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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나기 비책 하나_박종국

한국작가회의/문학행사공모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1. 7. 1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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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의 글밭 2011-212

 

여름나기 비책 하나

 

박 종 국

 

휴일이라 여느 날보다 늦게 일어났습니다. 창밖을 보니 아파트 단지 내 차량들은 거의 다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연일 장맛비가 퍼부어댔으니 오늘처럼 말짱한 날은 바깥바람 쐬기에 참 좋은 때입니다. 그저 좀이 쑤셔 집에 있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아침나절부터 햇볕이 무척 따가웠습니다. 지금쯤 산행에 나선 산악회원들은 땀께나 흘렸겠습니다. 새벽녘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출발하면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재지난주 아내랑 진해 장복산을 올랐었는데 정말이지 더워서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이열치열하듯 여름산행에 충실한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습니다. 워낙에 더위를 타고 몸집이 푸짐한 처지라 감히 생각도 못할 노릇입니다.

 

그래서 나는 남다른 여름나기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책 읽기입니다. 흔히 독서라면 가을을 곱지만, 나는 그에 반하는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그저 땀이 삐죽삐죽 나는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에서 책 읽는 것 만한 게 또 없습니다. 한데도 가을 빛 완연한데 답답하게 붙잡혀 책을 읽는다는 게 얼마나 어쭙잖은 일입니까. 오히려 바람 서늘하고 경치 좋은 가을에는 자연과 교감하면서 한껏 풍류를 즐겨야합니다. 그러한 시기에 하필이면 책을 읽으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온갖 꽃들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 얼추 같이 책을 펴 드는 것이 얼마나 꼴사납습니까.

 

정오에 가까워지자 잘잘 끓었습니다. 창문을 죄다 열어놓고 거실에 오도카니 앉았습니다. 연방 등줄기에 땀방울이 송송 맺힙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에어컨을 켜고 싶지만 올 들어 한 번도 켜지 않은 에어컨, 충동적인 행동을 멈춥니다. 다행스럽게 지난 십년 동안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사는 까닭에 아무리 불볕더위라도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시원합니다. 아파트가 산자락에 위치해 앞산이 마치 눈높이에 맞춘 듯 다가와 이즈음의 신록에 눈이 시릴 지경입니다. 행여 아내와 아들딸이 깰까 봐 조심스레 책을 펴듭니다.

 

한주일 동안 잡다한 일들에 매여 겨를이 빠듯했습니다. 지금까지 날마다 책 한 권을 읽고, 잡문 한 편을 쓰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는데 근래 들어 금쪽같은 결심들을 흩뜨릴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지난주에는 모임자리가 연이었습니다. 하여 근 삼십년을 지켜온 일들이 흐지부지 되고 말 지경이었습니다. 딴은 나잇살이 더해 감을 실감하는 듯합니다. 며칠 전 네댓 살 선배를 만났더니 “이제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힘에 부친다.”하셨습니다. 공감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선배는 아직도 초심으로 가졌던 교육에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보하고 있는 분입니다. 선후배가 함께하는 모임자리면 언제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존경하는 선생님입니다. 그 선배한테서는 참 좋은 선생냄새가 납니다. 누군 그러대요. 꼬장꼬장하게 선생냄새 나는 늘 푼수가 없다고.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사는 의사답고, 판사는 판사답고, 장사는 장사치다워야 하지 않습니까.

 

내가 선배 선생님을 따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책벌레이기 때문입니다. 선배나 나나 독서 이력이 삼십년은 족히 되었으니 읽는 책만 봐도 근황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더러 만나서 ‘행복한 책 읽기의 비결’을 교환하기도 합니다. 선배도 독서는 날 더운 여름철에 부지런해야하고, 따뜻한 아랫목이 있는 겨울철이 제격이라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두어 시간 꼼짝 않고 눈 품을 팔았더니 제법 두툼한 책을 다 읽었습니다. 한낮의 바깥바람은 그저 후텁지근합니다. 아침나절 싱그럽던 풀이파리들이 축 늘어졌습니다. 저들한테는 이파리를 떨어뜨리는 것밖에는 별 뾰족한 묘한 없는 것 같습니다. 느지막이 일어난 아내가 사우나 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혼자 떠나보내고 다시 책을 붙잡았습니다. 책 향이 거실 가득 찹니다. 그 어떤 것에 견주어도 좋은 나만의 여름나기 비책입니다. 저녁에 아내랑 영화 보려갑니다. 그러면 휴일 하루가 다갑니다. 2011.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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