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언제나 나와는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 정도가 부쩍 심해지는 것 같다. 세상 탓을 하는 게 아니라 나의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다. 한 이틀 기온이 화씨 60도를 넘나들자 봄이 온 걸로 착각하여 가지 끝의 망울을 부풀리고 있는 아파트 입구의 목련이 멍청해 보이고, 왠지 허전하게 느껴질 때는 적당히 씁쓸한 블랙커피 한잔 마시면서 추억의 창고에서 낡은 시집을 꺼내 읽던 사람들까지 돈 돈 돈 염불을 외우면서 주식시세표를 들여다보는 것도 시시껄렁해 보인다. 연말이랍시고 오른쪽 왼쪽 구분 안가는 여자 고무신 같은 이민 사회에서 그나마 말이 통하는 지기들로부터 “해 넘어가기 전에 술이나 한잔 하자”는 연락이 오지만 이제는 그런 공짜 술조차도 귀찮다. 왜? 내가 그들을 즐겁게 해줄 자신도 없거니와 그들이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세상이 재미없고 따분해진 게 아니라 내가 재미없고 따분해졌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참 싫지만....세상이 그걸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 더 싫다. 어느 새 ‘귀차니스트’가 돼버렸다.
‘귀차니스트’는 2000년 초 권윤주라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스노우캣(Snowcat) 혼자 놀기’라는 웹툰을 통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만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풍자한 게 크게 히트를 쳐서 생겨난 신조어, 그래서 당시 네티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 말고는 만사가 귀찮아서 게으름 피우는 현상’을 ‘귀차니즘’이라고 명명했었지만 ‘스노우캣’이 물질보다는 정신을 추구하는 고상한 동물로 그려진 것을 보면 ‘귀찮다’라는 말의 원형이 ‘귀(貴)치 않다’이고 ‘貴’가 돈이나 물질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간과했던 것 같다. ‘貴’는 본디 흙속에서 뭔가를 파내는 모양을 그린 것으로서 후에 흙 토(土) 대신 돈을 뜻하는 조개 패(貝)가 들어가 오늘의 모습으로 굳어졌던 바, 돈도 안 생기고 밥도 안 생기는 일을 하기 싫어하는 게 ‘귀찮다’의 본래 의미, 일찍이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 안영은 “무릇 사람이 짐승보다 귀한 것은 예가 있기 때문(凡人之所以貴於禽獸者 以有禮也)”이라고 주장했었으나 그건 남부러울 게 없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배부른 소리였고 먹고살기 위해 예를 다 팔아먹고도 모자라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돈 돈 돈 염불을 외우는 사람들은 돈 없으면 매사가 귀찮아진다는 것을 누구라서 부인하랴. 기실 2000년 초 젊은이들 사이에서 ‘귀차니즘’이 유행한 것도 외환위기 여파로 경기가 시들하여 청년실업자가 급증한 가운데 그들이 추구할 이익이 별로 없었던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출세도 못하고 돈도 못 모은 사람들일수록 돈도 밥도 안 생기는 일들을 하기 귀찮아 한다는 것을 이제는 입술을 깨물면서 인정한다. 그래서 반성도 한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돈이 없으면 삶이 불편해질 거라는 불안의 포로가 되어 돈의 뒤꽁무니를 졸래졸래 따라다녔지만 돈도 못 모으고 세월만 다 까먹은 나머지 ‘귀차니스트’가 돼버린 게 쑥스럽기 짝이 없거니와,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 만나자고 하면 즐거워하고 나보다 돈이 없는 사람이 만나자고 하면 귀찮아했으나 어느 날 문득 나보다 돈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귀찮아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게 부끄럽기만 하다. 결국엔 내가 귀찮게 여겨온 만큼 나 자신이 귀찮게 여김을 당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번 주말엔 며칠 전 뉴저지로 건너와 술 한 잔 하자고 했던 그 친구를 찾아가봐야겠다. 조지 워싱턴 다리 넘나드는데 드는 콜택시 비용이면 뉴욕서 숯불갈비 구워놓고 조니워커 한 병 비울 수 있는데 뭐 하러 뉴저지까지 가느냐고 진담 반 농담 반 면박을 줬던 것을 사과하는 의미에서 술값도 내가 내야겠다. 왜? 돈 돈 돈 하다가는 머잖아 나까지 나를 귀(貴)하지 않게 여기게 될까봐 겁이 나니까.
(미주세계일보 주필 채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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