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한 정신활동에 수반된 감정반응. 웃음의 사전적 의미이다. 이 세상에서 ‘웃음’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요즘 우리들이 발산하는 웃음의 질감과 빛깔은 과연 어떤 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최근 우리들의 웃음이 참 무거워졌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조작되어 있고, 기계적이라는 생각도. 칸트는 웃음에 대해 “중대한 것을 기대하고 긴장해 있을 때, 예상 밖의 결과가 나타나서 갑자기 긴장이 풀려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의 표현”이라 했다. 예상 밖의, 그 진지함의 찰나에 시간차 공격으로 파고드는 의외성의 결과가 바로 웃음인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일상적이기에 웃음공식을 한 마디로 딱 잘라서 정의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살이와 반비례로 TV속 세상은 ‘예능춘추전국시대’이다. 재치있는 수많은 예능인들은 화려한 입담과 개그로 팍팍한 세상을 웃음바이러스로 전염시킨다. 여기저기서 소리 높여 예능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별들의 난장, 이곳은 그래서 늘 유쾌하고도 신명난다. 그러나 때로는 소리 없이 강한 울림, 묵묵하고 ‘조용한 힘’이 더 센 빛을 발하기도 한다. 그 조용한 ‘힘’을 지진 사람, 사람을 제대로 웃기는 힘을 지닌 입담꾼이 있다. 바로 개그맨 송은이(38)가 그 주인공이다. 희극인, 예능인으로서 17년 동안 늘 편안한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온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앳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사실 그녀의 활동그래프는 별다른 굴곡 없이 늘 일정해 보인다. 그러나 개그와 교양을 넘나들며 시대를 아우르고 있는 그녀는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화음이다. 넘치지 않고 적당히, 자신의 그릇에 웃음의 명약을 담아온 송은이의 개그 철학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MBC방송국을 찾아갔다.
*개그맨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하셨나요? -송은이: 원래 개그맨이 꿈은 아니었어요. 연극과를 가게 된 것도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끼 때문이었죠. 사실 가수가 꿈이었거든요(웃음). 그런데 저는 사람들 앞에서 웃기는 걸 좋아했고, 학창시절에 친구들 앞에서 노래 부르고, 봉숭아학당 같은 개그 프로를 60분 동안 재연하기는 걸 즐겼어요. 늘 그래왔기 때문에 친구들은 당연히 제가 방송인이 될 거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울예대의 개그클럽에 들어가게 됐는데, 당시 이휘재, 신동엽씨가 방송에서 유명해지면서 방송국에서는 개그클럽의 끼 있는 친구들을 섭외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자연스레 개그맨이라는 직업을 갖게 됐어요.
*변함없는 길을 걸어왔지만 명확한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 고민인 적도 있었지요? -송은이: 그렇죠. 지금까지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해본 적이 없어요. 아역과 노역 전문이거든요. 20대 역할을 딱 한 번 해본 적이 있긴 한데 그것도 바보 역이었어요(웃음). 특별히 유행어도 없었고. 그런데 개그라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잖아요. 저는 개그클럽에서처럼 동료들과 함께 밤새 개그를 만들고, 아이디어를 짜는 공동작업 과정을 너무 좋아해요. 그때는 정말 우리가 서로를 웃기기 위해서 이야기로 밤을 새고 마냥 즐거웠던 것 같아요(웃음). 현재 개그콘서트의 옴니버스 형식이 사실 개그클럽에서 가져온 것이어서 그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구요. 하지만 그런 공동 작업에서 특별히 내가 튀려고, 또 혼자만 잘하려고 할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주변에서는 “은이는 참 잘해” 라고 하지만 특별히 뭘 잘하는지는 몰랐던 거죠. 그런데 캐릭터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방송 7~8년 차가 되서야 깨달았어요. 특별한 캐릭터는 없었지만 예능과 교양을 하면서 일반인들을 만나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에게 어떤 말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올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튀지는 않아도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캐릭터가 자연스레 만들어진 것 같아요(웃음). 그러면서 점점 방송인 송은이와 인간 송은이의 간극 혹은 매칭률이 좁혀지는 것도 느끼구요.
*개그맨이란 자신을 낮추면서 남에게 웃음을 전달하는 직업이잖아요. 송은이씨에게 개그란 무엇인가요? -송은이: 음, 좋은 선물? 개그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드리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약으로는 처방할 수 없는 긍정적인, 좋은 에너지를 줄 수도 있구요. 물론 저에게도 슬럼프와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 하지만 늘 방송을 즐겁게 하려고 해요. 신명나는 장에서 한 판 논다는 무한한 상상력과 자유로운 생각으로.
*방송생활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송은이: 음, 예전에 했던 <느낌표!>요. 여기서 ‘하자하자’라는 코너를 맡았는데, 참 좋은 일을 많이 했죠.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무서운 애들도 변화시키고(웃음). 이 프로를 계기로 인생과 방송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하는 방송이 비록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도화선이 되고,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거죠. 또 <진실게임>. 이 프로에서는 일반인들을 정말 많이 만났고, 친구이자 동료인 유재석씨의 장점을 많이 배우기도 했구요. 또 예능인으로서의 감을 익힐 수도 있었어요. 음, 그리고 <무한걸스>. 멤버들 간의 추억도 추억이지만 MC로서의 역량도 많이 표출할 수 있었고, 끼가 넘치는 후배들과 함께 하면서 감각도 익힐 수 있었으니까. 김신영씨 같은 경우는 정말 개그머신이거든요(웃음). 제 인생의 대표작이라고 하면 이 세 가지를 꼽을 수 있겠네요.
*결혼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송은이: 나이가 들면서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어릴 때는 한 가지, 두 가지만 걸릴 것이 점점 세 가지, 네 가지로 늘어나더라구요. 주변에서 이런저런 말을 하면 아 그런가? 하고 귀가 얇아지기도 하고(웃음). 일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데 결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골드미스가간다>를 하면서도 맞선을 보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가끔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어색하고 그렇더라구요(웃음).
*자신만의 웃음철학이 있다면. 그리고 앞으로 어떤 개그맨으로 남고 싶으신지. -송은이: ‘기다렸을 때 더 큰 웃음이 온다’가 저의 웃음철학이에요. 절대 호흡이 빨라서도 또 너무 느려서도 안 되거든요. <무한걸스>하면서 속된 말로 멤버들 모두 노가다 판 같다는 말을 했는데(웃음), 틀이 없는 것 같지만 노가다 판 같은 게 저희만의 틀이었다면 앞으로는 무겁지 않은, 직접 현장에 찾아가 돗자리 하나 깔고 구수한 얘기를 할 수 있는 토크쇼를 하고 싶어요. 라디오 DJ도 더 잘해내고 싶구요. 그리고 새벽에 출출할 때 김나는 라면을 떠올리면 군침이 돌면서 흐뭇해지잖아요. 송은이 하면 그렇게 흐뭇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망치 같은 자극보다는 바늘 같은 자극을 주는, 좋은 향기로 남는 개그맨이 되고 싶어요.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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