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니"…'용산'의 참담한 1년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니"…'용산'의 참담한 1년

박종관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다니"… 판결 이해할 수 없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한양석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28일 ‘용산참사’ 당시 망루에서 붙잡힌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 이충연(36) 씨 등 7명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등의 혐의로 징역 5~6년을 선고했다.   “용산 화재참사는 점거 농성을 벌이던 세입자 등이 인화물질을 들이붓고 화염병을 던진 것이 직접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지난 1월 20일 채 어스름이 가시기도 전인 새벽녘,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을 할퀸 화마에 남편 고(故) 이상림 씨를 잃은 전재숙(71)씨.   용산철거민 대책위원장 충연 씨의 어머니이기도 한 전 씨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셈’이라는 법원 판결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검은 소복을 입고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부르짖으며 거리를 누빈 지 어느덧 344일째. 전씨는 여전히 남편을 비롯해 고(故) 이성수, 양회성, 윤용헌, 한대성 씨 등 5명의 희생자가 어떻게 숨졌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전씨는 “망루에 화염병을 던져서 자기들끼리 서로 불을 지르고 또 우리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건데 이게 말이 되느냐”며 “그분들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드시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씨는 지난 26일 아들 충연 씨를 보기 위해 약 3주 만에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서울구치소를 다녀왔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용산참사를 일으킨 주동자로 몰린 신세지만, 충연 씨는 오히려 “다른 구속자 가족을 먼저 배려하고 챙기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전씨는 “(아들 충연 씨가) 폐도 안 좋고 몸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으면서도 자기는 잘 있으니까 가족들도 아프지 말고 다른 사람부터 쳐다보라는 말만 하더라”며 안타까워했다.   ◆ '가장 보고 싶은' 어린 딸과 결혼 예정 큰 딸 둔 아버지들   다른 구속자 가족에게도 면회는 일상이 됐다. 용산4구역 상가공장철대위 조직부장으로 일하다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김모 씨의 부인 심모(44) 씨는 일주일에 네 번씩 서울구치소를 찾는다.   면회가 금지된 일요일과 ‘용산 범대위’에서 면회를 가는 화요일, 금요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남편의 얼굴을 보러 가는 것.   용산 남일당 건물 바로 앞에서 조그만 금은방을 운영하던 남편은 졸지에 동료를 죽인 ‘살인범’이 됐고, 심씨는 틈틈이 부업으로 삼던 여행가이드 일마저 내팽개친 채 남편 뒷바라지에 나섰다.   남편의 가장 큰 걱정은 무엇보다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딸. 김씨는 선고 공판 당시에도 최후진술에서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어린 딸’이라며 끝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심씨는 “(딸이) 처음에는 나쁜 일을 한 아빠를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빠가 책을 많이 읽어야 좋은 사람 된다는 말을 했다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을 사달라고 하더라”며 “남편과 제가 겪는 어려움보다는 아이가 받을 상처가 더 걱정”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역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김모(53) 씨는 내년 3월 큰딸의 결혼을 앞둔 예비 장인어른이다.   두 집안의 부모가 정식으로 첫 대면을 하는 ‘상견례’를 마친 지 불과 일주일여 만에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터라 남은 가족들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오랫동안 같은 교회를 다니며 잘 알고 지낸 사이여서 예정대로 결혼식을 치르게 된 것만도 다행인 상황.   김씨의 부인 A씨는 “남편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한 것 같은데 그래도 5년을 선고받고 바로 구속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A씨는 하루빨리 남편이 가족 곁으로 돌아와 내년 3월 27일 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서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검찰은 용산 참사 유가족과 구속자 가족의 요구를 외면하고 끝내 3천쪽에 이르는 수사기록의 공개를 거부했다.   가족들은 여전히 수사기록 공개만이 용산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의 누명을 벗겨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 속에서도 난방조차 되지 않는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 1층에 한 식구처럼 모여 투쟁하고 있는 유일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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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2/30 [09:27]  최종편집: ⓒ 대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