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실의 땅에서 열리는 국화축제
2011.10.27 이순수 소설가
내 고향은 하동이다. 서울에서 가장 먼 고장, 이전에는 서울에서 순환열차 타고 오면 8시간 반이 걸리던, 아침 안개마저 지긋지긋하게 온몸을 감싸던 그 지겨운 고장에 이런저런 삶의 이유로 들어와 산지도 한 4년 된다.
흔히들 산자수명함을 그 고장의 자랑으로 삼는데 내 고향은 그야말로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이다. 하지만 그뿐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지금 신음소리 깊은 마음병을 앓고들 있다. 들에는 추수가 한창이지만 농사꾼들의 얼굴에는 결실의 환한 표정을 볼 수가 없다.
작년보다 날씨가 좋지 않아 수확이 좋지 못한데 한 가닥 희망의 불씨 같던 추곡수매량도 줄었다. 작년보다는 좀 더 나은 가격이 나올 걸 기대했건만 한미 FTA가 우리 국회를 통과하면 그것도 말짱 봄날의 신기루일 뿐이다. 쌀이 좀 못한 대신 밤이나 감, 콩, 깨 같은 작물이라도 제값을 받아야 하는데 밤 값만 조금 올랐을 뿐이다.
녹차를 하는 농가들은 우리 국민이 중국산 먹지 말고, 커피 대신 우리녹차를 먹는 날을 학수고대하건만 작년 다르고 올 다르게 수요가 줄고 있다.
한마디로 하동은 산자수명하나 희망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 이런 농촌의 현상이 비단 하동뿐일까? 아니다. 농사짓는 곳이면 어디 할 것 없이 똑같다. 국회에서 강기갑 의원이 했던 말처럼 쌀값은 20년 전보다 오히려 못하다. 그런데도 올해도 참아야 할 것 같으니 곡식을 한가득 지고도 춘궁에 못 먹어 얼굴이 누렇게 뜬 것처럼 되고 마니 참으로 복장이 터질 일이다.
돼지와 소를 길러도 그 이익은 잘난 이들이 차지한다. 이러고도 제정신으로 논바닥 바라보며 살 농민이 있을까? 우리 농민들은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차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논을 버리고 밭을 버리고 있다.
하동땅에는 몇 년 전부터 그 빈들에 마지막 희망처럼 코스모스와 메밀을 심어 축제를 열고 있다. 도회에 사는 사람들이 옛 추억을 상기하고 오기도 하고 고향땅이 그리워 아이들 손잡고 오는 사람 등 축제기간 한동안은 제법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본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피 같고 살 같은 땅에서 곡식을 내지 않고 꽃을 심는 심정이 얼마나 허탈하며 씁쓸한지를. 이것은 농민으로서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 보니 자식 못 되는 걸 어떻게 해주지 못하는 부모 심정과 다를 바 없다. 그런 마음으로 농민들은 꽃씨를 뿌렸던 것이다.
올해는 이웃 면에 이어 내가 사는 횡천에도 지금 국화꽃 축제를 열고 있다. 산물이 부족하고 활기마저 없으니 뜻있는 이들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내년에는 기찻길과 냇물 주변으로 유채꽃밭을 조성할 것이라고 한다. 국화꽃 축제는 그 시험무대인 셈이다. 지역에 살면서 축제를 반겨야 하고 나름대로 도와야 도리일 텐데 아직 내 마음은 임 보낸 그 들녘의 쓸쓸한 낙조처럼 울울불불일 뿐이다.
뜻있는 이들은 농촌도 변해야 살고 사람이 찾아와야 농촌이 활기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기왕에 농사로 대접받고 살고 싶지만 그러기가 틀려서 변화를 찾는 우리 지역민의 의지가 눈물겹다. 비어 가는 들녘 언저리, 1990년대 초반 전국에서 가장 맑았다는 횡천강 여울이 예쁜 그 언저리에 지금 국화꽃이 만발하고 있다.
한 해를 갈무리하면서 마음 한구석 짠한 기운이라도 남아 있다면 국화꽃 향기에 취해서 횡천강 여울에 발을 담가 보시라. 이 가을에 전국적으로 수많은 축제가 있었지만 꾸밈없이 사람을 반기는 속 깊은 정을 한껏 느끼노라면 마음에 찌든 것들은 저절로 강물에 풀려날 것이고 우리네 농촌이 그런 마음이듯 새롭게 내년을 준비할 희망의 씨알 하나 건져 낼지도 모른다. 스산한 이 가을에 희망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지 않을까 한다.
이 마지막 만추의 계절에 쌀을 버리고 꽃을 택해야만 하는 고향지기 늙은 부모님의 땅, 농민의 타는 심정을 감싸주러 기차를 타고 하동 횡천에 많은 도시인이 와 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새로운 승화, 희망을 위한 국화꽃 한 송이를 마음에 품고서 말이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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