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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순 의원-최상재 위원장, '송건호 언론상' 수상

한국작가회의/문학행사공모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2. 11.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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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순 의원-최상재 위원장, '송건호 언론상' 수상
제8회 송건호언론상 시상식, 최문순·최상재 "언론정신, 언론자유 지킬 것"
 
김철관

▲ 지난 9일 저녁 7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제8회 송건호언론상' 시상식에서 최문순 의원과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이 공동 수상을 했다. 고광현 <한겨레신문> 사장(좌)과 심사위원장인 이상희 서울대 명예교수(우)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 언론노조
 

살아생전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고 강조한 청암 '송건호언론상'에 최문순 민주당 의원과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공동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청암언론문화재단과 <한겨레신문>은 9일 저녁 7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제8회 송건호언론상 시상식’을 열고, 미디어악법 무효화 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최문순 의원과 최상재 위원장에게 올해의 '송건호언론상'을 수여했다.
 
송건호언론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이상희)는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미디어법'을 반대하며 개인에게 닥치는 고난을 감수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과 자세가 민주주의 언론과 독립언론을 위한 평생을 받친 송건호 선생의 정신과 맞다고 판단해 상을 주게 됐다”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상희 심사위원장은 “386세대가 군사독재에 맞싸웠다면, 지금 그들은 언론문제를 가지고 싸워야 한다”면서 “언론 뒤에 자본과 권력, 광고주가 교묘히 숨어서 검찰, 국세청 등 국가권력기관이 언론을 교묘히 이용하면서 갖은 악랄한 불법을 공공연하게 뻔뻔스럽게 저지르고 있다”고 밝혔다.
 
최문순 의원은 수상소감을 통해 “언론자유를 지켜내지 못해 마땅히 비판을 받아야할 사람이 오히려 상을 받게돼 황망하다”면서 “이명박 정권들어 진행된 일련의 언론탄압과 언론관련법 제정과정은 자뭇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언론 안에 내재된 문제를 깊이 성찰하고 지향해야할 가치와 행동방향을 재정비해야 할 때”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언론정신의 고결함을 잃지 않으신 송건호 선생님을 그리며 오늘의 수상의 의미를 결코 작지 않게 간직하겠다”고 밝혔다.
 
최상재 위원장은 “칭찬을 받기보다는 더 빨리, 더 많이 모이지 못한 꾸지람을 들어야 마땅할 것 같다”면서 “그럼에도 이 자리에 새운 것은 앞으로 자세를 가다듬으라는 송건호 선생의 매운 회초리로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밝은 등을 달아주시고 길 위에 소금을 뿌려 주신 송건호 선생님과 유족들에게 머리숙여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축사를 한 고광현 <한겨레신문> 사장은 “최문순 의원은 여당이 미디어법안을 무리하게 통과시킨 데 항의해 의원직을 사퇴한 뒤, 국회 밖에서 법 통과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를 게속해오고 있다.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은 미디어법을 막기위해 단식농성과 1만배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미디어법의 문제점을 알리는데 앞장섰다”면서 “이들 두사람은 언론자유와 독립에 대한 굳은 신념과 실천을 하고 있는 분이다. 수상의 영광을 안으신 두분께 축하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정동익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중대한 시기에 언론악법 저지투쟁의 최일선에서 온몸을 던져 투쟁하고 게시는 두 분을 공동수상자로 선정한 것은 시의에 맞는 적절한 선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이부영 전 의원. 이명순 민주언론시민연합 전 이사장, 성유보 전 방송위원회 상임이사, 정경희 언론인 등 생전 송건호 선생과 함께 했던 언론인 등도 함께했다.
 
제8회 송건호언론상 심시위원회에는 이상희 서울대 명예교수가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했으며, 정경희 언론인, 김태진 도서출판 다섯수레 대표, 방정배 성균관대 교수, 김현주 한국방송학회장, 원용진 한국언론정보학회장 등이 위원을 맡았다. 
 

■ '한국 언론의 사표(師表)' 송건호 선생은 누구?
 
1926년 충북 옥천에서 출생한 고 송건호 선생은 46년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입학해 수학했고, 56년 서울대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53년 대한통신사 기자로 입사해 언론인으로 첫발을 떼었고, 이어 <조선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등에도 근무했다.
 
<동아일보> 시절인 71년 4월 15일 <동아일보> 젊은 기자 주축으로 '언론자유수호선언'을 결행하자, 당시 간부임에도 후배들을 지지했다. 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했지만 군사정권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수차례 정보기관에 끌려가 구타를 당하는 등의 수모를 겪었다.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등이 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을 선언했고, 이듬해 선언에 참여한 후배 130여명을 강제해직하자, 사태의 바른 해결을 촉구하면서 75년 3월 <동아일보>를 자진 사임했다.
 
이후 <한국민족주의 탐구>, <한국현대사론> 등을 출간해 지식인의 사명과 민족장래, 분단의 원인을 고민했다. 80년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이 들어서는 과정에서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2년형을 선고 받고 육군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재심이 열렸던 2003년 1월 무죄판결을 받았다.
 
79년 <해방저후사의 인식>(공저)를 발표했고, <한국현대사 인물론>, <의열단> 등을 집필했다. 84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08년 해직언론인협의회 회원 등과 함께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이하 민주언론시민연합)를 결성해 초대의장을 지냈고, 기관지 <말>을 창간했다.
 
87년 12월 <한겨레신문> 초대 사장으로 취임해, 88년 5월 15일 <한겨레신문>을 창간했다. 이때 편집위원장 직선제를 실시했다. 89년 서경원 의원 방북 사건을 계기로 안기부가 편집국을 압수수색하는 등 탄압이 가해지자 군부독재정권에 맞서 강경투쟁을 선언하면서 언론자유를 지켰다.
 
91년 4월 <한겨레신문> 초대회장, 93년 신문사에서 물러났다. 군부독재 감시와 고문후유증, 정신적 중압감 등이 겹쳐 1990년 파킨슨증후군이 발병했다. 투병 속에 2001년 12월 21일 타계했다. 각계각층의 애도 속에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12월 24일 광주 국립5.18 묘역에 안장됐다.
 
1999년 전국 언론사 보도국장과 언론학교수 등이 참여한 <기자협회보> 설문조사에서 위암 장지연 선생과 송건호 선생이 '20세기 최고 언론인'으로 선정됐다. 01년 11얼 6일 송건호 선생을 기린 '청암언론문화재단'이 설립됐고, 2002년 5월 15일 <한겨레신문> 창간기념일에 맞춰 선생 흉상이 세워졌다. 02년 6월 <송건호언론상>이 제정됐고, 2009년 6월 23일 국회도서관 개인문고실에 장서 7291권을 기증한 ‘송건호문고’를 설치했다.


기사입력: 2009/12/10 [13:35]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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