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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가수 좋은 어머니_가수 이미자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9. 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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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사람 100인]좋은 가수 좋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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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이미자 님

 

 음악만큼 근원적으로 인간의 감성을 뒤흔드는 마력을 가진 것이 있을까, 그 중 가장 뛰어난 악기인 인간의 목소리는 신이 내린 선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한국의 목소리'로 꼽히는 이미자 님의 노래를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생각이다.


 심금을 울리는 노래로 세월에 힘겨워 하는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그의 노래를 빼고 60~70년대의 한국가요를 얘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녀의 존재는 한국 가요사에 이렇게 중요하다.


 시대가 많이 달라진 지금, 컴퓨터 음악과 현란한 율동이 주도하는 가운데 대중들의 취향도 나이에 따라 각양각색이 되었지만, 신세대 젊은이들의 일반적인 생각처럼 단지 지난날의 대형 가수로만 그를 이해하기에는 왠지 아쉬운 느낌이 든다.


 이에 공감하는 이들에 의해 최근 대중가수로는 드물게 이미자 님의 음악세계를 재조명 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어 그런 아쉬움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다.


 지난 93년 겨울, 효성여대 작곡가 박종문 교수는 권위 있는 국내 음악이론지 「낭만음악」에 「이미자 론(論)」을 실어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교수는 논문에서 '가늘면서 비단결같이 고운 소리결을 지닌, 한 세기의 한번 나올까 말까한 미성의 소유자인 이미자 씨는 마리아 칼라스나 국악인 김소희 씨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음악인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이미자 씨는 자신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가 때때로 오해로 얼룩지거나, 제대로 이해되거나 전혀 흔들리지 않고 가수이자 세 자녀의 어머니, 한 사람의 아내로서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쉰넷의 나이에도 '가요계의 여왕'으로서의 품위는 여전히 읽지 않고 있다.
 “성실한 마음가짐으로 노래해야 하고 부르는 사람의 인간 됨됨이가지 포함해 가수의 모든 것이 합쳐져야 하나의 작품이 된다는 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반짝 가수들이 많은 요즘, 은은하게 오랫동안 빛을 발하는 가수로 남을 수 있는 비결이 거기 있었다.
 이미자 씨가 불세출의 가수로 우리 가요계에 등장한 것은 문성여고 졸업반 때인 58년 우리나라 최초의 TV방송인 HLKZ아마추어 노래자랑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부터였다. 그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데뷔 5년 만에 「동백 아가씨」로 가요계의 여왕자리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35년 넘게 가수의 길을 걸으며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그녀에게, 흔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가수들이 보여 주는 잦은 변신은 너무도 거리가 먼 얘기였다.
 세련된 무대 매너나 호화로운 율동 없이 오직 노래 하나로서 승부한 그의 가수생활이 대중들의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비결로 그는 '정석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서양음악가들 중에는 특히 모짜르트를 좋아한다. 장르는 다르지만 뛰어난 음악성으로 음악적 순수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서로 통하는 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노래 인생이 늘 화려하고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군사정권에 의해「동백 아가씨」를 비롯해 「섬마을 선생님」「기러기 아빠」등 히트곡마다 속속 금지곡이라는 족쇄가 채워지는 불행을 겪은 것이다. 왜색창법에 비탄조의 노래라는 누명 속에 해금될 때까지 23년간 계속된 그녀의 가슴앓이는 대중 가수를 제대로 대접하고 조명할 줄 모르는 시절의 무지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도 깊은 상처가 되었다.


 자기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진행되어 가고 있는 지금,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지만 그다지 큰 욕심은 없는 듯 하다.
 “가정주부로서 더욱 충실하게 살아가고 싶어요. 지난 89년, 가수생활을 총결산한다는 심정으로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을 가졌고, 작년에도 데뷔 35주년을 기념하는 큰 무대에 설 수 있게 돼 가수로서는 여한이 없는 셈이죠.”
 그녀는 자신에게 붙여지는 화려한 칭호나 팬들의 박수갈채만큼이나 작은 일,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을 깊이 껴안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화려한 의상으로 단장하고 무대에 설 때보다 일상 속의 수수한 모습이 더욱 멋스러워 보인다.


 작디작은 체구로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과 1백여 차례의 크고 작은 수상경력을 가진 그녀이지만 특별히 꾸미지 않는 자연스런 멋과 노래, 애써 인기를 구걸하지 않는 품위와 자존심, 성실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인생관,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것들과 자신에게 주어지는 평범한 주부로서의 역할까지 사랑할 줄 아는 넉넉함이 더욱 그녀의 존재를 돋보이게 한다.


 간간이 TV가요 무대에 서고, 매년 연말마다 소년소녀 가장 돕기 디너쇼나 송년 콘서트를 준비하는 일, 때때로 마련되는 독창무대에서는 것으로  활동에 제한을 두는 듯 해 많은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다고 말하자 '가정주부가 더 힘든 것 같기도 해요. 그러나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지요'라면서 밝게 웃는다. 집안일과 70년에 결혼한 남편 김창수 씨(KBS심사위원)와, 유학중인 아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나날을 보내면서도 일요일이면 인근 성당에 나가 가정의 평화를 기도하는 전형적인 한국 주부, 어느 골목 어귀에서나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친숙한 여인으로 그녀는 거듭나고 있다.

 

필자 : 조선혜님 자유기고가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5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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