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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규칙에 대한 오해와 편견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0. 1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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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규칙에 대한 오해와 편견
애써 아이들 통제할 까닭 없어... 다 다른 게 희망
07.05.02 11:45 ㅣ최종 업데이트 07.05.02 13:59 박종국 (jongkuk600

 5월 둘째 날, 별다른 이유 없이 그저 기분 좋다. 출근하면서 차창 밖으로 스쳐 보이는 연초록의 풀이파리들은 여느 날보다 한껏 싱그럽다. 가로수도 어제와는 또 다른 짙푸름으로 다가왔다. 시골에 사는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린다. 마치 무엇에 쫓기듯 오직 앞만 보고 질주해야만 하는 도회지의 아침, 그 팍팍한 출근길,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런데 그렇게 좋았던 기분도 막 교문을 들어서고 싹 가셨다. 결코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운동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고 열네댓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강압적인 호통 속에 고개를 파묻고 닦달을 듣고 있었다. 짐작컨대 늦게 등교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때가 오전 8시 42분, 그렇다면 나 자신도 무릎을 꿇어야 한단 말인가. 지각했다고. 변명 같지만 아이들마다 학교에 늦게 온 사정이 다 있었을 텐데, 정작 아이들을 다그치는 분은 그것까지 생각하고 아이들을 붙잡아 두었을까. 단지 명령하고 지시했던 일들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먼저가 아니었을까.

 

이건 아니다. 중학교도 아니고, 0교시를 하는 고등학교도 아닌 초등학교에서 딱히 등교시간을 정해 놓고 일사불란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은 뭔가 좋지 않은 규칙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좋은 버릇을 들이기 위한 방안으로 시행하는 것은 좋다.

 

악법도 법이니까. 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을 묻지 않고 거의 일방적으로 등교시간을 정하고, 매일 아침마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규칙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아무리 어렸을 때 책 읽는 습관을 키운다지만 생각이 다 다르고 행동이 다 다른 아이들에게 마치 판박이처럼 하나의 습관을 가지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결코 훌륭한 처방전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독서습관을 들이려면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모아서 연중 거의 방치하다시피한 도서관을 이용하게 하면 된다. 아니, 굳이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모을 까닭이 없다. 아침활동 시간 불과 삼십 분, 그 자투리 시간이면 그냥 자기 교실에서 읽어도 된다. 그러나 학교 관리자 위치에 서면 생각이 다른가 보다. 그렇게 해서는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조건 담임교사가 해당학반에 시험 감독처럼 눈알을 부라리며 책 읽기를 다그쳐야 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애초부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들 교육, 규칙과 통제보다 인정과 사랑으로 대해야

 

아이들 얼굴 모습 다 다르듯이 제 제 하고픈 일 다르다. 학교에서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아침활동 책읽기만큼, 덩달아 공차고, 막무가내로 뛰놀고 싶어 한다. 또한 만화를 그리거나 인터넷을 하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속닥거리는 것도 좋아한다. 다 다른 생각을 가진 아이들을 한데 묶어놓고 이것 하랴 저것 하라며 강요하는 것은 자라는 아이들의 개성은 물론 창의성의 싹을 깡그리 짓누르는 것처럼 얄궂은 행위다. 그렇기에 애써 아이들을 통제할 까닭이 없다. 들판의 잡초들이 그냥 막자라는 것 같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그 속에도 분명 질서정연한 삶이 있다. 잡초들의 생존전략이다.

 

내 자신이 결정권을 가진 위치가 되지 못하다보니 낯부끄러운 행위를 보아도 그저 외면하는 게 비책인 게 안타깝다. 사정이 그렇다고 당장 학교 관리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평생 평교사로 아이들 곁에 서겠다는 내 교육철학은 정년까지 유효하다. 그런데도 일부 학교 관리자들은 스스로 권위를 세우겠다고 안달한다. 때문에 학생들은 물론 전체 교직원과 의사소통체계까지 함부로 무시하며 교장으로서, 교감으로서, 장학사로 허울뿐인 권위 지키기에 충실한 것이다. 적어도 내 사견으로 단언컨대 교단에서 직접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는 사람은 선생이 아니다. 그러한 사람이 학교에 있다면 그는 학교 관리자다.

 

늘 아이들을 만나면 싱그럽고 따습다. 채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잡다한 학교규칙을 알면 얼마나 알고, 어기면 얼마나 어길까. 무엇보다 규칙을 벗어난 행동을 발견했을 때는 그 과정을 물어보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인정하며, 배려해야 한다. 그러고도 똑같은 행복을 되풀이하거나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을 때는 당장에 따끔하게 꾸짖어야 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아이들 누구 하나 그렇게까지 매몰스런 아이는 없다. 아이들의 순정한 눈빛과 마주하면 그들에게 다함없이 필요한 것은 칭찬과 사랑이 묘약이라는 것을 알게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성장시키는 비결은 자잘하게 마련하는 규칙과 통제, 체벌과 다그침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칠팔십년 대의 교육방법으로 이천년 대의 아이들은 가르치겠다는 생각은 똑같은 붕어빵틀을 만들겠다는 외고집이다. 단언컨대 아이들은 교과서만 달달 외는 앵무새도 아니요 판박이 노릇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떠들지 않고 방방대지 않는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 말 잘 듣는 아이, 규칙을 잘 따르는 아이, 예의 바른 아이보다는 제 생각을 밝혀 말 할 줄 알고, 자기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아이가 더 발전적이다. 자연을 닮은 아이로, 풀꽃을 닮은 아이가 보다 더 희망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어느 한 사람의 교육철학이나 신념, 교육적 행위를 폄하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따라서 행위 주체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습니다. 글의 내용 중에 다소 제 개인적인 판단에 치우친 경우도 있음을 이해바랍니다.


출처 : 학교규칙에 대한 오해와 편견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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