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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명사들의 솔직하고 다감한 모습
정상으로 가는 길은 자신에게로 가는 길 
 
산악인 허영호 님
“왜 산에 가느냐구요. 그냥 무작정 산에 가고 싶을 뿐입니다. 산에 오를 때 저는 '딱 한 번만 더 가보자'라고 제 자신에게 말합니다. 딱 한 번만 더 가보자 그 이상은 '왜'라고 묻고 싶지 않습니다.”
왜 산에 가느냐는 물음에 우리시대 최고의 산악인 치고는 너무나 간단하게 대답하는 산악인 허영호 씨. 그가 '딱 한 번만 더'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이제까지의 산행은 때마다 어렵고 힘든 고통스럽기까지 한 것이었다.
허영호 씨는 1982년 히말라야 마카루(8,481m) 등정을 시작으로 이듬해 히말라야 마나슬루(8,156m) 무산소 단독등정, 85년 로체살(8,400m) 86ㆍ87년 세계 세 번째인 에베레스트 겨울 등정, 89년 로체(8,156m) 단독 등정, 91년 초오유(8,201m) 등반에 성공했다. 그것은 곧 살속으로 파고드는 초속 20~30m의 강풍, 산소부족, 눈사태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 생긴 틈) 등 고산지대에서 따르는 자연현상과 겨뤄 당당히 이겼음을 뜻한다.
극한의 모험 중에 그는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겼다. 87년 에베레스트 겨울 등반에서는 하산을 하는 길에 빙벽에서 추락했다. 천만다행으로 그와 자일을 묶어 맸던 셀파(짐꾼)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또 히말라야 마나슬루 등반길에서는 눈에 덮혀 보이지 않는 크레바스에 빠졌으나 배낭이 걸리는 바람에 살아나기도 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이것을 보고 주위에선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그는 '운이란 노력하는 자에게 주는 신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요행을 바라기 보다는 자신이 평소에 게으름 피우지 않고 닦은 순발력과 실력을 믿는 눈치다. 실제로 그는 주 3~4회씩 한강시민공원에서 달리기를 하고 주말이면 북한산 인수봉, 도봉산 선인봉 등 서울 근교의 산에 오르는 훈련을 한다. '산'을 오르지 않을 때에도 오직 '산'과 '모험'을 생각하며 바짝 긴장하는 것이다.
텁텁한 시골총각 같은 허영호 씨의 모습 어디에도 '독종'같은 느낌을 찾아볼 수 없는데 위험을 마다 않고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까지 그를 불러들이는 '큰산'의 매력은 무엇인가.
“산에 오르는 일은 나 자신에게로 가는 길입니다. 설혹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 해도 최선을 다했다는 데에 나의 길이 있습니다.” 화가가 그림에서 소설가가 자신의 소설에서 길을 찾듯이 허영호 씨는 당연히 산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한다. 「정상 정복」이 아닌 최선을 다하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는 그의 말에서 그가 방법과 과정을 얼마나 중요시하는가를 알 수 있다. 지난 해 11월 남극점 탐험길에서 그는 도보를 고집했다. 극지원정에선 설상차나 개썰매 등을 이용하기 마련인데 '인간 한계에 도전'이라는 의미를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걷는 것'을 택했다 1백 20kg의 식량과 장비를 끌고 왕복 2천 8백km, 체감온도 영하 50도나 되는 지역을 그는 걸어서 정복했다. 걸어서 남극을 정복한 나라로서는 영국, 이탈리아, 일본에 이은 것이다.
1954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허영호 씨는 어린시절 수줍음 잘 타는 말수 없는 소년으로, 산악인 탐험가로서의 기질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고향 제천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 그가 산과 함께하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러다 중학교 때 등산을 떠나는 누나를 뒤따른 것이 그의 처음 산행이었다. 그 후 점점 산의 매력에 빠져들던 그는 산악인 박용근 씨를 찾아가 등반의 기초이론, 빙벽등반 등 산타는 법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박용근 씨는 허영호씨에게 히말라야 정복의 꿈을 심어준 사람이었다. 허영호 씨가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건 82년 마카루 원정대원으로 선발되면서부터이다. 이듬해 그는 71년에 한국인 등반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공포의 마나슬루에 올랐다. 그것도 무산소 등정으로 찢겨진 한국인의 자존심을 단박에 세워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것은 그가 우리나라 최고의 산악인으로서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산악인으로 자리매김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산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정상에서는 성취감보다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받아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겸손해한다. 높은 산이건 낮은 산이건 매사에 신중한 그는 자신의 능력 밖의 상황이 전개될 경우에는 미련없이 뒤돌아 설 줄도 안다. 로체살 단독 등반에선 정상을 200m쯤 남겨두고 돌아왔고, 북극점 정복에 나섰을 때에는 그 점에 거의 다다랐을 때 전진을 포기했다. 그는 무모함과 용기를 구별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두 번 실패를 허락하지는 않았다.
아내 김영옥 씨와 국민학교 4학년 아들, 다섯 살 난 딸과 서울 상계동 아파트에 살고 있는 허영호씨는 항상 걱정해주고 마음 졸이는 아내에게 너무도 미안하다. 그 아내에게 바치는 책 「걸어서 땅끝까지」라는 그의 작은 자서전이 지난 겨울에 출판되기도 했다.
그는 '정복'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은 단 한순간 자연의 정점에 머물 뿐이라는 자연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겸손은 허영호 씨만이 아는 독특한 느낌일지도 모른다. 그는 단지 가고 싶어 간다. 가다 보니 더 높은 곳 더 어려운 곳을 찾게 된 것 뿐. 가고 싶은 곳이 세계 최고봉 일 때도 있지만 고향 뒷산일 수도 있다. 그에게 오르지 못할 산이란 없다. 오르기 힘든 산이 있을 뿐이다.

필자 : 김선경님 기자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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