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학생 맡기 전 설렘...결혼 전 신랑신부의 마음일까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0. 16. 17:42

본문

728x90

학생 맡기 전 설렘...결혼 전 신랑신부의 마음일까
아이들에게 참다운 사랑의 시작, '인정과 배려'
07.03.01 08:20 ㅣ최종 업데이트 07.03.01 08:20 박종국 (jongkuk600
 

2월, 그 막바지에 서서

 

새해를 맞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이다. 매서운 칼바람도 잦아들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거죽도 생기를 되찾고 있다. 작년 개학 첫날엔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었다. 겨울 내내 눈발 한번 보이지 않다가 끝내 꽃샘추위가 쌤통을 부린 것이다. 이번에도 그럴까. 양파마늘밭이 겨울가뭄에 힘겨워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즈음의 하늘은 너무나 포근하고 쾌청해서 얄밉다.

 

@BRI@어제(27일) 고등학교 동창들과 밤늦게까지 어울렸던 탓에 하루 종일 누워 보냈다. 지난 한 달 동안의 시간들을 야무지게 마무리한 것이다. 개학하자마자 아이들 졸업식 준비하랴 문집 편집하랴 전교조 일에 충실하랴 온통 바빴다. 사실 느슨하게 사는 것보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치받혀 바쁘게 사는 편이 훨씬 더 마음 편하다. 이런 나를 두고 친구들은 지지리 일복이 많다고 지청구를 해댄다.

 

정말 일복이 많은 것인지 <에이블뉴스>와 <우리아이들>, <영산아이들>을 비롯한 여러 지면에 많은 글을 썼고, 무지하게 많은 원고들을 낱낱이 읽었다. 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두루 만나고 책도 실컷 읽었다. 겨울 짧은 햇살처럼 2월도 그렇게 꼬리를 여미는가 보다.

 

한해살이를 마라톤에 비견하면 어떨까? 그러면 1·2월은 출발선에 나서기에 앞서 워밍업을 하는 단계가 아닐까. 어떤 운동선수라도 실전에 나서기 전에 반드시 준비운동을 한다. 몸 에 땀이 후줄근하게 나도록 몸을 풀어야 한다. 그래야만 실제 경기에 투입했을 때 그 동안 갈고 닦았던 가량을 맘껏 발휘할 수 있다. 축구나 야구를 비롯한 운동경기에 있어 교체선수로 명단에 오른 선수는 계속 열심히 몸 풀기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들 삶에 있어서 첫 두어 달은 한해를 알토란 같이 살아나가기 위한 워밍업이다.

 

하는 일마다 한해살이의 계획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정작 3월이어야만 모든 게 새로 시작된다. 아이들을 만나야만 하고자 하는 일을 마땅히 가려내고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열 서넛 살, 고만고만한 아이들, 얼굴 다르고, 생각 다르고, 하는 행동이 다 다르다. 그렇기에 한 학년을 제대로 이끌려면 다 다른 아이들의 성격과 행동특성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아무리 조그맣고 사소한 일이더라도 일단의 계획을 갖고 부대끼는 것과 그냥 주먹구구로 해결하려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교사들은 한해살이를 어떻게 꾸릴까.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다독거려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게 아이들을 향한 참다운 사랑의 시작이다. 그런 바탕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나면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게 되고, 그들이 하는 몸짓 하나하나가 더욱 예뻐 보이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런 속에서 교사로서의 참 좋은 보람을 맛볼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내가 근무하고 있는 농촌아이들은 가정환경이 열악하기 그지없다. 그만큼 손 갈 데가 많다.

 

그런데도 학교나 학년에 따라서 애초 계획했던 일들이 깡그리 흐트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느 집이나 집안 어른의 생각이 편협하거나 고루하면 하던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교사가 아무리 좋은 계획을 가지고 아이들을 만난다 해도 학교장의 경영마인드에 따라 쉽게 좌지우지된다. 경영철학이 없는 교장을 만나면 그야말로 한해 교육을 망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 어떤 성향의 교장을 만나도 교육적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아이들을 향한 나의 교육철학은 변함없다. 사회 전반에 걸쳐 굽실거리고, 갖은 미사여구로 아부하며, 제 속을 빼고 사는 주구(走狗)들이 많다. 학교사회도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한 데가 학교다. 그만큼 승진의 부나비들이 많은 까닭이다.

모레면 봄꽃같이 화사한 웃음을 가진 건강한 아이들을 만난다. 별일 없으면 올해도 6학년 아이들을 맡는다. 그들과 나는, 서른 살 이상의 나이차가 난다. 한 세대를 거칠 만큼 세대차이가 난다. 그렇지만 손톱만큼도 걱정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그들이 세대 차이를 느낄 겨를이 없을 만큼 눈높이를 같이 하는 비법(know-how)을 갖고 있다. 마음 설렌다. 아이들 어서 만나고 싶은 까닭이다. 마치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 같은 기분이랄까. 이제 출발선에 다가섰다.


출처 : 학생 맡기 전 설렘...결혼 전 신랑신부의 마음일까 - 오마이뉴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