꽃 소금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국내 최대의 염전인 태평염전을 바라보며 어느새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구절을 걷고 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광활한 태평염전에서 소금은 하늘이 내려주시는 것이라며 함초롬한 웃음을 소금 한 됫박에 담고 살아가는 소금장인 박형기씨(52)를 만나보았다. 자염(煮鹽)을 했던 할아버지, 자염과 천일염을 했던 아버지, 이렇게 3대 째 소금장인의 길을 걷고 있는 그의 검게 탄 얼굴이 햇볕에 번쩍거린다. 바람과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하늘이 내려준 소금, 천일염(天日鹽)을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묻은 소금창고 가득히 담아내는 소금꾼의 삶의 맛은 소금보다 더 짭조름하고 갯벌보다 더 진득하다.

-언제부터 소금장인의 길을 걸었나요?
-박형기: 열일곱 살 때부터 소금일을 시작했죠. 아버지는 어릴 적 말썽만 부리고 싸움질만 하고 다닌 저에게 염전일을 권하셨어요. 반강제적으로 거의 끌려오다시피 해서 시작한거죠(웃음). 그 전에는 염전만 봐왔고, 이곳이 소금 생산지구나 정도로만 생각하며 관심이 없었죠. 그때 당시에는 수차를 돌리며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을 반복했어요. 그야말로 고된 중노동이었죠. 그때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기술덕택에 지금도 토판염을 하고 있어요.

-토판염이 더 힘들지 않나요?
-박형기: 그렇죠. 소금을 얻기 전후에 이물질이 안 섞이게 염전 주변을 늘 청소해야하고, 강도 높은 노동력을 요구해서 고되죠. 특히 염전은 아시다시피 거울처럼 물에서 반사하는 복사열이 엄청 많은데, 여름 뙤약볕에서 일 할 때 정말 힘들어요. 그렇게 일하면서도 장판염에 비해서 소금 생산량은 미미하고. 토판염은 갯벌에서 소금 결정을 만들기 때문에 흙 위에서 피어난 꽃과 같아요. 미네랄 등 영양소가 풍부하죠. 그런데 소비자들은 흙 같은 것이 섞여 거무스름한 토판염보다 새하얀 장판염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우리 토판염보다 더 짙은 회색빛깔의 프랑스산 소금이 고가에 팔리고 있으니 정말 아이러니죠.

-그럼 요즘에는 대부분 갯벌 위에 장판을 깔고 채염하는 장판염 방식을 취하겠네요?
-박형기: 네. 지금 신안 지역에서는 저까지 포함해서 네 명만이 토판염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바닷물을 기계장치에 돌려서 얻는 나트륨 함량 99%의 정제염, 그러니까 일반 가정에서 먹는 소금보다 천일염의 가치가 부상하고 있죠. 그 중에서도 흙 위에서 갯벌의 양분을 먹고 자라는 토판염이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다시 토판염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소금꾼, 장인은 손쉽게만 하려는 새로운 방식을 취하는 것보다 전통방식을 고수하면서 그것을 오늘날 잘 전수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요.

-1년 중 어느 때가 가장 중요한가요?
-박형기: 뭐 사실상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어느 하루, 매 순간 중요하지 않고 바쁘지 않을 때는 없죠. 지금처럼 동절기에 소금을 생산하지 않는다고 해서 푹 쉬고 있는 것은 아니에요. 11월부터 겨울 내내, 이듬해 소금 농사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1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죠. 또 염전일이 일기에 민감한 일이라서 늘 저녁에 지는 해를 보고 그 다음 날씨를 예상해요. 다음날 비소식이 들리면 전날 한 숨도 못 자고 24시간을 꼬박 염전에서 살아야 하는 날도 많아요. 염부들은 기상청보다 더 정확하게 날씨를 알아맞히는데, 이게 다 염전에서 터득한 생활의 지혜죠.

-소금꾼에게 있어서 소금은 어떤 의미인가요?
-박형기: 음. 저는 “소금은 땀이다”라고 생각해요. 땀이 장화 속까지 흥건하게 가득 찰 정도니까. 소금은 바닷물, 햇볕 그리고 소금꾼들의 신명과 땀방울이 만들어내는 결정체가 아닐까 싶네요. 소금 한 알을 얻기 위해 흘리는 수많은 땀방울은 그래서 소중하죠.

-소금밭위의 인생을 사시는데, 염전과 인생을 어떻게 비유할 수 있을까요?
-박형기: 저는 많은 실패를 겪었고,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아왔어요. 소금은 길고 긴 ‘기다림’의 산물이잖아요. 이 엄동설한부터 준비하는데, 갯벌을 일구고, 다지고 깎고, 뒤엎은 다음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죠. 기다림과 노력, 이것은 인생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요?




*김신영 기자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