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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9. 2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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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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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의 구치소는 시장 바닥같이 붐빈다. 수감자들이 행군해서 면회실로 오고 간다. 줄 서 있는 길다란 목재의자에 빽빽히 앉아서 담당 변호사들을 기다리기도 한다. 나는 절도죄로 구속된 일흔두 살의 한 노인을 만났다.

“좀 잘해 주이소. 내 나가면 보답할 깁니더.” 그 노인은 작은 눈을 반짝이며 비굴한 미소를 지었다. 누렇고 헐렁한 소매 사이로 나온 갈퀴 같은 손이 삶의 역정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절도 전과 16범인 그는 이십사 년 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일년 전에 보호감호소에서 나왔다가 이번에는 길가에 놓여 있던 고물 통닭구이 기계를 가져 가려고 끙끙거리다가 잡힌 것이다.

“가족은요?”

“부모 없이 자라서 스무 살 때 결혼했는데 내가 바람피우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대서 감옥에 들어가니까 마누라가 가 버렸어요. 낳아 논 새끼도 없구요.”

그가 남의 말하듯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 이후 오십 년 간을 어떻게 사셨어요?”

“살긴 뭘 어떻게 삽니까? 노가다하면서 합숙소와 감옥을 왔다갔다하면서 살았지.”

“여기는 왜 또 잡혀 왔어요?”

내가 알면서 물었다.

“길가에 통닭구이 기계가 있는 거라요. 그래서 그냥 구경하려고 들춰 보는데 소리가 나니까 사람이 나와서 나를 잡았어요. 도둑질 할 맘은 정말 없었던 거라요.”

“몇시에 그랬어요?”

“새벽 두시 십분.”

“그 시간에 잠자지 않고 길거리에서 구경을 하고 다녀요?”

“….”

나는 그의 눈동자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 노인의 눈동자는 탁했다. 눈동자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그는 일흔한 살에 감옥에서 나와 고물장사를 시작했다. 갱생보호소에서 받은 리어커 한 대와 돈 12만 원이 밑천이었다. 묵은 신문도 가져다 넘기고 공사장에 있는 철근 짜투리도 가져다 팔았다. 결국은 가져 가기에도 벅찬 무거운 통닭구이 기계를 탐낸 것이었다. 

“옛날 같으면 내 나이면 땅 속에 들어가는데 생명이 연장되니까 감옥도 더 사는 거라요. 이럴 줄 알았으면 있던 교회에서 가만히 청소만 해주고 밥 얻어묵을 긴데….”

그가 후회하는 어조로 한탄했다. 그에게 있어 절도는 이미 죄가 아니다. 그것은 몸 속 깊숙이 뿌리박고 삶을 갉아먹고 있는 병균이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모든 일과 삶은 언제나 행복과 불행의 경계선 위에 있는 것이지 결코 행복만이라든가 불행만의 생활은 아닌 것 같다. 똑같은 일을 가지고서 어떤 사람은 그것을 행복으로 느끼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불행으로 삼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비슷한 조건 아래서도 삶은 천차 만별이다. 

충북 음성의 나환자촌에서 우연히 두 노인을 만났다. 그 가운데 한 노인은 나환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온 소리꾼 출신이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민요를 좋아해서 이름 없는 밤무대나 잔칫집으로 다니면서 소리를 해주며 살아왔다.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늙음과 철저한 가난이었다. 하지만 그는 새로이 얻은 믿음으로 틈틈이 소외된 나환자촌에 가서 구성지게 소리를 해주었다. 그가 이런 얘기를 했다.

“제가 처음 나환자들 앞에서 소리를 할 때 모두 달려와서 내 손을 잡더라니께요. 나같이 사회에서 쓸모 없는 사람들도 거기서는 특별난 사람입디여. 신나서 어깨가 으쓱하더라니께요. 그런데 나도 사람이니께 그 사람들이 손을 잡을 때 확 피하고 싶었지라우. 그렇지만 고러쿠름이야 할 수 있었겄소? 그냥 될 대로 돼뿌리라 하고 가만 있었지. 이 좋은 일하는디 내가 병에야 걸리겠소? 내 집 한번 가져 보지 못하고 음식점에서 고기 한번 제대로 먹어 보지 못해도 나는 좋소. 정말 신나요.”

그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복숭아 꽃 같은 붉은 빛이 감돌았고 그의 눈은 맑은 시냇물같이 투명했다. 살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 아래서도 자신의 인생을 꽃피울 수 있었다. 욕심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소리꾼 노인이 방문한 나환자촌의 지도자인 노인을 만났다. 온 얼굴이 코끼리 껍질같이 균열되었고 나균이 파먹은 왼쪽 눈은 보기에도 섬뜩했다. 그의 삶의 역정은 이러했다. 

지방의 명문고와 대학을 나온 그는 공무원을 하는 도중에 나병에 걸렸다.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했지만 모진 게 생명이었다. 구걸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밥 대신 침을 뱉기도 했고 때려서 내쫓기도 했다. 그렇게 지내던 그는 논산 근처의 야산에다 움막을 짓고 비슷한 처지의 나환자들을 모아 자립하기 시작했다. 힘겹게 투쟁하며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마을은 수천 마리의 자동화된 양계장, 양돈장, 그리고 소들이 있는 낙원이 되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막내아들놈이 지난해 서울대학교 시험을 봤어요. 아깝게 떨어져서 지금 재수를 하고 있어요. 보고 싶지만 제가 어디 찾아갈 수 있나요? 몸이 이렇게 되니 그럴 수는 없지요. 젊어서는 자학하느라고 구걸을 하면서 반항도 하고 몹쓸 짓도 했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안 그래요. 모든 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혼자 조용히 죽어야죠….” 

세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항상 깨어 있고 현실에 충실한 삶이 진정한 인생이었다.

필자 : 엄상익님 변호사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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