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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에게 자유를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0. 2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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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에게 자유를

얼마 전 <행진>,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곡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룹 들국화의 전인권 씨를 만났다. <행진>이란 노래엔 암울했던 과거마저 사랑하면서 앞으로 달려나가려는 그의 영혼과 자유에의 갈망이 녹아 있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의 이런 갈망이 마약 복용에 이르게 한 것은 아닌지, 나는 내심 생각했다.

우리가 만난 곳은 구치소의 비좁은 공간이었다. 그는 마치 선생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어린 학생처럼 말을 시작했는데, 눈자위가 벌개지도록 쉴새없이 눈물을 흘렸다. 입보다는 온몸으로 말하는 그는 마음이 너무 열려 있어 상처받기 쉬운 사람으로 보였다.

“저는 그저 음악하고 그림이 좋았어요. 그 외에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는 그림을 좋아해서 다섯 살 때부터 그리고 또 그렸다.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노는 것보다 동화 책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 더 즐거웠다. 열아홉 살 때, 그는 친척형에게서 우연히 기타를 배웠다. 그때부터 그는 기타를 든 고독한 방랑자가 되어 노래하는 삶을 택했다. 몇 푼의 생활비를 위해 밤 무대에 섰다. 하지만 음악은 괜찮은데 못생겼다고, 안경을 써서 손님들이 싫어한다고, 댄스곡을 하지 않고 비틀즈 풍의 곡만 연주한다고 번번이 쫓겨났다. 하지만 무대만 있다면 그는 어디든 좋았다. 출연료를 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노래를 부를 수만 있으면 그냥 좋았다. 그렇게 음악생활에 빠져들어 살다 보니 어느덧 나이 서른이 훌쩍 넘었다.

어느 비오는 밤이었다. 빗물이 점점이 방울지는 창문을 보면서 그는 어둡기만 한 자신의 과거를 찬찬히 돌이켜보았다. 하지만 그 과거를 부정하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어두운 과거를 사랑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주제로 가사를 쓰고 곡을 붙였다. 그 노래가 바로 그의 출세작인 <행진>이었다. 이 노래로 그는 세상에 알려졌고, 그의 인기는 날로 치솟았다.

그러나 성공은 또 하나의 다른 시작이었다. 그는 음악이론에 약해서 외국곡을 쉽게 소화하다가도 어느 순간 벽에 부딪혔다. 그는 실력이 부족함을 절감했다.

그러던 중 한 후배의 소개로 김덕창(가명) 씨를 만났다. 혼자 병원에 입원해 살다시피하는 김덕창 또한 기구한 운명의 음악인이었다. 음대에서 기악을 전공한 그는 유명 밴드의 베이스 주자로 앞길이 창창했지만 스물다섯 살에 엄청난 시련이 닥쳐왔다. 생인손 앓는 것처럼 손가락 끝이 곪기 시작해 이런저런 약을 쓰고 주사도 맞았지만 낫지 않았다. 몇 달 뒤 의사들은 그에게 '버거스씨병'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피가 모세혈관까지 가지 못해 손발이 점차 썩어 들어가는 병으로, 단번에 사람을 몰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급습해서 손이나 발을 가져가는 무서운 병이었다. 결국 서른한 살 때 그는 양쪽 다리를 잃었다. 지방의 이름 없는 무대에서 그는 의족을 딛고 남은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쳤다. 이윽고 병균은 손가락까지 침입했다. 그가 손가락을 잘라 내고 병원에 있을 때 전인권이 음악이론을 배우러 온 것이었다.

마음이 활짝 열려 있던 두 사람의 영혼은 단번에 통했다. 연주가 불가능해진 김덕창은 그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음악이론을 가르쳤다.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때까지만 산다는 게 그의 남은 소망이었지만 생명의 불꽃은 얼마 남지 않았다. 김덕창은 남몰래 히로뽕에 손을 대고 있었다. 몰핀 주사가 한 시간 효력이 있는데 비해 히로뽕을 하면 열다섯 시간 동안 고통을 잊게 해 주었다. 불치병의 치료비는 엄청난 데 비해 삼십만 원어치의 히로뽕은 보름 동안의 고통을 없애 주었다. 절단 수술을 지켜보고 밤새워 간호하는 전인권과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김덕창의 관계는 우정을 넘어선 한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어느 날 김덕창은 음료수에 히로뽕을 몰래 타서 전인권에게 권했다. 한 모금 받아 마시던 전인권은 입에 들었던 것을 조용히 버렸다. 그 역시 히로뽕을 접한 적이 있었고, 그 죄값을 치르고 나서는 철저히 끊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김덕창이 주는 잔만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인생의 막바지에 치달은 김덕창의 함께 하고픈 그 애절한 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있었다.

얼마 뒤 검거 된 히로뽕 판매책의 제보에 의해 두 사람은 구속되었다. 이 소식이 신문에 보도되자 그들에게 엄청난 돌팔매가 던져졌다. 뉴스 시간에 그들의 고개 숙인 모습이 경쟁적으로 보도되자 그들의 예술과 삶은 단 한 번의 항변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매장당했고, 차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져 갔다.

“가난했을 때 저는 기타와 전축을 가지는 게 소원이었어요. 지금도 큰 욕심은 없어요. 그저 같이 음악을 즐기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가 정말 행복해요.”

그러면서 그는 자기보다 감옥 안에서 죽어가는 김덕창을 더 걱정했다. 그 친구는 아무 잘못없으니, 재판장님께 그저 잘못했다고만 해달라고 빌었다. 땀에 절은 헐렁한 수용자 옷에 긴머리를 풀어헤친 채 눈물을 흘리는 그 앞에서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필자 : 엄상익님 변호사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9년 09월호


퍼온 곳 : 좋은생각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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