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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 펼쳐진 통영바다, 그리고 통영문학

박종국교육이야기/논술강의원고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2. 5. 2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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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상반기 테마별로 떠나는 독서문화기행

주제 : 우리 앞에 펼쳐진 통영바다, 그리고 통영문학


□ 일 시 : 2012년 5월 26일 토요일 09:00-18:00

□ 장 소 : 통영 청마문학관, 전혁림미술관, 박경리기념관, 김춘수 문학관

□ 대 상 : 창녕중학교 1-3학년 40명

□ 강 사 : 박 종 국(경남작가회의 사무국장, 수필가, 동포초등학교 교사) 



1. 통영에 가면 무엇을 볼 것인가?


통영에는 청마 유치환, 초정 김상옥, 대여 김춘수, 소설 ‘토지’의 박경리, 화가 전백림 등 많은 예술가들이 태어났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통영은 문화 예술인의 산실이다. 극작가 유치진, 시조시인 김상옥, 시인 유치환, 작곡가 윤이상, 시인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소설가 김용익 등 걸출한 예술가들이 태어나게 한 예향이다.

통영바다, 통영문학의 발자취를 어떻게 더듬을 것인가?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눈에 달렸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



2. 통영을 조망하며 문학인의 길을 걷다

  

통영은 유난히 쪽빛 바닷물이 일렁이며 휘돈다. 바다에 떠 있는 150여개의 섬들이 그 물결로 이어져있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아름답고 고운 절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그래서 그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서정적인 감흥에 젖어든다. 그게 통영의 매력이요, 문학적 취향이다.


통영은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을 비롯하여, 소설가 박경리, 극작가 유치진, 시인 유치환과 김춘수가 태어나고 자란 고장이다. 미국 미술계에서 더 알아준다는 전혁림 등 수많은 예술인들의 정신적 문화적 바탕이 된 곳이다. 그들이 정열을 맘껏 예술에 퍼부을 수 있었던 것도 이 통영의 아름다운 풍경 덕이다.


 가. 청마문학관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망월봉 기슭에 청마(유치진)문학관이 있다. 청마의 문학정신을 보존 계승하기 위하여 2000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전시관에는 시인의 삶을 조명하는 ‘청마의 생애’와 문학의 시작, 작품의 변천 및 평가를 살펴볼 수 있다. 청마의 유품 100여점과 각종 문헌자료도 약 350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 옆에는 도시계획으로 헐린 청마의 생가도 복원되어 있었다.


청마(유치환1908~1967)는 통영 출신으로 극작가 유치진의 동생이다. 연희전문(연세대의 전신)문과를 중퇴했고, 1931년에 <문예 월간>에 ‘정적’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광복 후에는 청년문학가협회장을 지내면서 민족문학운동을 전개하였고, 6․25때는 종군 문인으로 활동하였다. 교육계에 투신하여 경남여고와 대구여고 등의 교장을 역임했다. 지금 통영 중앙우체국이 있는 거리를 ‘청마거리’라 부르는데, 청마와 정운 이영도 시인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스며있는 거리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하늘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잎인지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행복' 전문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임은 뭍같이 까닥 않는데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날 어쩌란 말이냐


청마 유치환이 통영에 와서 한눈에 반한 여류시인 정운 이영도에게 바친 <그리움>이라는 시다. 청마거리에는 그가 매일 같이 찾아서 편지를 쓰던 붉은 통영우체국이 자리하고 있다.



 나. 박경리 문학관


한국문학사의 큰 별이 된 박경리의 발자취는 박경리 문학관에 모셔져 있다. 통영에서 태어나 진주여고를 졸업한 박경리는 중매로 결혼하였다. 1남 1녀를 얻었지만 한국전쟁(6․25) 중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 김동리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1955년)하였다. 홀로 키운 딸(김영주)은 1970년대 초 김지하 시인과 결혼하고, 사위가 민청련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그 동안 딸네 가족들을 뒷바라지하면서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김약국의 딸들><시장과 전장> 등의 장편소설과 현대문학 수상작인 단편 <불신 시대> 등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1969년부터 무려 25년 동안 200자 원고지 4만여 장의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였다.


박경리의 문학이야기


문학의 출발점은 ‘왜!’라고 한다.

‘왜!’로 출발하는 것이 어디 문학뿐이랴?

모든 문학이 바로 그 ‘왜!’에서 출발하는 것을….


☞ 박경리 선생의 가치관,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찬사, 생명존중 사상이 그의 작품 전편에 흐르는 가치관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무수한 생명들이 단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는다. 낮은 자리에 있어도 살아있다는 것 때문에 아름답고, 비천한 자리에 있어도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눈물겨울 만치 아름다운 것이다. 그게 박경리의 문학이다.


작가가 되기 전 고향을 떠난 뒤 창작활동에 기력을 쏟으면서 고향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통영시민들과 뜻있는 문인들이 박 씨의 고향방문을 추진하였고, 그 염원에 박 씨가 2004년 11월 딸의 부축을 받으며 통영을 찾았다. 자신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과 ‘파시’의 배경이 된 통영항과 충렬사 등을 50여 년 만에 둘러보았다.


그러다 81번 째 생일이 지나서 딸과 외손자 2명과 함께 통영을 찾아 한 농원의 펜션에서 묵게 되었다. 그 때 박 씨는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내가 죽으면 고향 통영의 양지 바른 곳에 묻히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하였고, 이를 전해들은 농장 주인이 기꺼이 너른 묘지를 희사한 것이다.


박경리 문학관은 미륵산 기슭, 금 물살이 일렁이는 호수 같은 통영 앞 바다와 한산도가 손에 잡힐 듯이 한 눈에 들어오는 양지바른 곳에 있다. 박경리 묘소에는 유언에 따라, 비나 상석도 없이 푸른 잔디를 심은 너른 곳에 봉분만이 볼록하게 돋아있다. 



 다. 김춘수 유품전시관과 전혁림 미술관


‘꽃’의 시인 김춘수 유품전시관에서 그 분의 감춰진 문학세계를 더듬어 볼 수 있다. 추상화의 대가인 전혁림의 미술관은 통영인의 또 다른 문향을 느끼게 한다. 전백림 화가는 93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한 미술가다. 그는 일제 치하에서 한글로 글을 쓸 수 없어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을 선택하였다고 한다. 

색채의 마술사 전혁림 미술관


통영의 미륵도의 미륵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백이 1975년부터 30년 가까이 생활하던 집을 헐고 새로운 창조의 공간으로 신축한 건물로써 2003년 5월 11일 개관하였다. 건물의 외벽은 전화백의 작품 다섯 점과 아들 영근의 작품 다섯 점을 선택하여 20x20cm 의 세라믹타일로 제작, 7,500여장의 조합으로, 통영의 이미지와 화백의 예술적 이미지를 표현하였으며, 3층 전면의 벽은 화백의 1992년의 작품, 창(Window)을 타일조합으로 재구성한 가로10X세로3 미터의 대형 벽화로 구성되었다.


전시관(80평)

          1층: 상설전시 외 기획전시실

          2층: 전시화 휴게공간

          3층: 작품과 관련자료, 소장품


전시작품

          작품: 평균 80여점

          자료: 60 여점


화백의 작업실: 미술관 옆 건물 1층으로 전시관으로 통화는 회랑이 있음

주차장: 미술관 건물 뒷편 100여 평으로 시설되어 있음


 다. 통영세병관, 통영시향토박물관


조선시대 경상, 전라, 충청 삼도수군 통제영 본영의 중심이었던 세병관, 통영에 들리면 세병관은 물론 통영시향토역사관도 꼭 들러야할 곳이다. 통영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세병관과 통영시향토역사관을 양쪽에 두고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통제사가 실제로 집무를 보던 운주당에 닿는다. 세병관은 조선 삼도수군 통제영 본영의 중심 건물로 19세기말까지 경상·전라·충청 등 삼도수군을 총지휘했던 본부로 사용됐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지방 관아의 건축물로 꼽힌다.


통영이 왜 통영인지 아셔요?


삼도수군통제영(수군절도사를 총괄하는 통제사가 머무는 곳)이 이곳에 있었기에 '통제영'을 뜻하는 통영이 지명이 되었다. 통제영이 있던 자리가 바로 세병관이었다. 통제영의 부속기관으로 6방 13공방이 있었는데 이것이 통영의 12공방으로 남아있고 나전칠기도 이 13공방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세병관은 선조37년(1604년) 삼도(경상, 전라, 충청)수군통제영이 통영으로 옮기면서 통제영성과 관아를 지었으나, 지금은 세병관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여수 진남관, 경북궁 경희루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목조건물이다.


세병관이란 현판 글자 하나의 크기가 2m에 달했다. 이는 세병관을 두보의 세병마(洗兵馬)라는 시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세병마는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두보의 대표적인 시로 현판 글자의 크기로 보아 당시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것을 얼마나 기뻐했는지 짐작케 한다.


세병관의 출입문에는 止戈門이란 현판이 붙어있는데 지과(止戈)란 창을 거둔다는 뜻으로 전쟁이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새겨져있다. 세병관은 천장이 나무 서까래가 드러나 있었으나, 중앙 뒷쪽 부분에는 마룻바닥이 한단 높게 되어있었다. 이곳이 궐패를 모시는 자리로  그 천장은 우물천장과 삼면에 창호문으로 되어있다.


지과문 오른쪽에 있는 2층 누각은 수항루로 왜적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던 곳이라 한다. 이날 충격적이고 새로운 사실은 한산대첩에서는 판옥선의 승리,  명량대첩에서는 울독목의 지형을 이용한 전술의 승리를 이루었으나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적군의 화살에 맞아 사망에 이른다. 이 부분에서 논란이 많다는데 과연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이 왜 갑판에 나와 있었나?' 라는 것이다. 통제사는 통제실(조타실)에 있어야 맞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이순신은 자살을 택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고 했다. 이미 이 전쟁이 끝나고 살아 돌아가면 옥고를 살거나 중죄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하기에 극단의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은 뛰어난 전략가임에 분명하나 성웅은 아니라는 것이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롤모델(용명한 군인)이 필요했는데 찾은 것이 이순신이었던 것이다. 군사정부 직후 이순신 영웅화 작업이 이루어졌고 어마어마하게 지은 현충사건축 역시 대표적인 작업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에서 이기고도 결국 300년이 지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300년 전 임란에서 망했다면 우리 민족이 단합하여 더 빨리 이 국면에서 탈출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좀 더 역동적인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


<토영이야길 안내>


통영 사람들에겐 통영보다는 토영이 익숙하다. ‘이야’는 언니나 형님을 부르는 통영말로 친근함이 담긴 표현이다. 토영이야~길은 친한 이들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이다. ‘통영 이야기길’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2개의 걷기 코스와 1개의 자전거 코스가 있다.


▶ 1코스 예술의 향기길 : 바다와 항구 그리고 예술이 만나면 통영이 된다. 통영 시내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어디서든 항구를, 바다를 바라보면 걸을 수 있다는 점. 바다를 곁에 두고 통영 구석구석에 스민 예술의 향기를 찾아 가는 길이다.


문화마당→남망산조각공원→시인 김춘수 생가→통새미→동피랑 벽화마을→화가 김용주 살았던 곳→외교관 김용식·소설가 김용익 생가→청마 유치환 생가터→문화동 벅수→통영시 향토역사관→통영 세병관→운주당→간창골 우물→옛 통영청년단회관→서문고개→소설가 박경리 생가→명정골 장석집→영부인 공덕귀여사 생가→함안조씨 정문→통영 충렬사→정당샘→나전장 송주안 생가→벼락당→옛 통영군청→윤이상 기념공원→해저터널→새터시장(서호시장)→이순신광장(조성중)→옛 경남 나전칠기 기술원양성소(이중섭 작품 활동 하던 곳)→초정거리→시인 김춘수 꽃 시비→청마거리→중앙시장  <10km, 4시간 소요>



▶ 2코스 미륵도 길 : 1코스가 통영 시내의 구석구석으로 이어지는 코스라면 2코스는 미륵산 산행 등의 트레킹이 더해졌다. 도심을 걷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통영의 자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코스다.


해저터널→김춘수 유품전시관→봉평동 지석묘→해평 열녀사당→봉수골 비석군→전혁림 미술관→용화사→관음암→도솔암→미륵치→미륵산 정상→박경리 기념관·묘소→산양읍사무소→현금산→미수체육공원→통영대교→경상대해양과학대학 <15km, 6시간 소요>



3. 통영을 말하다


‘통영 문학관 기행’이라는 테마로 실시된 이번 창녕중학교 독서문학기행은 청마문학관, 청마생가, 남망산 국제조각공원, 박경리 문학관, 전혁림, 미술관, 시인 김춘수 유품관 등을 둘러보는 코스로 진행됐다.


이제 걸출한 통영 문학인들은 세상을 떠났다. 항간에 친일부역이 문제시되는 문학인으로 지목되어 재평가가 거론되는 이도 있지만,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통영의 예술혼으로 승화되어 빛나는 별이 되고 있다. 통영 선배 문화예술인들의 발자취는 통영의 문학과 예술에 큰 활력소로 이어질 것이다.




명시 감상


봉선화


김상옥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하얀 손 가락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보듯 힘줄만이 서누나



백자부


김상옥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 한 싸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 끝에 풍경 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님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 틈에 불로초 돋아나고

채운 비껴 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 드노다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 날은 이리 순박하도다


- 초적(草笛) 1947



鄕愁ㆍ1


김춘수


내 집 뜰에는 개나리가 진 지 오래고 지금은 옥매화가 지면서 있고 라일락이 한창이다. 개동백의 잎이 한층 선명한 빛깔을 드러내고 있다. 머지않아 작약을 보게 되리라. 바야흐로 계절이 바뀌고 있다. 봄에서 신록절로 접어드는 이 무렵은 눈앞이 다채롭고 훤하다. 그러나 나는 대구에 와서 살게 된 뒤로는 눈앞이 다채롭고 훤한 변화와는 달리 때로 몹시 우울해지곤 한다. 바다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내 고향의 봄은 바다에서 와서 바다 너머로 가버린다. 식록절도 그렇다. 봄에는 바닷물이 연두색이 되었다가 신록과 함께 짙은 초록으로 바뀐다. 한려수도를 건너서 불어오는 바람은 봄에는 진달래꽃빛을 하고 느릅나무 어린 잎사귀를 흔들어 준다. 바람이 머리칼을 소금물로 더욱 부드럽게 해 주고 송진 냄새를 한길이나 골목에도 흩뿌리게 되면 계절은 어김없이 신록절로 바뀐다. 식탁에는 숭어, 미더덕, 짚신게…… 이런 것들이 사라지고 생멜치(내 고향에서는 멸치를 멜치라고 한다.)가 오른다. 남쪽바다의 그 기름진 신록절의 생멜치를 먹어 본 사람이면 맛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생을 즐겁게 해 주는가를 실감했을 것이다.


이런 내 고향의 바다를 곁에 두고 조석으로 언제든 볼 수 없게 되었다. 향수는 이별과 같은 것이라서 추억 속의 그 즐거웠고 황홀했던 시절로 나를 데리고 가기도 하지만, 보고 싶지만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은 나를 때로 몹시 우울하게 한다. 지금쯤 내 고향은 온통 바닷빛깔로 물들어 있으리라, 짙은 초록의.



鄕愁ㆍ2


내 고향은 경남 충무다. 한반도의 가장 남단에 위치한다. 유자가 결실할 정도로 따스한 고장이다. 한산도에서 여수로 이어진 이른바 한려수도로 트인 바다가 이를 데 없이 아름답다. 늦봄으로부터 신록적에 이르는 한 달 남짓한 바닷물빛은 그야말로 초록이고 남빛이다. 바다의 표정은 물론 파도에도 있지만, 그건 너무 동적이고 벅차다. 바다의 가장 애절한 표정은 그 물빛에 있다. 계절의 추이에 따라 더없이 민감한 것이 바다의 물빛이다. 겨울에 바다는 한없이 무거워 보인다. 가라앉은 빛깔은 하고 있다. 납빛으로 보일 때가 많다. 혹 어쩌다 햇살에 비늘을 반짝이게 하는 수가 있지만, 그럴 때는 그 부분만이 밝은 은빛으로 잠깐 피어난다. 그러나 곧 시들고 만다. 봄이 와서 바람이 몸을 풀게 되는 바다는 껍질을 벗는다. 꺼칠꺼칠하고 어두웠던 껍질을 벗고 마치 나무에 속잎이 피어나듯 연두빛의 빤질한 속살이 기슭 가까운 곳에서부터 번져 간다. 하루 온종일 바다가 웃음을 머금고 있는 그런 표정이 된다. 이맘때쯤 해서 이 고장 사람들의 식탁에는 봄멸치가 오른다. 멸치는 회를 해도 좋고 찜을 해도 좋고 지져 먹어도 구워 먹어도 다 그만한 맛을 지니고 있다. 남쪽바다의 봄멸치의 기름진 것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생선맛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까지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숭어, 짚신게, 방풍 등은 초봄의 꽃샘바람과 함께 잠깐 식탁에 올랐다가 사라지는 진미거리들이다. 숭어는 시락국에 가미加味하면 일미一味가 되지만, 초봄에 잠깐 났다 자취를 감추는 이 고장의 숭어맛, 그 기름진 숭어맛에 비길 만한 숭어맛은 없으리라, 짚신게는 아예 딴 곳에서는 나지도 않는다. 어른의 손바닥 크기 만하다. 생것을 때나 삶았을 때나 빛깔이 별로 변하지 않는다. 잘 구운 빵의 빛깔이다. 잘 먹는 이는 한 끼에 서너 마라는 먹을 수 있으리라. 방풍은 일종의 산나물이다. 바닷가의 양지바른 비탈에 초봄에 잠깐 났다 없어진다. 아주 향긋한 풀이다. 살짝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는다. 봄바다와 봄흙의 향기를 함께 먹는 셈이다. 게의 살과 해삼과 이 방풍으로 채를 만들면 일품의 요리가 된다. 이런 따위 요리들의 식탁을 즐겁게 해 주던 그 혓바닥의 추억이 사라지려는 무렵 바닷빛깔은 또 한 번 둔갑을 한다. 기슭 가까운 곳은 초록이 되고 멀리 나갈수록 짙은 남빛이 된다. 초록도 실은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짙은 부분과 엷은 부분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그 빛깔이 아주 미묘해지는 셈이다. 그것은 그대로 바다의 은은한 표정이 된다. 5월의 바다는 밝지만 단순한 밝음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아아란한 음영이 있다.


수양버들의 그 물들어 가는 빛깔과 좋은 비교가 된다. 한 나무에 연둣빛과 초록의 미묘한 배합이 어리어 있다. 5월달의 수양버들을 보면 바다의 표정과 비슷한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바닷물빛이 미묘한 표정을 짓게 되면 식탁에는 또 납새미 도다리가 오르게 된다. 사람들은 또 도다리와 뱀장어를 낚는 재미로 바다 한가운데 배를 띄우게 된다. 한려수도는 멀리 태평양으로 이어져 있지만 이 자면 잔잔한 호수 같기만 하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 2


김춘수 


바람도 없는데 꽃이 하나 나무에서 떨어진다.

그것을 주워 손바닥에 얹어 놓고 바라보면

바르르 꽃잎이 훈김에 떤다.

화분(花粉)도 난[飛]다.

'꽃이여 !'라고 내가 부르면

그것은 내 손바닥에서 어디론지 까마득히 떨어져 간다.

지금, 한 나무의 변두리에

뭐라는 이름도 없는 것이 와서 가만히 머문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김춘수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바숴진 네 두부는 소스라쳐 30보 상공으로 뛰었다.

두부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

--- 너는 열 세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은

감시의 1만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강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다뉴브 강은 맑고 잔잔한 흐름일까.

요한 스트라우스의 그대로의 선율일까,

음악에도 없고 세계 지도에도 이름이 없는

한강의 모래 사장의 말없는 모래알을 움켜 쥐고

왜 열 세 살 난 한국의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죽어갔을까?

죽어갔을까, 악마는 등뒤에서 웃고 있었는데

한국의 열 세 살은 잡히는 것 하낱도 없는

두 손을 허공에 저으며 죽어갔을까?

부디페스트의 소녀여, 네가 한 행동은

네 혼자 한 것 같지가 않다.

한강에서의 소녀의 죽음도

동포의 가슴에는 짙은 빛갈의 아픔으로 접어든다.

기억의 분한 강물은 오늘도 내일도

동포의 눈시울에 흐를 것인가,

흐를 것인가, 영웅들은 쓰러지고 두 주일의 항쟁끝에

너를 겨눈 같은 총부리 앞에

네 아저씨와 네 오빠가 무릎을 꾼 지금

인류의 양심에서 흐를 것인가,

마음 약한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한 지금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서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스러뜨렷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내던진 네 죽음은

죽음에 떠는 동포의 치욕에서 역으로 삭튼 것일까,

싹은 비정의 수목들에서보다

치욕의 푸른 멍로부터

자유를 찾는 네 뜨거운 핏속에서 움튼다.

싹은 또한 인간의 비굴 속에 생생한 이마쥬로 움트며 위협하고,

한밤에 불면의 염염한 꽃을 피운다.

부다페스트의 소녀여. 



깃발


유치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고운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하늘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잎인지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그리움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닥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동랑 유치진(柳致眞, 1905.11.19~1974.2.10)극작가, 연출가, 연극 평론가 

대표작 : 토막(1932), 버드나무 선 동리 풍경(1933), 빈민가(1934), 소(1935), 춘향전(1936), 마의태자(1937), 흑룡강(1941), 조국(1946), 별(1948), 한강은 흐른다(1958), 원술랑


극작가 주평 (1929.4.5~)

대표작 : 한풍지대(1958), 콩쥐 팥쥐(1994), 성야의 곡, 흑백(1959)



통영시인 최정규 <통영바다>


어느 것 하나라도

-통영바다 1


최정규


경상도 통영 갯물이

조릿대 타고 오면

섬진강 오르면


전라도 진안에서

첫눈 뜬 샘물이

은어 등에 업혀

청정한 바다로 헤어나와


이날 이때까지

본심대로 사는 이들을

잘도 품어 주었기에

첫손 꼽는 안태본* 아니던가


어느 것 하나라도

목 조이고 짓밟고는

성하게 살 수 없는데


섬진강 물로

찻물 끓이지 못하고

통영 갱물로

바다물고기 키울 수 없다면

발 붙이고 살 곳

다시 있으랴


*안태본:태중에 있을 때 부터의 본관을 말함




딸따니 예슬이

-통영바다 78


최정규 


꽃철이 후딱 지나간

유치원 마당에서


말구리 얼음바람 쫓아내고

한 알씩 한 알씩 품어온

검불그레한 포구알을


선물이라며 내놓는

예쁘고 슬기로운

여섯 살 연꽃반 예슬이


해거름 지나도록

거푸시하게 돌아다니다

들어서는 빈 배에

넘쳐나게 채워지는 새 세상


동글동글한 포구알이

새떼도 되고

복숭아도 되며

샛별도 되어 굴러다닌다


온누리 감싸는 동살이구나

갈깃머리 딸따니

통영바다 예슬이


*출전 : 『통영바다』(실천문학사, 1997)


*최정규 : 1951년에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으며, 1978년에 향토문학지 『물푸레』를 창간했다. 1987년에 『월간조선』, 『월간경향』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터놓고 만나는 날』, 『돌지 않는 시계바늘』, 『둥지 속에서』 등이 있다.


최정규 시인은 군대 시절을 빼놓고는 경남 통영을 떠난 적이 없는 토박이시인입니다. 두 번째 시집인 『통영바다』는 시인이 평생을 살아온 고향을 노래한 시들을 묶었는데, 개별 제목 아래 각각 ‘통영바다 1~81’의 부제를 붙인 연작시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통영과 통영사람들의 갯바람 정서를 씨줄 날줄로 삼아 내 문학의 그물코를 뜨고 싶었다’는 시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을 만큼 이들 작품은 하나 같이 통영바다를 배경으로 고단하지만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소중한 숨결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이 시집의 78번째 작품인 위 시는 예슬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섯 살짜리 여자 아이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름 앞에 딸따니라는 수식어를 덧붙였는데, 딸따니는 어린 딸을 귀엽게 부르는 말입니다. ‘그 집 막내 딸따니는 보면 볼수록 참 귀여워’처럼 쓸 수 있습니다. 비슷한 말로 ‘딸내미’가 있긴 하지만 ‘딸따니’가 더 정감 있고 귀엽게 들립니다.


고된 뱃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말구리 얼음바람을 쫓아내고/ 한 알씩 한 알씩 품어온’포구알을 선물이라며 내놓는 예슬이!(참고로 말구리는 지명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 모습이 ‘빈 배에 넘쳐나게 채워지는 새 세상’을 만듭니다.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벙싯거리도록 만드는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포구알은 포구나무의 열매를 말하며, 포구나무는 이팝나무를 가리키는 경남 지방의 방언입니다. 이팝나무 열매는 타원형으로 까만빛을 띠고 있으며 아이들이 따서 먹기도 합니다. 다른 시에는 ‘얌생이 똥을 포구알이라고 주워먹던 손으로’라는 구절이 나오기도 합니다.


시인은 그토록 예쁜 예슬이를 ‘온누리 감싸는 동살’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살이란 새벽에 동이 틀 때 비치는 햇살을 말합니다. 예슬이 같은 어린아이가 펼쳐 보여주는 순수하고 밝은 모습과 그 안에 담긴 예쁜 마음이 있어, 동살이 비치듯 온 세상이 환해지는 거겠지요. 비록 현실의 삶은 고단할지라도 날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거겠지요. 그게 또 시인이 바라는,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의 모습이겠지요. -우보-



문학관 기행


■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경기 양평) = 수도권 최고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양수리에서 멀지 않은 곳. 소설 <소나기>의 주요 장면을 테마로 한 공원과 황순원의 작품 생활을 집대성해 놓은 문학관, 황순원 묘역 등이 들어서 있다. ☎ 031-773-2299.


■ 박경리문학공원ㆍ토지문화관(강원 원주) = 문학공원 내에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옛집과 정원ㆍ집필실을 원형 그대로 살렸다.  토지문화관은 문인들의 연구ㆍ창작ㆍ집필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박경리문학공원  ☎ 033-762-6843, 토지문화관 033-762-1382.


■ 이문구 생가ㆍ관촌 소나무숲(충남 보령)=보령이 도시화되며 이문구 생가터엔 다른 집이 들어섰고, <관촌수필> 무대들도 흔적만 남아 있다. 이문구는 자신의 유골을 고향 소나무숲에 뿌려달라고 유언했고, 어떠한 문학비도 세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더 애잔한 곳. 옛 대천역사 일원에 ‘이문구문학관’을 건립중이다.  ☎ 041-932-2023.


■ 지용생가ㆍ정지용문학관(충북 옥천) = 1996년 정지용 생가를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집 앞에 실개천이 흘러 ‘넓은벌 동쪽 끝으로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시 <향수>의 감흥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 생가 바로 옆에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정지용문학관  ☎ 043-730-3408.


■ 청구원ㆍ석정문학관(전북 부안) = 부안읍 선은리에 있는 ‘청구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목가시인인 신석정의 고택이다. 지난 10월 말 청구원 바로 옆에 ‘석정문학관’을 개관했다. 변산반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  석정문학관 ☎ 063-584-0560.


■ 천관산문학공원(전남 장흥) = 장흥은 문향(文鄕)이다. 이청준ㆍ한승원ㆍ송기숙 등 문단에 이름을 떨친 불세출의 작가만도 여러명. 이러한 향맥을 잇기 위해 천관산 자락에 문학공원을 꾸몄다. 천관산에는 <서편제>의 작가 이청준의 체취가 특히 많이 서려 있다. ☎ 061-860-0457.


■ 이육사 생가ㆍ문학관(경북 안동) = 유교문화의 본향인 안동이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저항시인인 이육사의 고향이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육사 생가와 문학관ㆍ묘소 등이 있다. 생가 앞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 운치를 더한다.  ☎ 054-852-7337.


■ 청마문학관(경남 통영) = 본래 청마 유치환의 생가는 통영시 태평동에 있었으나, 도심지로 변해 현재의 정량동 망일봉 기슭에 있는 전시관 옆으로 이전, 복원했다. 아름다운 한려수도 나들이도 겸할 수 있다. ☎ 055-650-4591.


■ 제주4ㆍ3평화공원(제주 제주)=제주 전역이 4ㆍ3사건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다. <순이삼촌>을 쓴 현기영의 고향은 제주시 노형동 외곽의 함박이굴이라는 마을로, 1948년 초토화 작전으로 폐촌이 됐다. ☎ 064-710-8461.



주5일제 학습 문학기행 안내


김유정문학촌-강원도 신동면 증3리 868-1 ☎ 033-261-4650 www.kimyojeong.org

백담사만해마을-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1136-5 ☎ 033--462-2303 www.manhae.net

이효석문화마을-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544-3 ☎ 033-330-2700 www.hyoseok.org

토지문화공원-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1620-5 ☎ 033-741-2908 www.tojiliterarypark.com

경남문학관-경남 진해시 태백동 산 98-1 ☎ 055-547-8277 www.gnmunhak.com

구상문학관-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785-84 ☎ 054-973-0039

이육사문학관-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900 ☎ 054-851-6593 http://264.or.kr

이주홍문학관-부산시 동래구 온천1동 435-24 ☎ 051-552-1020

청마문학관-경남 통영시 정량동 863-1 ☎ 055-650-5358

추리문학관-부산시 해운대구 중2동 1483-6 ☎ 051-743-0480 www.007spyhouse.com

영인문학관-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474-27 ☎ 02-379-3182 www.youngin.org

편운 조병화문학관-경기도 안성시 난실리 산 337 ☎ 031-674-0307 www.poetcho.com

한국현대문학관-서울시 중구 장충동 2가 186-210 ☎ 02-2267-4857 www.kmlm.or.kr

미당시문학관-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231 ☎ 063-564-1321

박화성문학기념관-전남 목포시 대의동 2가1-5 ☎ 061-245-2953 www.mokpo.or.kr

아리랑문학관-전북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 226-23 ☎ 063-540-3225

조태일시문학기념관-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799, 산 18-24 ☎ 061-362-5868

채만식문학관-전북 군산시 내흥동 285 ☎ 063-450-4467 http://chaemansik.gunsan.go.kr

한국가사문학관-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319 ☎ 061-380-3240 www.damyang.go.kr

혼불문학관-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522 ☎ 063-620-6788

정지용문학관-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3-3 ☎ 043-730-3588 www.jiyong.or.kr

한국문인인장박물관-충남 예산군 광시면 운산리 256-2 ☎ 041-332-0592 www.writerstamp.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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