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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아이들 카톡방에 초대... 참 기쁘며 감동스럽다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3. 5. 1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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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아이들 카톡방에 초대... 참 기쁘며 감동스럽다

애정이 담긴 이야기와 눈빛 그리고 끊임없는 믿음

13.05.13 10:24l최종 업데이트 13.05.13 10:31l이국향(albert38)

내일 아침이면 출근이 기다리는 일요일 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다시 시작할 한 주를 떠올리면 적잖은 긴장과 각오를  다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다. 적당히 마음이 무거웠고 학급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 또 처리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며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적어도 한 시간 전까지는 그랬다. 한 시간이 지난 지금, 사람 마음이 이토록 달라질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속으로 '화~한' 박하사탕 같은 맛이 퍼져나가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니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새 학급 아이들과 만난 지 이제 두 달하고도 약 2주,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느 정도 학생들에 대한 성격적 특성이나 학습태도 등을 파악했다. 그동안 우아한 하프를 켜는 연주자 마냥 혹은 흔히 비교하는 백조 마냥, 매일매일 겉으론 우아하고 점잖은 듯 했으나 내심 바쁘고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남의 눈에 띄지 않아 알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혼자서 애를 쓰며 두어 달을 보냈다.

▲ 뭐가 보이니? 쉬는 시간 창밖을 내다보며 이야기 중
ⓒ 이국향

여느 해와는 다른 시작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올해 내 아이들은 무언가 다르다고 느꼈다. 교직 경력 반 이상이 5학년이었던 이상한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올해 친구들 속에는 참을성과 감정을 조절하고 절제하는 힘이 부족한 아이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예의에 대해 훈련이 덜 된 아이들이 제법 보였다. 무례하고, 존중과 배려는 없고, 심지어 인간의 잔인한 면마저 가진 아이들도 보여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학교 교사들 사이에도 그런 말들, 유난히 이 학년이 힘들다는 소문은 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그런 소문을 들을 때마다 단 한 번도 의심 없이 아이들이란 선생님하기 나름이란 생각을 했다. 그렇고 그런 아이들이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아이들이란 부모와 교사 등 어른들이 그려주는 대로 아직은 변해가는 그림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마음 여전히 변함없었다. 나는 그들의 주관적 판단은 신뢰하지 않고 내 객관적 판단이 정확하다는 오만함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지금은 그래도 제법 훈련이 되었지만, 학기 초 한 달여 넘게 내 아이들과 지내는 날마다 깜짝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일어났었다. 보통 우리 아이들 정도의 연령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행동이 이 아이들에게서는 쉽게 보였다. 자기 책상 위에 있는 아주 작은 휴지 한 조각으로 촉발된 서로 간의 말다툼 끝에 급속도로 반전하면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 다반사였다. 대체로 친구들의 행동에 지나치게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게 문제였다. 싸움이 이리도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 녀석들을 보지 않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할까 싶은 생각에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타이르고, 사랑하고, 웃고,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끊임없이 연습시키고 훈련시켜 지금은 아주 많이 좋아졌다.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떨어지는 두 서너 명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그래도 많이 유순해져 있다.

학생들에게서 지도해야 할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은 내가 학교에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한편으론 좋다. 그러나 몇몇의 저런 돌발적인 행동들은 학급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이기적으로 말하면 학급 학생들의 많은 수는 친구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도 수시로 보게 되는 환경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의도하지 않은 환경에 놓이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닌 것이지만, 아직은 저런 철철 끓어 넘치는 다듬어지지 않는 분노를 가까이서, 그것도 또래들의 행동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은 12살 어린 아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다지 멋진 행운은 아니다. 배우지 않아도 좋은 행동이다. 아직은 교사인 나 역시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물론 내 아이들도 한 달 두 달 지남에 따라 새로운 학급의 문화에 익숙해져 갈 것이다. 나는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 할 것이며, 아이들은 분노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이야기해도 들어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왜곡없이 전달될 수가 있고, 자신이 한 만큼 공평하게 대접받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녀석들도 차차 자신들의 익숙한 방식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굳이 그렇게 화내며 주장하지 않아도 자신이나 의견이 충분히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보다 여유로워질지 모른다. 물론 이런 믿음과 예상이 어이없이 깨어지는 일이 발생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래, 오늘 이야기로 돌아가자.

▲ 이야기 중 쉬는 시간 운동장 내다보며 이야기 중
ⓒ 이국향

저녁을 먹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한 잔 마시며 휴식하고 있을 때 북북거리며 카카오톡(이하 카톡)이 계속 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봤더니 우리 반 아이들이 지들 단체 카톡방에 나를 초대한 것이다. 내일부터 긴장하며 아이들과 한 주를 보내리라는 가열 찬 맹세가 스르륵 힘을 잃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지들 단체 카톡 방에 선생인 나를 초대하다니... 그것도 가장 말썽꾸러기 녀석들 서넛이 들어있는 그 방에... 지들이 하는 말, 행동, 전부 다 스캔할지도 모를 나를 불러들이다니...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이때부터 마음속에 불꽃 놀이하듯 멋진 그림이 팡팡 터진 것 같다. 행복했다. 초대를 받았으니 들어가 아이들과 한 참을 이야기했다. 빛의 속도로 올라가는 글을 따라가며 음악이며 이모티콘을 맘껏 날리며 아이들과 수다를 떨었다. 카톡방에서 본 아이들은 한편 순진하다. 한 녀석이 나 들으라고 음악도 보냈다. 어지간히 산만해 여러 번 꾸지람도 들었던 녀석이 그런다. 들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다. 물어보니 일부러 나 들으라고 보낸 것이란다. 점심시간에 내가 듣는 음악을 기억했단다. 참 기쁜 날이다.

감동했고 행복했다. 삶의 기쁨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생각한다. 마음이 새털처럼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심지어 사는 것이 참 멋진 것이란 생각마저 들 정도로 그 무겁던 마음이 눈 녹 듯 사라져버렸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지속적으로 알려주면 결국은 알아듣는다. 부모든 교사든 만약 반드시 변화되어야 할 어떤 일이 있다면, 특히 이런 충동이 잘 통제되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 지낼 때는 끝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아이가 원래 그래요'라든가 '그 녀석은 어떤 애야'하고 단정 짓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아이의 행동이 개성으로 봐 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면 함께 어울려 그 개성이 꽃 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하고, 개선이 필요한 여지가 있다면 단호하게 시작하고 지속적으로 가야한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은 그 아이의 본성을, 비록 실수는 했지만 잘 하려고 했던 의도는, 지금은 비록 실수 했지만 머지않아 그 녀석은 반드시 잘 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는 그 확신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한 인간으로서의 사람 자체에 대한 선량한 확신과 믿음이 없다면 대상이 누구든 타인의 진정한 변화는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더구나 자발적인 변화는 자신에 대한 존중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이해는 중요하다.

만약 내가 아이든 그 누구든, 상대의 입장이 되지 않고 내 놓은 그 어떤 해결책이나 의견이나 도움 등은 그리 큰 효험이 없다. 억지로 올려놓은 자리에 사람은 그리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스스로 올라가도록 의지를 북돋워 주고, 올라갈 수 있음을 믿고,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 것이 곧 상대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며 지극한 애정의 표현이다.

사실 오늘 우리 아이들처럼,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은 나를 가르친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도록 한다. 나는 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내 식의 잣대로 이 아이들을 살펴보지도 않은 채 댕강댕강 잘라 편집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품으려는 노력은 학교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서는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존중, 애정이 담긴 이야기와 눈빛 그리고 끊임없이 믿고 기다리는 태도. 이것이 없다면 내가 아닌 타인의 자발적 변화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이것이 내게 부족하기에, 내 앞의 아이들을 통해 평생 이런 훈련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오늘 아이들과의 즐거운 수다는 내게 사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었다. 애쓰면 애쓰는 대로 헛되이 보낸 시간은 없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내가 선생으로서 아이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어 기쁜 날이다. 살아있어서 좋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 준 좋은 날이다. 오늘 같은 날을 보면서 나는 내 안에 살아남은 고집스런 생각이나 교육적 편견을 되짚어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녀석에게 말했던 그 것들이 결국 자신을 걱정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것이 더욱 기쁜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있어, 가능하면 좋은 변화는 빠르게 일어나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녀석들과 내가 함께 써 가는 이 시간이 보다 밝은 그림으로 그려질 테니까 말이다. 내 아이들이 나를 떠날 때는 분노감이나 공격성은 줄어들기를 바란다. 인내할 수 있고, 부드럽고 다정하게 타인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 어느 곳에 가서든 자신의 것을 나누고, 남도 나누게 하면서, 그러면서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를 떠나 다른 사람과 만나도, 자신이 가진 멋진 색깔을 드러내며 마음껏 날개 펼치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내 아이들이 정말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오늘 더 잘 알게 되었다. 내 아이들은 생각보다 유연하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을 위한 내 사랑은 간절하되 조용히, 따스하게 지치지 않고 오래 비추어야 덥혀진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이 입고 있던 외투를 스스로 벗어던지며 걸어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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