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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이방인의 삶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2. 2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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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이방인의 삶

 

아이들은 그림 그리는 걸 몹시도 좋아한다. 돌이 지나서 손에 뭔가를 잡을 수 있게 될 때부터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저 낙서로만 보이지만 점점 모양을 만들어간다.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의 세계는 이야기 세계이기도 하다. 그림 그리는 아이들을 유심히 보면 입으로 끊임없이 뭐라고 중얼거리는 걸 볼 수 있다. 어른들은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 어렵다. 설혹 아이의 발음이 정확해서 이야기를 알아들어도 대개는 “그게 뭔 소리야?” 하며 머리를 한 대 쥐어박기 일쑤다.


이 단계가 지나면 아이들은 그림에 색을 칠하기 시작한다. 처음 색을 칠하는 아이들은 자유분방하다. 그림마다 자기 맘대로 색을 골라 칠한다. 때론 물고기 하나를 그려놓고 여러 색을 한꺼번에 칠하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한번 어른들의 핀잔을 듣게 된다. 꽃을 왜 검정색으로 칠했어? 하늘은 하늘색, 나무는 초록색, 얼굴은 살색을 칠해야지!


이제 아이들의 그림은 자신의 느낌과는 상관없는 죽은 그림이 되고 만다.


여기까지 오면 그 심각성은 미술 교육의 문제를 훌쩍 넘어선다. 아이들에겐 고정관념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그림을 그릴 때 대상을 세밀히 관찰하고 그리지를 않는다. 그냥 기계적으로 색깔을 칠한다. 하늘이 하늘색 한 가지가 아니고, 초록의 종류가 그렇게 다양하고, 살색이 사실은 우리의 살색과 같지 않지만 아이들은 아무 의문을 갖지 않고 그냥 당연히 그 색을 집어다 쓴다. 자기도 모르게 아이들은 크레파스 색을 ‘색’의 표준으로 삼는다.


그러니 문제가 생긴다. 다른 색들도 문제겠지만 특히나 살색이 문제다. 세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인종에 따라 개인에 따라 피부색은 다 다르다. 살색이란 말이 처음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분을 발라 뽀얗게 된 얼굴을 생각하며 정한 게 아닌가 여겨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농사일을 하던 우리 피부색과는 전혀 다른 색이 살색이 됐을 리가 없다. 만일 그렇다면 살색은 처음 이름이 정해질 때부터 엄청난 편견 속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편견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런데 살색은 우리 피부색보다는 백인의 피부색과 더 가깝지 않나? 아이들이 보기에도 비슷해 보이는 것 같다. 아이들 그림을 보면 우리나 백인이나 얼굴을 칠할 땐 똑같은 살색을 칠한다. 어느새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백인들과 닮아간다. 얼굴색만 같은 살색으로 칠하는 게 아니다. 머리는 금발로, 눈은 얼굴의 반을 차지할 만큼 크게 그린다.

살색 크레파스로 생긴 고정관념

사람을 그릴 때 피부색을 다르게 칠하는 건 흑인뿐이다. 사실은 흑인들의 피부색도 무척 다양한데 아이들은 늘 검정색 한 가지로만 칠한다. 자기 피부색이 좀 까만 아이라도 자기 얼굴을 그릴 땐 절대로 검정색을 쓰지 않는다. 아니, 만약 아이가 검정색으로 자기 얼굴을 칠한 걸 보기라도 하면 어른들은 아주 질겁을 하고 야단을 치니 아이들은 감히 그러질 못한다.


여기서 ‘살색’의 편견이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살색’이란 말에는 우리들 내면의 인종차별주의가 숨겨 있었던 것이다.


이 인종차별주의는 단순히 백인과 흑인의 차별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와 같은 피부색을 갖은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대해서도 편견이 드러난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백인들에 대해서도 편견이 있다.


코쟁이, 양키, 떼놈, 왜놈. 이런 말들이 왜 생겼겠는가? 이런 모습은 중국, 중앙 아시아, 러시아에서 어렵게 살다가 들어온 우리 동포들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단일민족을 내세우면서 우리와 다른 사람에 대해 유달리 민감하게 대한다. 북한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된 일일까?


다시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떠올려 보자. 아이들이 얼굴을 살색이 아니라 다른 색으로 칠하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다시 그리라’고 한다. 종이가 없으면 이미 칠한 색 위에 다른 색을 덧칠해서라도 살색과 비슷한 색을 만들게 한다. 머리를 노란색으로 칠하는 건 괜찮지만 얼굴색만은 안 된다.

 

왜? 도대체 살색이 뭐길래 그러는 걸까?


 

그러고 보니 살색이란 단순하게 피부색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편협한 의식과 그 의식으로 만들어 놓은 획일화된 틀이다. 그 틀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배척된다.


아이들은 ‘살색’을 알게되면서 많은 걸 잃게 된다. 아이들이 그려내는 그림 세계는 죽고, 잘못된 편견을 학습한다.

 

출처 : 기아지동차 웹진 2001.9

국가인권위원회는 1일 크레파스와 수채물감의 특정 색을 ‘살색’으로 이름붙인 것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기술표준원에 한국산업규격(KS)을 개정하도록 권고했다.

인권위는 권고문에서 “기술표준원이 정한 ‘살색’은 특정 피부색을 가진 인종에게만 해당해 인종과 피부색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술표준원은 1967년 한국산업규격을 정할 당시, 일본의 공업규격상 색명을 단순번역해 황인종 피부색과 유사한 특정 색깔을 ‘살색’이라고 정했고, 크레파스 생산업체들은 이를 바탕으로 특정 색을 '살색'으로 써왔다.


문구조합은 인권위에 보낸 답변서에서 “일본은 지난해부터 업체들이 스스로 ‘살색’을 ‘엷은 오렌지색’으로 이름을 바꾸고 있다”며 "기술표준원이 산업규격을 바꾸면 업체들도 이를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아프리카 가나의 커피딕슨(34) 등 외국인 4명과 성남외국인노동자의집 김해성 목사는 지난해 11월 "특정 인종의 피부색과 유사한 색을 ‘살색’으로 표기한 것은 차별”이라며 기술표준원장과 ㄱ상사 등 크레파스 제조업체를 상대로 진정을 냈다.

한겨레 200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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