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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예쁜 그대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0. 2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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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예쁜 그대 


유럽엔 사람을 읽는 도서관이 있다. 이름하여 '리빙 라이브러리.'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는 신 개념 도서관으로, 책 대신 '사람'을 빌려 준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준비된 도서 목록(사람 목록)을 찬찬히 훑어본 뒤 읽고 싶은 책(사람)을 선택한다.

 런던의 리빙 라이브러리에서 나는 빅토리아를 만났다. 빅토리아는 수많은 도서 목록 중에서도 눈에 팍 띄는 친구였는데, 그건 그녀가 선천성 안면 기형이라는 병을 앓기 때문이다. 얼굴 크기가 보통 사람의 두 배도 넘는 데다 좌우가 심하게 비대칭인 병. 게다가 돌출된 눈은 빨갛게 충혈돼 무서운 인상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화를 나눠 보니 빅토리아는 지적이면서도 유머가 철철 넘치는, 그야말로 매력 그 자체였다. 알고 보니 변호사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다. “책 표지만으로 내용을 판단하지 마라.”라는 서양 속담처럼, 역시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할 건 아니지 싶었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나는 그녀와의 수다에 푹 빠졌고, 그녀의 기형적인 외모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최소한 나는 그렇게 믿었다. 더 이상 그녀를 외모로만 판단하지 않는다고.

 그 순간, 나와 열심히 수다를 떨던 빅토리아가 고개를 들더니 갑자기 환하게 웃는 게 아닌가. 그러자 저쪽에서 영화배우 주드 로를 닮은 남자가 다가와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 어쩐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빅토리아가 그를 소개해 줬다. 자신의 남편이라고. 쿵!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외모에 차별의 시선을 거뒀다는 건 나의 착각이었다. 이 커플을 보는 순간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으니까. 이렇게 잘 생긴 남자가 자신과 정반대인 여자와 왜 결혼했을까. 이렇게 멋진 남자와 저렇게 못생긴 여자는 매일 얼굴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등등.

 허둥지둥하는 나를 보며 빅토리아는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한마디를 던졌다. “이 남자 눈에는 내가 제일 예쁘대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사랑스러운 눈빛을 주고받는 이 커플. 남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보는 특별한 재능을 가져서 더욱 행복해 보였다.


김수정 님 | 방송작가

- 《좋은생각》2009년 11월호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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