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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흡기 제거 후에도 살아계신 그 분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9. 2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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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흡기 제거 후에도 살아계신 그 분
<추천칼럼> 존엄사보다 존엄한 눈물 한 방울
 
채수경

스스로 태어나지 않은 인간에게 스스로 죽을 권리가 있나? 미시간 의대를 나와 한국전쟁 중 군의관으로 복무하기도 했던 잭 케보키언은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을 실천했다. 1990년 자신이 발명한 자살기계 ‘머시트론(Mercitron, 자비기계)’을 이용하여 불치병 환자 130명의 자살을 도와줌으로써 ‘죽음의 의사’ 혹은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1998년 9월 17일 루게릭병에 시달리던 토마스 유크의 안락사를 녹화테이프를 CBS ‘60분’에 제공하여 전국적 물의를 야기했고 결국은 2급 살인죄로 기소되어 10-2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지난 해 가석방됐었다. 출옥하자마자 79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의 죽을 권리를 빼앗은 연방대법원의 폭압에 맞서겠다”며 미시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그 선거구에는 “인간이 인간의 자살을 부추기거나 도와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는 유권자들이 더 많았던지 2.7%의 저조한 득표율로 고배를 들고 말았다. 
 
세상은 산 자들의 것, 죽음마저도 산 자들을 위하여 포장되고 해석된다. 케보키언 등이 합법화를 주장하는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만 해도 그렇다. ‘안락사’는 흔히 환자가 동의한 ‘자발적 안락사’와 환자가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 또는 국가의 요청에 의한 ‘비자발적 안락사’로 나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만큼 큰 고통과 두려움을 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다른 건 몰라도 ‘편안하고[安] 즐겁게[樂] 죽는다[死]’는 반어법이 죽는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의 관점이라는 것만큼은 케보키언 본인 또한 부인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euthanasia’는 ‘좋다’라는 의미의 접두사 ‘eu-’에 ‘죽음’을 뜻하는 ‘thanatos’의 파생형 ‘thanasia’가 붙어서 만들어진 그리스어로서 ‘좋은 죽음’이라는 의미, 죽는 사람에게 좋아야 한다는 함의가 읽혀지지만 그 ‘좋다’라는 판단을 죽는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이 내리는 게 문제라는 말이다.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안락사와는 달리 인공호흡기 부착 등 생명 연장 치료를 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는 ‘존엄사(尊嚴死, death with dignity)’도 마찬가지다. 까놓고 말하자면 “구질구질하게 목숨을 연명하여 산 사람 고생시키지 말고 깨끗하게 죽어서 칭찬 받으라”는 무정박정냉정한 요구가 아닌가? ‘dignity’라는 말의 뿌리 또한 ‘가치 있는’을 뜻하는 라틴어 ‘dignus’로서 그 ‘가치’라는 게 죽는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위한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지난 5월 21일 한국의 대법원이 존엄사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린 후 한 달만인 23일 오전 10시 21분께 존엄사 논쟁의 당사자였던 올해 77세의 김모 할머니의 인공호흡기가 제거됐다. 김 할머니의 발이 움찔하자 딸들이 발을 주무르며 “엄마, 천국 가서 아버지도 만나고...”라고 흐느꼈고, 가족들이 오열 속에 ‘어버이 은혜’를 부르는 가운데 호흡기를 제거하기 직전 김 할머니가 눈을 약간 뜬 상태로 입을 움찔움찔했고, 인공호흡기를 떼어내자 가쁜 숨을 몰아쉰 김 할머니의 두 눈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해 병원 측에서는 “크게 의미 있는 동작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지만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을 김 할머니의 두려움과 슬픔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못해 저려온다. 
 
김 할머니는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움찔움찔했을까? 어느 인간이 감히 김 할머니의 마지막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까? 모든 생명은 귀천 없이 고귀한 것, 김 할머니의 존엄사보다도 김 할머니가 생과 사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마지막으로 흘린 눈물 한 방울이 더 존엄하다는 것을 믿어마지 않는다. <채수경 / 뉴욕거주 언론인> 


기사입력: 2009/06/24 [14:12]  최종편집: ⓒ newyork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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