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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에 도전하는 중국명의비방

경남어린이시인학교/삶이건강한책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2. 2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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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에 도전하는 중국명의비방
건강을 해치는 최대 이유는 무얼까
뉴욕투데이.kr


저자 온설풍박사는 어떤 사람인가 : 조부때부터 한의원을 개업한 홍콩의 명문가에서 1925년에 태어나 광동대학 한의학부에서 한의학을 공부했으며, 미국에 유학하여 웨스턴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아 한의학과 서양의학에 두루 정통한 명의가 되었다. 25세때 홍콩으로 돌아가 ‘연합중의학원’을 설립하여 이 학원의 원장으로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홍콩과 도쿄에 진료소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기적의 명의’ ‘동양의 신비’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미국의 대통령을 비롯하여 세계적인 저명 인사들이 진단을 받기 위해 찾아올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의학박사학위 외에도 철학박사학위도 가지고 있으며, 현재 홍콩에 거주하고 있다.


옮긴이 홍건식 :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과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 건강잡지 장생(長生)의 편집국장을 지냈다.





100세에 도전하는 중국명의비방

--의학박사 온설풍, 홍건식 옮김(1991년 학원사 발행)


건강을 해치는 최대의 이유는?


“돈과 생명은 어느 쪽이 더 소중한가?” 이렇게 묻는다면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물론 생명이 더 소중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들은 실제로 현재의 생활을 ‘생명이 돈보다 더 소중하다’는 가치관에 입각하여 해 나가고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에 짓눌려서, 생활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돈을 벌기 위해 지니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 지니고 있는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뿐이라면 또 괜찮은 편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실현되지도 않을 어려운 문제를 싫든 좋든 간에 떠맡고 있다.


예를 들어 지킬 수도 없는 약속을 하는 따위가 그런 것이다. 한 달 안에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50만 원 밖에 안 되면서도 “이 달에 틀림없이 갚을 테니까 1백만 원만 빌려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해서 돈을 꾼다. 냉정히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무리한 빚이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알고 있다.


마침내 돈을 갚을 날짜가 닥쳐오는데도 갚을 길은 없다. 원래부터 50만원 밖에는 갚을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그 마지막 날짜가 다가옴에 따라 안절부절 못 하고, 밤에도 잠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 아마 독자들 가운데는 “그런 엉터리 같은 것을 나는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잠깐만 기다려 주기 바란다. 정말로 자신 있게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하기는 돈을 꾸는 일에 있어서 그런 엉터리 같은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일부분의 사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욕심은 반드시 돈을 꾸는 일에 있어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직장에서도 늘 있는 일이다. 또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도 심심찮게 그런 일이 벌이지고 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또 실제로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거나 현재 수입으로 봐서는 어림도 없는 마이홈을 갖겠다고 꿈꾸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다가 무리를 해서 내 집을 마련했으나 끝내 감당하지 못하고 집을 다시 내놓거나 더 불행한 사태를 맞이하게 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아무튼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자기 능력 이상의 무리를 하는 생활 속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 오늘날 사회의 한 단면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필자가 이러한 병든 현재 사회를 고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건강에 관해 얘기하기 위해서 이런 설명을 하는 것뿐이다.


즉,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자기 능력 이상의 것을 해야 한다’고 하는 데에 건강을 해치는 최대의 이유가 숨어 있다는 말이다. 그 결과로 야기되는 병을 현대병, 혹은 성인병이라고 일컫는다. 성인병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병이 자기 능력 이상의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사람에게서 일어나고 있다.


무리함으로써 몸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가?


신문 지상에는 한창 일할 나이의 사회 명사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가끔 보도되곤 한다. 그러한 일은 그 사람들이 유명인이기 때문에 뉴스가 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한창 일할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그 원인을 규명해 보면 대개가 지나치게 일을 무리하게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이다. 사인(死因)으로 지목되는 병명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 질병을 유발하고 있는 것은 스트레스이다.


분명히 현대 사회는 우리들에게 무리한 생활을 하도록 강요한다. 억지인줄 알면서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의사로서 독자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일과 생명, 돈과 생명’ 어느 쪽이 더 소중한가 하고....


일과 돈이 더 소중하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생명 쪽이 더 소중하다면 다음 한가지만은 명심하기 바란다. ‘위(胃)를 상하게 할 만큼 무리한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의 의지로 스트레스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리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서 스트레스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관해서 설명하기로 하자. 우리가 흔히 스트레스라고 일컫는 것은 현대병, 성인병을 유발하는 방아쇠가 되고 있다. 의학적으로 본다면, 스트레스는 모든 질병이나 건강 상태와 중요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①스트레스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은 그만큼 병에 걸리기 쉽다.

②스트레스 상태로 병에 걸려서, 그대로 스트레스가 계속되고 있으면 병은 낫기 어렵다.

③스트레스 상태로 병에 걸려 있는 환자에게는 어떤 특효약도 효험을 보기 어렵다.

④스트레스 상태에 놓여 있지 않는 사람은 질병에 걸리는 일이 드물다.

⑤스트레스와 무관한 사람이 병에 걸린 경우, 스트레스 상태가 아니라면 약도 잘 듣고 조금만 치료를 해도 회복이 빠르다.


특별히 의사를 찾아가서 진찰을 받고 치료를 하지 않더라도 하루쯤 잠을 푹 자거나 하면 나아버린다. 하루 이틀쯤 휴양을 하면 그것만으로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자연 치유력(회복력)에 의해 원래의 건강한 몸으로 되돌아간다.


이만큼 스트레스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의 질병이나 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란 의학적으로 보아 어떤 것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것일까.


결론부터 먼저 말해서, 도시화된 사회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의 대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스트레스 상태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도시화된 현대 사회에 사는 일이 어째서 스트레스와 연관이 되는 것일까.


한 마디로 말한다면, 매일의 생활 가운데서 무리를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적 조건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무리한 일이란 것은 자기 힘으로서는 어떻게 해결할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빚 얘기 같은 것은 그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이웃집 아이가 이른바 ‘일류대학’에 입학했으니까 우리 집 아이도 능력 같은 것은 따져 보지도 않은 채 이름 있는 대학에 입학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이웃집에서 마이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도 마찬가지로 마이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아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무리를 해서라도 마이홈을 마련하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직장에서는 상사가 내린 명령이기 때문에 억지인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이러한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어떤 사람을 붙들고 물어 보더라도 ‘내 능력 이상의 일을 하려다가 해결하지 못하고 무척 애를 먹었다’느니 하는 등의 경험담을 한두 번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란 그러한 때에 일어나게 된다.


원래 스트레스라는 말은 기계용어로서, 압박이라든가 긴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설명을 보다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 고무줄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책상 위에 놓여진 고무줄은 그대로의 상태라면 아무런 무리한 힘이 가해지지 않고 있다. 이 아무런 힘도 가해지지 않은 상태가 고무줄로서는 무리가 없는 조용하고 편안한 모습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고무줄에 힘을 가해 잡아당겨 본다. 차츰 힘을 가해서 계속 잡아당기다 보면 마침내 그 고무줄은 한계에 이르러 그 이상은 늘어나지 않게 된다. 그래도 계속해서 잡아당기면 고무줄은 마침내 끊어져 버린다.


고무줄에 힘을 가해 잡아당기면 당연히 고무줄은 팽팽해진다. 이 팽팽해진 상태를 긴장(스트레스)이라고 한다. 고무줄을 잡아당기는 힘을 세게 하면 할수록 당연히 긴장이 증가된다. 그리하여 잡아당기는 힘에 대해 늘어나는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고무줄은 툭 끊어져 버린다. 고무줄이 끊어져 버린다면 그 이상은 긴장도 스트레스도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이 얘기를 사람의 경우에 해당시켜 생각해 보자. 무리하게 빚을 많이 진 사람이 그 빚을 갚지 못해 일가족이 자살해 버리는 사건이 이따금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자살의 대부분은 스트레스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빚어지고 있다.


긴장이 계속된다면 긴장으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나 편안해지고 싶어 한다. 그 결과, 긴장에서 해방되기 위해 바로 죽음이라는 안락의 길을 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트레스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단적인 예이다.


알칼리성 체질, 산성 체질에 관한 오해


어떤 불쾌한 긴장이 계속되면 속이 뒤집히거나 위가 아픈 증세가 나타나는 수가 있다. 그래서 이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위장 장해로 이어지게 된다.


위산 과다로 인한 위염, 위궤양, 위암과 같은 위장병의 대부분은 많든 적든 스트레스가 계기가 되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위와 스트레스는 매우 관계가 깊다. 그것은 스트레스에 의해 위액의 분비 상태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은 정신 상태와 미묘하게 연관되어 있다. 마음속에 아무런 불안이나 초조금도 없다면 위의 활동 상황도 매우 조용하고 정상적이다. 마음이 편안하여 무리가 없는 상태라면 우선 건강을 해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도 된다. 어지간히 질이 나쁜 전염 균에 감염이 되기 전에는.... 건강한 신체가 지니는 저항력으로 웬만한 바이러스쯤은 감당해 낼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을 때는 위액의 분비가 정상적이고 위의 운동도 활발해진다. 따라서 조금쯤 과식을 하더라도 제대로 소화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근심거리나 불안이 있으면, 위액의 분비 상태나 활동 상태에 변화가 일어나서 정상적인 균형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위 속의 산성과 알칼리성의 균형이 무너진다. 근심거리나 불안이 있으면 위산의 양이 증가하여 급성 위산 과다의 상태가 되어 버린다. 흔히 알칼리성 체질이니 산성체질이니 하고 말하는데, 그것은 혈액 중의 알칼리성과 산성의 밸런스의 정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산성 쪽으로 밸런스가 기울어져 있으면 산성 체질이 되고, 알칼리성 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알칼리성 체질이라 일컬어진다. 요컨대, 어떤 사람이든 알칼리성과 산성 양쪽을 모두 지니고 있기 마련이므로 그것은 밸런스의 문제이다.


혈액은 pH 7.0-7.4 사이의 약알칼리성으로 언제나 유지되고 있다. 산성 체질이냐 알칼리성 체질이냐 하는 것은, 이 7.0-7.4의 약알칼리성 사이에서 pH가 산성 혹은 알칼리성 쪽으로 기울어진 경우를 가리킬 뿐이다. 즉, 약알칼리성 속에서 산성이 강해졌거나 알칼리성이 강해졌다는 얘기이다.


알칼리성 체질이 좋다고 흔히 말할 때 그것은 곧 약알칼리성 체질을 의미한다. 알기 쉽게 말한다면, 4대 6(실제로는 4.5대 5정도이지만)으로 알칼리성 쪽으로 균형이 기울어져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알칼리성 체질인 사람이더라도 초조해하거나 화를 내어 감정이 고조되어 있을 때에는 스트레스 과다의 상태가 되어 버린다.


매일처럼 그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알칼리성 식품을 아무리 먹는다 하더라도 별 의미가 없다. 특별히 알칼리성 식품 같은 것은 먹지 않더라도 보통의 식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스트레스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인체가 지니고 있는 자연 작용에 의해 약알칼리성의 상태가 유지된다. 오히려 알칼리성 식품의 섭취보다는 초조해지거나 화를 내게 하는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긴장에서 해방되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근심거리가 있거나 다른 쓸데없는 일에 몰두함으로 해서 그쪽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으면 위의 활동은 정지 상태가 된다. 그러면 위 속에 갑자기 증가되는 위산으로 말미암아 위가 자극되므로 언짢은 기분이 들게 된다.(동시에 위 안에 음식물이 남아 있으면 소화 불량이 되어 위의 상태가 나빠진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면 마침내 스트레스성 궤양을 일으키게 된다. 이 스트레스성 궤양이라고 하는 것은 약으로는 낫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대처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므로 정신면에서 부담이 많은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나 마음속에 괴로움이 많은 사람은 애써 마음을 편히 갖도록 유의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인체는 시험관이 아니다


스트레스에 관해 조금은 이해했으리라고 생각되는데, 여태까지의 설명은 체외적(體外的)인 이유로 말미암아 스트레스가 일어나는 경우의 얘기였다. 스트레스는 그 밖에 체내적(體內的)인 이유로 해서도 일어난다. 공복이라든가 대소변을 오래 참을 경우, 또 두통이나 복통과 같은 질병으로 인한 긴장에서도 일어난다.


예를 들어 대변을 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하지만 곧장 화장실에 갈 수 없는 환경에 있기 때문에 참고서 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장과 항문에 신체의 모든 신경이 모아지고 체내의 혈액도 거기에 집중된다. 그 때문에 체온이 내려가고 몸이 떨린다.


이런 때에 환경이 조금 춥거나 하면 그 때문에 감기에 걸리는 일조차 있다. 그 이유는 저항력이 몸 안의 스트레스에 대항하기 위해 집중되어 있어서 몸 바같쪽의 환경적 변화에 대한 저항력이 상대적으로 약화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화가 난다든지 불안 초조에 시달리는 사람이 위 속에 발생한 산을 억제하려고 알칼리성 물질인 제산제(制酸劑)를 복용하면 어떻게 될까. 일반적으로 알칼리성에 의해 중화되므로 일시적인 효과는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제산제를 상용하지 않고 간혹 사용할 때 효과가 있는 것이지, 며칠씩 계속해서 복용하면 산을 억제 하기는 커녕 그 반대로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이유는 제산제가 사람의 정상적인 위 활동에 필요한 산의 양 마저 억제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위에 산이 부족해지고, 그래서 위는 산의 양을 증가시키려고 자꾸만 산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위는 보다 산성 상태가 심해져서 제산제를 더욱 더 많이 복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약이 뭔지 모르는 채 단지 표시되어 있는 효능서만 무조건 믿고서 복용을 하면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오는 일도 있다. 약이란 사람의 몸에 사용할 경우, 쓰는 방법에 따라서는 원래의 효능과는 반대의 효능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 두어야겠다.


사람의 몸은 시험관이 아니다. 시험관에서의 실험이라면 시험관 자체가 아무런 반응이나 변화를 보이지 않는 무기질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일정한 결과가 약의 효능으로서 나타난다. 약을 구입해서 보면 반드시 효능서가 첨부되어 있는데, 물론 그 효능은 잘못 적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효능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실험 데이터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몸이라는 것이 단지 24시간 일하는 정말 기계처럼 무기질로 되어 있다면 모든 약이 효능서대로 효과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람의 몸은 무기질인 기계와는 많이 다르다. 인간에게는 감정이니 마음이니 하는 것이 있다.


사람의 건강에 있어서 마음이 작용과 몸의 상태는 결코 관련이 없지 않다. 그런데 현대 의학에 있어서 과학적이라고 일컫는 치료법에서는 양자를 동일한 자리에서 다루려 하지 않고 따로따로 나눠 버린다. 임상의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여기에 커다란 잘못이 있다.


이미 설명한 것처럼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것은 명백하다. ‘병은 마음에서 온다.’고 옛사람들이 일컬어 왔던 것은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 몸의 상태는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정신의 상태는 몸에 영향을 미친다. 육체면에서의 스트레스 추방은 무리를 하지 말것, 과로를 피할 것, 잠을 충분히 자서 휴식을 취하는 것 등이 대원칙이 된다. 육체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정신면에서의 부담도 가볍게 할 수 있다. 요컨대, 심신 양면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지혜라 할 수 있다.


의학을 절대적인 과학이라고 과신 말라


의학이 발달되었다고 하는 현대에 있어서조차도 인간의 몸의 미묘한 호르몬 작용 등은 거의 일부분밖에 해명되어 있지 않다. 모르는 면이 더 많다고 하는 편이 정확한 말이다.


현재로서 의학은 아직 절대적인 과학은 아니다. 예를 들면 ‘동일한 약을 동일한 질병이 있는 환자에게 주더라도 반드시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인간의 몸은 예측할 수도 없는 미묘한 활동이나 반응을 보인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모든 약은 반대의 효능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다루기 어렵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사람에게 수면제를 복용하게 하면 처음에는 곧잘 잠을 자게 되나, 매일처럼 약을 복용하고 있는 동안에 수면 효과는 차츰 약해진다. 그래서 약의 복용량이 많아지고, 그렇게 되면 수면제는 몸에서 각성 작용을 일으켜 도리어 눈이 말똥말똥해지면 잠이 오지 않게 된다. 두통약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많이 복용하면 반대로 두통약으로 말미암아 두통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한 또 한 가지 좋은 예로서 염분이 있다. 소금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절대 필요한 성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꺼번에 한 컵이나 되는 소금을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 틀림없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의 음식물에 자연의 형태로 함유되어 있는 양의 염분은 건강 유지에 필요한 적당량이지만, 그 이상의 염분은 몸에 해가 되면 되었지 아무런 필요가 없다.


자연 식품이 아닌 가공 식품, 조미 식품을 많이 먹고 있는 현대인이 소금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고 있다고 말해지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가리킨다. 필요 이상의 염분을 섭취하면 몸 안에서 그 염분이 소화 연소되지 못하고 남아돌아간다. 몸의 기능이 모두 건강한 상태에 있다면 그렇게 여분으로 섭취된 것은 그리 많은 양이 아니라면 노폐물로 몸 밖으로 배출된다.


그러나 몸 안에 스트레스가 쌓여 있거나 어떤 질병이 생겨 있으면 신진 대사 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 버린다. 변비 등은 그 가장 뚜렷한 현상이며 건강을 손상시키는 위험 신호이다.


그 반대로 최근에는 감염(減鹽) 붐을 타고서 염화나트륨의 대용으로 염화칼륨을 사용한 식염 등이 팔리고 있다. 그런데 이 염화칼륨도 신장기능이 약화되어 있는 사람이 섭취하게 되면 체내에 축적되어 신장 기능은 더욱 나빠진다. 그래서 심한 경우에는 죽음에 이르는 사태로 까지 진전된다.


염분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분, 음식물의 지나친 섭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사실을 말할 수 있겠다. ‘음식은 잔뜩 배불리 먹지 말고 좀 모자란듯하게 먹어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얘기이다. 식사는 언제나 좀더 먹었으면 싶은 상태에서 그만 하는 편이 몸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작동시키는 데 좋다. 과식 상태가 되면 위에 모여 있는 나머지 성분을 어떻게 해서든 연소시키려고 몸의 대부분의 에너지를 위 속의 소화활동에 집중시키게 된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졸리는 것은 뇌에 있어야 할 혈액마저 위에 집중시켜 소화활동에 사용하게 됨으로써 머리의 혈액량이 감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 이외의 기능의 작용이 약화된다. 그렇게 되면 몸 안의 다른 곳에서 일어난 고장이나 바깥쪽 환경의 변화에 몸의 기능이 제대로 적응할 수 없어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기 쉽다.


약을 맹신하고 있던 환자의 얘기를 다음에 소개하겠다. 스물 세 살 된 어떤 부잣집 아들이 있었는데, 기력과 정력이 부족하다면서 자기 집으로 왕진을 와 달라고 했다. ‘최근에는 무슨 일을 하든 무기력해서 섹스는커녕 걷는 일조차 귀찮아졌다’는 것이 그 환자의 호소였다.


‘여태까지 여러 의사에게 보여 보았으나 별로 효과가 없다, 지난 번 의사한테서 받은 정력제인 인삼차를 복용하고 있는데, 그 정력제를 마시면 마실수록 더 걷지 못 하겠다’는 환자의 설명이었다.


필자가 그의 집으로 가서 한 차례 진찰을 해 보았더니, 맥이 좀 약하기는 하나 정상이었다. 진찰하고 있는 방으로 그 집의 하인이 들어와서 물었다. “나리, 인삼차를 몇 시에 드시겠습니까?” “좀 기다려.”


그 대화를 듣고서 필자는 그 환자에게 물었다. “계속해서 인삼차를 복용하고 있습니까?” “네, 그렇답니다. 인삼차는 정력제로서 기력을 회복시켜 준다고 의사 선생님이 권장하셔서 계속 마시고 있지요.”


환자의 대답을 듣고서 필자는 잠시 생각했다. 진단해 본 결과, 환자 본인이 호소하는 것 이외에는 큰 이상을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환자가 호소하는 증세의 원인은 틀림없이 인삼차를 정력제라고 지나치게 마셨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필자는 이 가엾은 젊은 환자에게 일러 주었다.


“내가 특별히 처방한 특효약을 드릴 테니까 이번에는 이 약을 먹도록 하세요. 이 약을 먹고서 여태까지 당신과 같은 증세를 보이던 환자가 여러 사람이나 나왔답니다. 하지만 이 약은 지금까지 마시던 정력제와 함께 복용하게 되면 효력이 없기 때문에, 내 말을 믿는다면, 인삼차는 더 이상 마시지 말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말하고서 왕진을 마치고 돌아와 그 특효약이라는 것을 보내 주었다.


그러고 나서 사흘 뒤에 그 젊은 환자는 밝은 표정으로 필자를 찾아왔다. “선생님, 이것 보십시오. 이처럼 말짱하게 나아 버렸답니다. 지어 주신 약은 정말로 훌륭한 효과가 있었지요. 선생님은 참으로 명의십니다.” 환자는 즐거움을 감추지 못한 채 이렇게 말하면서 제발 그 약이 어떤 약인지 가르쳐 달라고 졸라 댔다.


“그건 약도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그냥 물이지요. 당신의 병이 나은 건 내가 만들어준 특효약 때문이 아니라, 실은 정력제인 인삼차를 그만 마셨기 때문이랍니다.” 이렇게 설명해주자 젊은 환자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필자를 바라보았다.


필자는 어째서 그냥 맹물을 특효약이라면서 복용하게 했는가. 약을 과신하고 있는 환자에게 대뜸 정력제를 계속 마셨기 때문에 그 약 탓으로 오히려 ‘정력이 쇠약해졌다’고 말해 봤자 그는 필자의 설명을 믿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틀림없이 필자가 돌아간 다음에는 여태까지 해 왔던 것처럼 정력제를 계속 마시고서 괴로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인삼차의 복용을 중지하게 하는 대신에 더욱 효과가 있는 특효약을 처방해 주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환자에 대해 의사가 하는 중요한 일은 약을 주는 일이 아니다. 바로 그 환자의 건강을 되찾게 해주는 일이다. 이 경우 만일 의사가 아니고 약국의 약사였다면 ‘그냥 맹물을 약이라면서’ 환자에게 돈을 받고 파는 행위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의사의 임무는 환자에게 약을 파는 일이 아니라 환자의 건강을 보다 좋은 상태로 만들어 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을 주지 않는 일도 때로는 필요해진다. 또 환자의 뺨을 때는 편이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경우라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맹물을 주는 것도, 환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중요한 치료법의 하나가 된다. 환자는 인간이며, 기계와는 달리 복잡한 감정이라는 걸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회복은 환자 자신의 자연 치유력에 의한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몸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연 치유력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의사의 힘 같은 것을 빌 수 없는 자연계의 동물들은 바로 그들이 지니고 있는 자연 치유력에 의해 병이나 상처를 고치고 있다.


필자의 친지 가운데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이 있는데, 재미있는 에피소드이기에 다음에 그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은 언젠가 장난으로 고양이 꼬리에 고무줄을 칭칭 감아 두었는데 어쩌다가 그만 그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뒤늦게야 그 일이 생각났으나 그때에는 이미 고무줄이 꼬리를 파고들어가 꼬리가 끊어질 지경이었다. 고양이 주인은 당황해서 꼬리에 감아 둔 고무줄을 제거했지만 사태는 이미 늦었었다. 고양이는 화가 잔뜩 나서 펄쩍 뛰면서 두 번 다시 주인이 꼬리를 못 만지게 했다. 그리고는 한쪽 구석에 숨어서 곧 끊어지게 된 가엾은 자기 꼬리의 상처를 매일 계속해서 핥았다. 그러는 동안 놀랍게도 끊어질 것만 같았던 꼬리가 말끔히 나아 버렸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고양이가 잘못해서 독이 있는 음식물을 먹었을 때는 풀을 뜯어 먹고서 토해 낸다고 한다. 이러한 힘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모든 생체에는 자연히 갖춰져 있는 것이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몸 안에 자동 약리 작용을 갖추고 있다. 그것이 자연 치유력이다. 의사는 분명히 환자의 질병을 제거할 수 있으나 원래의 건강을 되찾는 것은 바로 환자 자신의 일이다. 즉, 환자의 자연 치유력에 의존한다.


따라서, 아무리 명의라고 일컬어지는 외과 의사가 수술로 말끔히 환부를 제거해 주었다 하더라도 환자 자신의 자연 치유력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건강을 되찾을 수 없다. 약에 의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약으로 질병의 원인을 제거할 수는 있다지만 약해진 몸을 회복시킬 수는 없다. 진짜 회복은 환자 자신의 자연 치유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필자가 이 책에서 독자 여러분에게 꼭 말해 두고 싶은 내용은 ‘우리들의 건강이란, 질병 자체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한 저항력과 회복되기 위한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힘을 지닌 신체를 바로 건강체라고 한다. 이런 진짜 건강체라면 병에 잘 걸리지도 않고, 또 가령 걸렸다 하더라도 웬만하면 의사나 약에 의존하지 않고 충분히 수면을 취한다든가 휴식을 취하기만 해도 쉽게 나아 버린다. 뿐만 아니라 의사를 찾아가야만 하는 환자의 경우에도 빨리 낫는다.


‘병에 걸리더라도 서투른 의사나 약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중간 정도 수준의 의사에게 보이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중국 의학에서 나온 격언이다. 반드시 명심해 두기 바란다. 다음 장부터는, 어떻게 하면 인간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저항력과 자연 치유력이 정상적으로 기능을 다 하는 몸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 필자 나름의 방법을 소개하기로 한다.



제1장 식법(食法)의 비전(秘傳)-이 방법으로 혈액의 산독화를 막아라-


1. 혈액이 더러워져 있다면 어떤 식생활도 무의미하다


‘만병 일독’의 원인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동양의학에는 ‘만병 일독(萬病 一毒)’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일독’이라고 하는 것은 ‘어혈(瘀血)’ 즉, 더러워진 피이다. 곧, 모든 병의 근원은 혈액이 더러워지는 데서 온다는 뜻이다.


혈액은 끊임없이 우리 몸의 구석구석까지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영양소나 에너지 등을 운반하고, 반대로 못 쓰게 된 것을 폐나 신장에서 배설시킨다. 그러므로 인체 내에서 가장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인의 대부분은 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혈액이 더러워져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대인 관계나 직장에서의 마찰, 소음뿐만 아니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심리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다. 게다가 식생활의 급격한 변화로 말미암아 인체에 해로운 식품 첨가물이 함유된 많은 가공식품, 화학조미료, 합성 주스 등 인위적으로 합성된 식품에 둘러싸여 있으며, 백미나 백설탕, 정제염 등 극도로 정백(精白)된 식품 등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또한 거기에다 약해(藥害)마저 겹쳐서 이러한 것들이 스트레스와 밀접하게 관련되고, 혈액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스트레스가 혈액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스트레스야말로 혈액을 더럽히는 최대의 원인이다.


혈액 중에 쌓이는 긴장감의 부산물은?


어째서 스트레스가 혈액을 더럽히는가. 그것은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긴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긴장이라는 ‘외적(外敵)에 직면하게 되면 싸우거나 달아나거나 해서 그것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도록 되어 있다.


동물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고양이나 개를 만났을 때 털을 곤두세우며 싸울 태세를 갖춘다. 이것은 긴장했기 때문인데, 그러한 경우 고양이뿐만 아니라 사람도 역시 몸속에서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 호르몬의 분비에 의해서 싸우거나 달아나는 데 필요한 활력이나 에너지가 되는 콜레스테롤이나 지방산을 증가시킨다. 콜레스테롤은 혈액 중에 함유된 지방분으로서, 지방의 소화를 돕기도 하고, 부신 피질 호르몬이나 성 호르몬을 만들기도 하며, 인체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지방산은 피하 지방에서 혈액 속으로 들어가는데 에너지의 바탕이 되는 중요한 물질이다.


이와 같이 긴장 시에는 우리 몸에 유익하고 없어서는 안 될 콜레스테롤이나 지방산이지만, 이들은 언제까지나 몸에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연소시키고 소비시켜 버려야 하는 것이다.


아주 먼 옛날 사람들에게도 스트레스는 있었다. 사나운 야수를 만났을 때가 그러한 경우이다. 하지만 그들은 짐승과 싸우거나,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아났었다. 그렇게 해서 혈액 속에 증가된 콜레스테롤이나 지방산을 연소시켜 버리는 일이 가능했다.


그러나 현대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상사한테서 야단을 맞으면 혼자서 가슴 속에 담고 삭여야 한다. 그런가 하면 가까운 친지가 마이홈을 마련해서 이사 간다는 소식을 듣고 아직도 셋방살이를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기껏 방 안에 틀어박히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니 스트레스의 원인이 옛날과는 다르기도 하려니와 좀처럼 해소할 길이 없다.


그 때문에 콜레스테롤이나 지방산이 연소되지 못하고 혈액 속에 쌓임으로써 그것이 혈액을 더럽히는 원인이 되어 버린다. 원래는 혈관 속에서 원활하게 흘러야 할 혈액이지만, 혈액이 끈적하게 더러워져 있으면 시궁창의 썩은 물처럼 괴어 있게 된다. 스트레스에 의해 분비되고 증가된 콜레스테롤이나 지방산은 혈액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괴어 있으면 마침내 혈관 벽에 부착되어 버린다. 즉, 혈관에 쓰레기가 쌓이는 결과가 되어 혈관이 좁아지고 혈액이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게 된다.


좋은 영양도 혈액이 더러우면 쓰레기나 다름없다


피가 더러워지면 그것이 저절로 동맥경화나 고혈압의 원인이 된다. 또 그것이 빌미가 되어 뇌출혈이나 뇌혈전, 협심증, 심근경색 등을 불러 일으켜 사망하는 예가 많다. 그 밖에 혈액의 흐름이 나빠짐과 동시에 각 기능의 고장이 일어나 모든 병의 원인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처럼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다.


더군다나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는 현대인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쌓일수록 혈액이 자꾸만 더렵혀진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을 유지하고 활력을 지니자면 우선 혈액을 정화시키는 길 밖에 없다.


흔히 의사들이 말하기를, 스트레스를 받아 지쳐 있을 때, 혹은 병에 걸려 있을 때는 영양이 풍부한 식사를 많이 하고, 스태미너를 길러야 한다고 말하지만, 필자의 방법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혈액이 더러워져 있다는 것은, 말하자면 자동차의 기화기에 먼지가 잔뜩 끼어서 검은 연기를 내며 불완전 연소가 되는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한다. 거기에다 더 영양을 주더라도 흡수될 리 만무하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영양이 또 먼지가 됨으로써 혈액은 더욱 더러워질 뿐이다. 그러므로 영양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몸의 먼지를 제거하여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고 난 다음에 몸의 영양을 공급하도록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영양분을 주더라도 역효과라는 사실을 기억해 두기 바란다.


2. 왜 단식법이 좋은가?


단식은 한 가지 사실에만 유의하면 된다


혈액이 더러워져 있다면 몸에 아무리 좋은 영양분을 주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혈액의 더러움을 증진시키는 결과가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언제나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실은 몸의 노폐물을 제거해서 혈액을 정화시키고 몸을 ‘가볍게’ 해두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필자의 ‘깨달음’의 건강법-단식을 실천하는 것이 좋다.


단식을 한다는 것은 단지 혈액 속의 더러움을 제거하고 몸을 가볍게 하는데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에 어떤 음식물이 맞는지, 자기 몸은 지금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는 점이다. 즉, 단식은 건강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이다.


‘깨달음’이라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심신의 안정이 완전한 건강을 가져 온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깨달음’을 천 년이나 만 년이나 산다고 말해지는 전설상의 선인과 밀접하게 결부시키고 있다.


또 중국이나 한국에서 고승, 명승들이 모두 장수했던 것은 그들이 수업하는 단계에서 단식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몸에 무엇이 자연이며, 어떠한 것이 좋은 가를 안다면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하지만 단식이란 음식물을 중단하는 일이며, 보통 1주일 정도를 실행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기 때문에 확실한 목적과 신념이 없는 한 단식을 해서는 안 된다. 신념이 없는 단식은 최악의 경우 죽음을 초래하는 일마저 있다. 예를 들어, 갑자기 음식물을 먹지 않게 되면 4일쯤 지나서 죽어 버린다. 그 원인은 대개 마음 속의 공포심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신념을 가진다면 1개월쯤 단식을 해도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 수업(修業)을 위해서나 정치적인 요구로 단식하는 사람의 경우에 그렇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다소나마 공포심이 남아 있다면 이것을 실천할 수 없다. 단식은 가능하면 여러 사람이 함께 하도록 함으로써 공포심도 없앨 수 있고 성공률도 높일 수 있다.


여태까지 단식에 대해 꽤 까다롭게 말해 왔으나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즉, 물만 마시고 다른 음식물은 일체 먹지 않으면 된다. 다만, 물은 배고플 때나 목이 마를 때는 언제라도 마실 수가 있다.


단식을 시작해서 사흘이나 나흘쯤 지나면 많은 양의 배설을 하게 된다. 이때의 변은 마치 기름이 굳어진 것 같은 상태이며, 냄새 역시 평소 때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양도 2, 3일 동안 음식물을 먹지 않았는데도 무척 많이 나온다. 그 까닭은, 단식할 때는 몸의 작용이 역(逆)으로 되기 때문이다. 음식물을 먹고 있을 때에는 흡수하는 작용을 하던 내장이 배설하는 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독소가 배설됨으로써 변의 양도 많아지게 된다.


나흘째부터는 땀이나 입에서 토하는 숨마저 아주 심한 냄새가 난다. 몸 전체에서 악취가 나기 때문에 마치 변소를 안고 다니는 것 같다. 때로는 변소보다 더욱 심한 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우리 몸의 불필요한 것이 연소되기 때문에 썩은 쓰레기를 태우는 것보다 더 심한 악취가 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향수를 뿌려도 소용이 없다. 너무 악취가 심해서 향수 냄새마저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악취가 난다는 것은 단식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증거이다. 다만, 단식은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도 할 수 있으나 이처럼 냄새가 심하게 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게 될 염려도 있다. 그러므로 여름휴가 같은 때를 이용하면 좋을 것이다.


기간은, 물을 마시는 경우 아무래도 몸속에서의 노폐물 연소가 늦어지므로 최저 7-10일은 계속할 필요가 있다. 단식을 멈추는 시기는 배변할 때 나오는 변의 상태와 냄새로써 어림잡는다. 변에서 나던 악취가 사라지고 기름 같은 것이 나오지 않게 되면 단식을 중지해도 될 때이다. 하지만 바로 두 번째의 변에서 냄새가 사라졌다고 해서 단식을 그만두는 것은 옳지 않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물을 마시는 경우, 최저 7-10일간은 실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흘이면 가능한 단식법


오랜 기간의 단식은 아무래도 할 수 없다. 혹은 일을 보면서 단식을 하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단식의 기간을 사흘로 단축시키는 방법을 일러 주겠다.


우선 물만 마신다. 그리고 매일 아침, 물 1,000cc에 1 차술의 소금을 탄 묽은 소금물로 관장(灌腸)을 실시해서 이것을 사흘 동안 계속한다. 관장을 한 다음에는 몸을 좌우로 흔든 다음, 화장실에 간다. 그렇게 하면 소금물이 장(腸)의 속까지 들어가데 되어 보다 효과가 있다. 변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마치 기름이 굳어진 것 같은 상태로 배설된다.


사흘간 실시하는 경우, 관장을 하는 이유는, 단식하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도 몸의 독소가 다 배설되기 어렵기 때문으로, 그것을 돕기 위해서 관장이 필요하다.


이상에서 설명한 방법대로 단식을 하면 되는데, 반드시 이것만은 지켜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절대로 단식을 도중에서 중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몇십년이나 쌓여 있던 몸의 독소를 배출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다 나오자면 그 나름의 시간이 필요하다. 단식을 도중에 중단해서 시간이 부족하게 되면 배설하려는 독소가 몸 안에 남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체내에 다시 독소가 흡수되기 때문이다.


단식 후에는 제 나름의 ‘카르테’가 만들어진다


그러면 단식을 마친 다음에는 어떠한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가. 우선 단식이 끝나서 음식물을 섭취하기 시작할 때에는 고체로 된 음식물은 일체 먹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식을 하는 동안 아무것도 들어가 있지 않은 위에 갑자기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이 들어가면 위가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단식을 마친 첫날에는 과일즙이나 묽은 죽 등 유동식을 조금씩 먹도록 한다. 이때 몸은 아직 단식의 효과가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니며, 건강하게 되었다는 느낌만 들 뿐이다. 그리고서 이틀째 식사부터 그 전에 먹던 것과 같은 종류의 음식물을 먹기 시작하면 된다. 다만, 이때 1회의 식사에는 1 종류의 음식물만 먹도록 한다.


왜냐하면, 단식을 끝낸 뒤에는 몸의 균형이 잡혀 안정되어 있으므로 무엇을 먹으면 좋은지 또 무엇을 먹으면 나쁜지 스스로 알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하나의 음식물에 몸이 특별한 반응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선 한 종류씩 음식물을 먹어서 반응을 본다. 만일 음식물이 몸에 맞지 않는다면 바로 두통, 구역질, 콧물, 재채기, 눈물, 구내염, 가려움 등 알레르기 증세가 나타난다. 또 정신적으로는 화를 잘 낸다든지 기분이 우울한 상태가 된다.


반대로 음식물이 자기에게 맞는다면 그러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다음부터 그 음식물은 먹어도 된다는 얘기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하나하나 기록해 둔다. 그렇게 한다면 그 음식물은 먹어도 좋은지 나쁜지, 음식물에 관한 자기 나름의 식단이 만들어질 것이다.


한 번 단식을 해서 몸을 깨끗이 만드는 일은 새로운 식생활을 시작하여, 건강체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데 참으로 적합한 방법이다. 아무튼 음식물을 먹어 봐서 심신에 나쁘다고 느껴지면 그 음식물은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서서히 몸에 익혀 가면 된다. 그렇게 계속하고 있는 동안 스스로 먹어서 좋은 음식물인지 나쁜 음식물인지 알게 된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일상 식생활의 기준을 만들면 된다.


단식의 효과는 이상에서 보아 온 것처럼, 어떠한 음식물이 자신에게 맞는지를 찾아낼 수 있다는 데도 있다. 그것은 곧 자신의 몸을 보다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사실과도 결부된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병을 방지하여 건강을 유지할 수가 있다. 또한 여러 가지 병에 대한 단식의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즉, 단식은 당뇨병, 항원병, 심장병, 관절염, 간장병, 담석증 등 일반적으로 낫기 어렵다고 하는 병에도 효과가 있다.


건강이라고 하는 것은 일생에 걸친 일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장수화가 진행된다면 싫든 좋은 간에 자기 신체와의 관련은 더욱 길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병석에 누워서 오래 산다면 오랜 사는 것에 대한 의미가 없어진다. 앞으로 남은 오랜 세월을 생각한다면, 단식으로 얻어지는 자기 몸의 ‘카르테’는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3. 어떤 식사 방법이 가장 좋은가?


위장병은 식사 방법이 잘못되어 생긴다


세계 인구 가운데 99% 아니 100%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사람들이 위장병의 경험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식사 방법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기는 태어나서 바로 우유를 마시게 되는데, 대부분의 어머니는 아기가 배고파서 울면 우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정해 놓고 먹이고 있다. 여기에 근본적인 잘못이 있다.


아기에 따라서는 언제나 잠만 자는 아기가 있는가 하면 활동적인 아기도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소모하는 에너지도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잠깐 자는 아기는 3시간 혹은 4시간에 한 번꼴로 우유를 먹여도 견뎌 나갈는지 모른다. 그런데 우유를 주는 간격을 예를 들어 2시간마다로 일정하게 정해 둔다면 앞서 마신 우유가 채 소화되지 않아서 오히려 소화 불량을 일으키게 된다. 반대로 언제나 활동적인 아기인 경우에는 2시간도 못되어 배가 고프다고 울게 된다. 이런 때에 아직 우유 마실 시간이 아니라고 해서 끓인 물을 식힌 것을 먹이는 어머니가 있다. 이 역시 위를 나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인간이란 언제나 몸의 반사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도 우유를 먹일 시간이 아직 안 되었기 때문에 주지 않는다거나 또 이와 반대로 우유를 줄 시간이기 때문에 배가 고픈지 어떤지도 모르면서 우유를 먹인다면 위장은 혼란을 일으키고 만다.


이와 똑같은 사실은 성인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예를 들어, 점심때가 되면 누구나 점심을 먹기 마련인데, 바빠서 먹을 시간이 없거나 식욕이 없는데도 거르면 몸에 나쁘다고 해서 억지로라도 먹는다. 이것이 평소의 생활 습관이 되어 버리면, 누구나 대개는 위장 관계의 병을 호소하게끔 될 것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과 기능을 지니고 있다. 그 때문에 먹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난다. 즉, 그러한 몸의 요구에 따라서 먹는다면 그것이 자연히 몸의 기능을 조절하는 결과가 된다.


식사의 기본은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원칙일 뿐, 실제로 먹고 싶을 때에 먹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니다.


반드시 하루 세끼를 먹을 필요는 없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어김없이 먹어야 한다고 누구나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럴까. 사람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습관이나 일, 기타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누가 강요할 성질의 것은 못 된다.


필자는 결코 하루에 세 끼를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에는 하루에 여덟 번이나 식사를 하는 일이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몸의 컨디션이 좋고 건강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전혀 염려할 것이 없다. 다만, 한창 일을 하는 중이라든지 책을 읽고 있는 때 등 머리를 사용하고 있을 경우, 시간이 되었다고 해서 의무적으로 먹는 것은 좋지 않다. 그 대신, 일이 끝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풀렸을 때는 여러 차례 먹어도 괜찮다.


아침에 시간이 없어서 서서 식사를 하는 사람을 가끔 보게 되는데, 만일 아침에 반드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조반을 먹고 있다면 중단해야 한다. 그것은,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스트레스만을 줄 분이며, 마치 몸에 쓰레기를 쑤셔넣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 잠자기 전에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건강에 관한 여러 책에는 대개 하루에 반드시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먹어야 한다느니, 아침밥을 거르는 것은 건강을 해친다는 등 아주 그럴 듯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염려하는 편이 우리들의 신경을 갉아 먹고, 스트레스를 쌓게 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4. 몸의 건강상태 좌우하는 첫 번째 식사


식생활이 불규칙적인 사람을 위한 식단


중국에서도 식사는 하루 세 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정해져 있으나,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람에 따라 각각 습관이나 사정이 있으므로 그렇게 세 끼를 꼬박꼬박 먹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런 불규칙적인 식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몸을 해치지 않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우선 그 날의 맨 첫 번째 식사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즉, 맨 첫 번째 식사(아침, 점심, 저녁 어느 것이든 관계없다)는 단백질, 지방, 야채, 탄수화물(소량)을 반드시 섭취할 수 있는 식단으로 짜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육류 250g, 탄수화물 100-250g, 야채(먹을 수 있을 만큼 먹어도 좋다), 지방 100-150g으로 하는데, 수치를 늘어놓아도 얼른 이해가 안 될뿐더러 또 그런 일에 너무 구애될 필요도 없으므로 간단한 식단을 들어 두기로 한다.


육류(단백질)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 등을 기름에 볶은 요리를 즐겨 드는데, 이때 야채도 함께 넣어 기름에 볶으면 야채도 섭취할 수 있어서 여러 가지로 좋다. 고기를 싫어해서 채식을 하는 사람은 콩을 먹도록 하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두부로 대용해도 충분하다. 야채는 기름에 볶든가 드레싱을 치든가 해서 기름과 함께 섭취하도록 한다. 아무튼 야채 그대로는 맛이 좋지 않기 때문에 대개는 조리해서 먹을 것이다.


밥(탄수화물) 반 공기 또는 빵 한 장, 빵인 경우 반드시 버터를 바른다. 또 되직한 죽(쌀밥 반 공기에 해조류, 생선을 넣어서)도 좋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반드시 기름을 섭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식물에 기름이 함유되어 있지 않으면 만복감이 없기 때문에 과식하기 쉽다. 또 기름이 들어감으로 해서 소화가 더디게 되고, 따라서 갑자기 배가 쉬 고파지는 일이 없다. 불규칙적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이다.


혈당치를 조정하면 몸의 상태가 좋아진다


그러면 어째서 이러한 식사법이 좋은지 또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지 다시한번 요리식단을 살펴보자. 우선 당분이 적은 식사라는 점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즉, 당분이 적은 식사를 함으로써 혈당치(혈액 속에 함유되어 있는 당의 비율, 당은 에너지원으로서 생명을 유지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가 완만하게 상승한다. 이것은 췌장에서 나오는 인슐린 등을 자동적으로 조절한다.


그런데 아침 조반을 먹을 때 커피, 오렌지 주스, 빵 등을 곁들여 당분을 꽤 많이 섭취했다고 하자. 그러면 혈당치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인슐린 등의 분비가 많아지게 된다. 그 결과, 혈당치가 갑자기 내려감으로 해서 바로 배가 고파지게 된다. 즉, 혈당치를 완만하게 오르내리게 하면 갑자기 배가 고파지는 일은 없다.


우리가 공복감을 느낀다는 것은 혈당치의 변화, 곧 혈당치가 내려감으로써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 혈당치가 천천히 오르내린다면 몸의 밸런스가 무너지지도 않으며, 좋은 상태로 몸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필자가 권장하는 식사 방법이 중요하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얘기가 좀 옆길로 빗나가지만 항상 혈당치가 낮은 사람이 편두통을 호소하는 것도 이처럼 혈당치가 내려감으로써 일어나는 것이다. 편두통이 있는 사람은 밤에 잠들기 전에 약간의 고기와 버터 바른 빵을 한 장 먹고 나서 자면 좋다. 아침에 일어날 때 까지 혈당치가 천천히 올라가 아침에 깨었을 때는 보통 사람들과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하루 종일 지속되므로 몸의 컨디션이 좋아지고 무엇을 먹더라도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가 있다.


편두통인 사람에게 나쁜 것은 밤에 잠들기 전에 와인이나 주스 따위를 마시는 일이다. 이것은 당분으로 말미암아 잠 잘 때 혈당치가 급격히 올라감으로 해서 아침 4, 5시에는 반대로 최저가 되기 때문이다. 당분이 함유된 것은 자기 전에는 절대로 섭취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혈당이라도 현대병의 식사방법으로 막을 수 있다


원래의 얘기로 다시 되돌아가서, 당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함으로써 혈당치가 높아지면 필요 이상으로 인슐린이 분비되고, 반대로 인슐린의 과잉에 의해 혈당치를 천천히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지나치게 낮추는 결과를 빚는다.


그것을 되풀이함으로써 혈당이 낮아져서 탈력감(脫力感), 식은 땀 등을 호소하는 이른바 저혈당이라는 현대병을 불러일으키고 만다. 왜 현대병이란 일컬어지는지 누구나 상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이 많이 함유된 가공 식품이나 청량 음료수나 과자류를 많이 먹거나 마시는 현대인이 일으키기 쉬운 병이기 때문이다.


식생활의 변화로 말미암아 이러한 식품이 쏟아져 나오고, 이러한 식품을 먹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아래 놓여 져 있기 때문에 야기된 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저혈당은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른바 식생활의 진보가 가져온 결과이다.


또 혈당치가 높아진 채로 있는 경우에도 혈관이나 신경, 기타의 장기에 해를 미친다. 그 때문에 어떤 병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이처럼 혈당치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사실은 우리 몸에 여러 가지 나쁜 영향을 가져 온다.


혈당치의 밸런스가 일단 무너져 버리면 다음 식사 때 아무리 영양가가 높은 음식을 먹더라도 몸의 균형이 깨뜨려져 있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그 날의 맨 첫 번째 식사가 중요하다고 독자들에게 역설하고 있는 바이다. 필자가 권장하는 이 식사법을 실행한다면 그 날 하루, 혈당치가 좋은 상태에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도 내일부터 당장 시도해 보기 바란다.


5. 현대인이 잊어버린 ‘음식물 씹기’ 효용


위와 감정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


중국에는 ‘피발 보광정(披髮 步廣庭)’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기름을 바르고, 꽉 죄어 놓았던 머리카락을 풀어서 흐트린 채 넓은 뜰 안을 거닌다는 의미이다. 즉 여태까지 죄고 있던 것을 풀어 헤쳐 편안한 마음의 상태로 있다는 뜻이다.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없애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예를 들어, 일에 관한 걱정을 하면서 식사를 하거나, 실제로 일거리를 곁에 두고 일에 한눈을 팔면서 식사를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식사를 하는 등 긴장하고 있는 경우에는 뇌에 피가 몰려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소화 불량을 일으키고 만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있을 때는 몸의 신경이 위에 집중되어 위의 작용을 돕는다. 그런데 먹는 일 이외의 것을 생각한다면 머리로 신경이 쏠려 위의 소화에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신경이 긴장되면 몸의 모든 기능이 정체되어 버린다.


특히 위와 감정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긴장으로 말미암아 위액의 분비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즐거운 때는 위액의 분비가 잘 되고, 위의 점막이 충혈되며, 위의 활동도 원활해진다. 이런 때에 예를 들어 닭다리를 하나 먹는다면 그 먹은 분량만큼 영양이 되어 흡수된다.


그런데 슬플 때나 실망했을 때는 위액의 분비가 줄고, 위의 점막은 핏기를 잃어 창백하게 된다. 또 근심거리나 불안이 있으면 위액의 분비 과다를 일으키고, 화를 내거나 적의를 나타내거나 할 때는 더욱 위액의 분비나 충혈을 증가시켜 위벽이 헐어 버린다.


이런 상태에서 식사를 한다면 닭다리 한 개분의 영양을 닭의 발가락 한 개분 정도 밖에 흡수할 수 없게 된다. 나머지는 모두 쓰레기가 되어 혈액을 더럽힐 뿐이다. 이처럼 위는 감정에 의해서 좌우되기 때문에 ‘제2의 얼굴’이라고도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면 어째서 위는 감정에 의해서 좌우되는가. 예를 들어, 지금 당신에게 내일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완성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일을 해 낼 수 없다면 거래선 과의 관계도 끊어질는지 모른다. 이런 사실을 생각만 해도 초조와 공포와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러한 감정이 뇌에서 위로 전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사를 할 때에 이러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거나 긴장한 상태에서 음식물을 먹는다면 위의 소화가 극단적으로 나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감정이 위액의 분비 과다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음식물을 먹음으로써 오히려 식욕부진, 변비, 위하수 등 여러 가지 위장 장해가 일어나고 만다.


침이 ‘하얀 피’라고 일컬어지는 이유


또 시간이 없다고 해서 서둘러 음식을 먹는 것도 매우 좋지 않다. 소화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을 때 씹는다는 것은, 아래턱의 치아 안쪽에 있는 타액선에서 탄수화물 소화효소가 함유된 침을 충분히 내보내 음식물과 섞는다는 것이다. 침의 주된 목적은 음식물을 먹기 쉽게 하거나 소화시키는 일이다. 그리하여 씹는 행위로 해서 위에 음식물이 도착하기 전에 위액이 적당히 나오고, 췌장에서는 진한 췌액이 준비된다.


이것은 저작, 곧 씹는 일이 위나 췌장의 활동을 활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담낭까지도 자극되어서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다. 즉, 음식물이 운반되어 오면 진한 담즙을 많이 내는 효과가 있다.


우리가 음식물을 씹으면 침과 함께 파로틴이라는 타액선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머리카락이나 피부의 발육을 좋게 하는 호르몬이다. 또 뼈나 이를 튼튼히 하거나 세균과 싸우는 백혈구를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다.


씹는 일은 이처럼 인체에 유익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인데도 바쁜 현대인은 좀처럼 천천히 잘 씹어 먹지 않는다. 그 가운데는 밥을 빨리 먹는 것을 무슨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조차 있다. 식사를 빨리 하는 사람이나 많이 먹는 사람들 대부분이 위가 더부룩하다거나, 가슴앓이, 위산 과다 등의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이것은 잘 씹지 않기 때문에 탄수화물의 소화 효소가 그다지 분비되지 않아서 위의 부담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동양 의학에서는 침을 가리켜 ‘하얀 피’라고 일컫고, 피와 마찬가지로 그 작용을 인정하고 있다.


음식물 씹기의 효용, 이것은 바쁜 생활을 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몸은 모든 기능이 자동적으로 조절되게끔 되어 있다. 그 때문에, 하나라도 균형이 무너진다면 동시에 여기저기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가져 오고 만다.


식사를 할 때는 무엇보다도 먹는 일에 전념하여 다른 데 신경을 쓰지 말고, 느긋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한다면 아무리 먹어도 소화가 잘 되므로 과식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또 비대한 사람으로서 지방을 빼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는 천천히 씹어서 식사를 하면 좋을 것이다. 천천히 잘 씹고 있는 동안 배가 불러와서 절반의 식사량이면 족해지기 때문이다.


6. 산성, 알칼리성 식품보다 중요한 것


혈액이 산성으로 되는 것은 죽기 직전에만 나타난다


평소에 단것을 즐겨하지 않는데도 과로할 때 사탕 같은 것이 먹고 싶어지는 것은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즉, 과로해서 혈당치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몸속에서 자연히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고 먹어도 된다.


인간에게는 몸속에 있는 영양소가 부족하면 그것을 보급하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일어난다. 그것이 바로 자연이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영양표를 보면서 이것을 먹으면 철분이 플러스 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또 철분을 함유한 음식물이라고 해서 그것이 모두 몸에 흡수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몸이 요구할 때면 그것을 먹는 것이 좋다.


독자들 중에는 고기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몸이 산성으로 기운 것은 아닐까, 아니면 알칼리성으로 만들어야지 하고 야채나 과일을 더 많이 먹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넌센스이다. 도대체 알칼리성 식품이라고 해서 그것은 먹는다고 몸이 곧장 알칼리성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중화되지도 않는다. 사람의 몸은 화학 실험실의 시험관과는 다르다. 우리 몸은 pH 7.4(산-알칼리도는 7.0이 중성이며 그 이상은 알칼리성이다)의 약알칼리성으로 언제나 유지되고 있다. 만일 혈액이 산성으로 기울어지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신장기능이나 폐가 극단적으로 악화된 경우에만 그렇다. 그런 상태란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에게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알칼리성 식품을 먹는다고 해서 알칼리성 체질이 되지은 않는다


여기서 왜 인체가 약알칼리성을 유지하게끔 되어 있는지 간단히 설명하기로 하자. 우리가 가령 밥이나 고기 등, 산성 식품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을 먹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몸 안으로 들어가서 연소되어 당이나 지방으로 만들어져서 에너지로 사용이 되는데, 이때 탄산가스가 생기게 된다.


이 탄산가스가 혈액 중에 녹으면 탄산이 되어 혈액을 일시적으로 산성으로 만든다. 하지만 혈액 중에는 나트륨이나 칼륨, 단백질 등이 함유되어 있어서 바로 산성을 중화시켜 버린다. 이와는 반대로 혈액이 알칼리성으로 기울어지려고 하면 몸은 탄산가스를 증가시켜 약알칼리성을 유지하게 한다.


또 탄산가스는 호흡에 의해서 배설하게끔 되어 있으므로 혈액이 산성으로 기울어지려고 하면 여기서도 탄산가스의 배설을 증가시켜 조절하게끔 되어 있다. 또한 탄산가스는 오줌에 의해서도 배설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혈액이 산성으로 기울어지려고 하면 신장에서도 오줌으로 산을 많이 배설해 버린다.


인체는 이처럼 이중, 삼중으로 체내에서 언제나 약알칼리성을 유지할 수 있게끔 작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장병이나 당뇨병, 폐의 질병 등을 일으키지 않는 한 혈액은 언제나 약알칼리성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칼리성 식품이라면 무턱대고 섭취하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게다가 또 잘못 알고 있는 점이 많다. 식품의 알칼리도, 산성도는 그 식품 자체의 성질이라고 흔히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일상 섭취하고 있는 식품이란 거의 대부분 중성이다. 일반적으로 육류나 생선은 산성, 야채나 과일은 알칼리성이라고 말하지만 이들 식품을 가루로 만들어 물에 녹이면 pH는 어느 쪽 반응도 나타내지 않는다.


균형있는 식사를 하는 좋은 방법


그렇다면 식품의 알칼리도, 산성도는 도대체 어떻게 구별하는가. 그것은 식품을 태운 다음 그 재를 사용하여 조사해 보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식품 속의 영양소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체내에서 연소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품의 산성도, 알칼리도라고 하는 것은 그 식품을 태운 재를 물에 녹여서 그것이 산성이 되는지 알칼리성이 되는지 구별하고 있다.


즉, 산성 식품, 알칼리성 식품이라고 하는 것은 먹은 것이 체내에서 완전히 연소되어 소화 흡수되었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야채 등 알칼리성 식품을 무턱대고 먹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체내에서 완전히 연소되고 소화 흡수되지 않는다면 알칼리성 식품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고기나 생선 등 산성 식품이라 일컬어지는 것을 먹었을 때 야채나 해조류 등 알칼리성 식품을 곁들여서 먹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식사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식품을 알칼리성이기 때문에 먹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이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먹는다고 생각하라. 몸이 바란다는 것은 자연의 상태이며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주요 알칼리성 식품의 알칼리도

주요 산성 식품의 산도

콩류

대두

24.6

곡류

백미

6.4

강남콩

22.1

오트밀

10.5



21.4

소맥분(중력)

7.4

잠두

12.3

소맥분(강력)

9.4

해조류

말린 녹미채

147.0

조개류

바지락 조개

8.0

말린 미역

125.0

가리비

7.4

다시마

110.0

어류

고등어

10.7

야채류

말린 표고

31.5

가다랭이

7.5

시금치

19.3

다랑어

5.8

자고

17.4

꽁치

5.1

우엉

13.9

계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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