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독재권력의 귀환? 틀렸다 | ||||||||||||||||||||||||||
[정문순 칼럼] 개혁 정부에도 존재했던 '용산', 역사는 연속된다 | ||||||||||||||||||||||||||
용산참사 대책위원회에서 제작한 관련 영상물을 보게 되었다. 방송사에서 보도용으로 찍은 화면과 관련자 인터뷰를 모아 만든 영상이었다. 눈앞에 전개되는 비현실적인 장면이 가슴을 짓눌렀다. 사건 당일 망루에서 불길이 시커멓게 치솟자 건물 바깥에서 “저 안에 사람이 있다”라는 외침이 들려온다. 지옥불이 이보다 처참할까. 어버이날을 맞아, 화마에 희생돼 냉동고 속 얼음장 몸으로 누워 있는 부친에게 보내는 아들의 편지가 낭독될 때는 끝내 눈물이 솟았다.
말은 ‘예쁘게’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내가 정말 불편했던 건 백주대낮에 멀쩡한 사람이 죽어가는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세력의 귀환이 아니라, 선악이 선명히 대비되는 단조로운 현실을 접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정답이 분명히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숨이 막힌다. 그 명백한 이분법의 세계를 목도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선과 악이 등을 맞대고 있는 상황은 둘 중 하나는 옳거나 나쁘다 외에 생각거리를 주는 것은 없었다. 영상을 다 보고도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별로 없을 정도로 질려버렸지만, 예의상 마음에 그다지 없는 말을 입에 올린 것이 목에 걸렸다. 이 영상은 한 시대의 야만과 폭력을 기록하는 증언자로서는 가치가 있지만 작품의 미학을 따지면 빵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는 차라리 <워낭소리>처럼 논쟁을 일으킬 만한 영상이라면 나는 할 말이 무궁무진했을 것이다. 악당 역할을 완벽하게 해냄으로써 선과 악으로 세상을 쪼개어 보도록 만드는 데 톡톡히 기여한 이명박 정권이 증오스러웠다. 결국 남는 건 미움과 분노밖에 없었다. 지난 시대, 독재정권의 악과 싸우면서 사람들의 심성도 그들이 극복하고자 하는 대상을 따라 피폐해진 것도 사실이다. 시인 정희성은 80년대에 악과 싸우는 시만 쓰다 보니 자신의 시에도 성냄과 분노만 남았다고 훗날 자책해야 했다. 선악과 편을 가르는 데 사람들의 사고가 익숙하다보니 어느 쪽에도 귀속하기 힘든 것들은 소외되어야 했다. 목숨이 걸린 일 앞에서 당장 급해 보이지 않은 사안들은 나중으로 밀리거나 시시한 것으로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독재정권과 싸우는 절박한 시국에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권리를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수자의 발언은 형식적인 민주주의라도 획득된 후에야 울림을 얻을 기회가 생겼다. 독재 정권의 귀환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소수자의 목소리를 솎아내어 걸음을 떼기 이전으로 되돌려 놓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재정권이 귀환했다고 보는 것이 얼마나 정확한 평가인지는 의문이다. 양극화는 오히려 독재정권 치하에서 생소한 개념이었으며, 부의 불공정한 분배나 가진 자의 독점욕을 보장하는 법과 제도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전된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철거민이 망루에서 농성한다고 살인 진압한 정권을 악의 편으로 호명하는 것은 쉽지만 그 악의 뿌리는 역사가 길다. 정치권력이 가진 자의 욕망을 대변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이명박 정부 이후 비로소 시작된 일도 아니다. 용산 참사의 직접적 원인이 된 뉴타운 건설 사업은 이명박 정권이 아니었어도 추진되었을 일이다. 다만 차이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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