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한 권은 평생친구가 된다
박 종 국
요즘은 겉멋에 사는 사람이 많다. 까닭 없이 유행에 따른다. 그러니 쉽게 들뜬다. 온통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마음을 빼앗긴다. 책보다 컴퓨터나 텔레비전이 먼저다. 억지로 웃기려는 코미디의 악쓰는 소리, 인기에 편승한 가수들의 부드럽지 못한 노래에 더 끌린다. 차분히 책을 읽는 모습을 만나기 어렵다. 어른아이 할 것 없다.
근데도 우리 삶은 언제나 바쁘다. 여유를 갖고 일상을 지켜 볼 수가 없다. 자투리 시간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하루를 굶으면 견딜 수 없듯이 하루 동안 책 읽지 않으면 마음이 고파서 견딜 수 없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 밥 먹듯이 책을 읽지 않을까. 그래도 쉬 밥 굶듯 책을 굶는다.
유럽 사람은 불과 오 분만 틈이 생겨도 책을 꺼내 읽는다고 한다. 아이에게 독서를 강요하면서 정작 어머니 자신은 책을 읽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이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신의 아들딸이 책 읽기를 꺼리도록 내버려둘까.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 때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책 읽으라고 닦달했었다. 그토록 권장했던 책읽기가 아직도 자식들의 귓가에만 맴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이상하다.
단지 공부하지 않는다고, 시험 점수 때문에 야단치는 볼썽사나운 부모님을 통해서는 책이 읽혀지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에 발맞춰 살아가자면 독서를 통하여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받아들이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어른들이 책 읽는 모습을 보여 주고, 책을 읽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주어야 한다. 어떤 일에 어른들은 자기 관점으로 걸러서 받아들이지만, 어린이는 그 내용, 그 생각, 그 빛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아이들은 바짝 마른 스펀지다.
율곡은 '무릇 독서를 하되 반드시 한 권의 책을 숙독하여서 그 뜻을 모두 알도록 통달하여 의심 없게 된 다음에야 다른 책을 다시 읽을 것이다'고 했고, 안중근 의사는 식민지의 원흉을 물리치고 차디찬 감옥에서 단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몽테스키외는 '독서를 사랑한다는 것은 지루한 시간을 즐거운 시간과 교환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토머스 에디슨은 '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운동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남의 책을 읽는데 시간을 보내라. 남이 고생한 것에 의해서 쉽게 자기를 개선할 수 있다'고 했다. 버크는 ' 생각하지 않고 읽는 것은 씹지 않고 식사하는 것과 같다'고 경고하였다.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모두가 책읽기를 권장하는 소중한 일침이다.
책 읽는 버릇을 들이기 위해서는 책 읽는 모습을 즐겨 보아야 한다. 먼저,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줄 때 쉽게 책을 읽는다. 또한 아이가 책을 붙잡고 끝까지 읽어냐는 인내력을 길러야 한다. 인내력이 없으면 책읽기가 따분해지고 싫증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어머니는 자식을 너무나 사랑한다. 아니, 사랑이 넘친다. 단지 책 읽는 모습만 빼고 그렇다. 아이는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혼자서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 시간만 되면 어머니가 어김없이 깨워 주고, 입혀 주고, 먹여 주고, 심지어 일기 숙제까지 거들어 주고, 준비물까지 챙겨 준다. 그렇지만 자식이 책을 읽는 데는 그다지 관심 없다.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그러니 요즘 아이는 따로 고생을 경험할 기회가 없고, 애써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도 않는다. 누구를 탓할 까닭이 없다.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집은 얼마나 행복할까. 물론 모든 책을 소리 내어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가족이 각자의 방에서 나는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질까. 부모는 자녀가 자기 방에서 무얼 하는지 귀 기울여 가며 궁금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책을 읽어도 눈으로만 읽을 뿐 입으로는 읽으려 하지 않고 컴퓨터 오락이며 채팅에 빠져 생활한다. 텔레비전 소리만 높다. 책 읽으라는 다그침이 대문 밖에서도 들린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책을 쳐다보기조차 두려워진다. 집안의 평화가 깡그리 무너진다.
발붙이고 사는 지금은 '정보화 시대'다. 정보화 시대는 '대화의 시대'다. 그 만큼 대화가 중요시된다. 대화는 자기의 생각을 잘 표현해서 남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한 방법이다. 따라서 진정한 대화는 자기의 고집만 내세우기보다, 의견을 나누면서 자기의 뜻을 밝히고, 남의 의견도 존중하며, 좋은 의견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 바탕이 책 읽기다. 그렇기에 똘똘한 아이, 대화가 풍부한 아이,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뚜렷하게 이야기하는 아이로 키우는 으뜸인 방법 중의 하나는 독서다.
올바른 독서는 책 읽는 좋은 행동과 인내력을 가진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책 고르기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물론 좋은 책이란 '양서'를 말한다. 그러나 모든 책이 다 양서가 아니다. 책 중에는 표지가 요란하거나 호화롭게 만들고, 눈을 끌기 위해 욕심을 앞세운 책도 많다. 뿐만 아니라 싸게 파는 책, 날림으로 만든 책, 남의 출판사 책을 베낀 불량책도 버젓이 팔린다. 또 잘 팔리는 책, 우습고 아슬아슬한 재미에 치우친 흥미 위주의 명랑 소설이나 공포 괴기소설 등 단순히 읽기 쉽다거나 재미로 선택하는 책도 흔하다. 그러나 이러한 책읽기는 위험하다. 가능한 몸과 마음을 올바르게 키워주는 좋은 책을 골라 읽어야 한다.
사람의 됨됨이는 어릴 때 갖추어진다. 인성을 말하는데, 부모님의 생활 태도나 선생님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성장기 아이가 어떠한 책을 대하였는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아이들이 좋고 나쁜 책을 쉽사리 구분하는 능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고르는데 그 내용이나 형식에 어른들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고, 애정을 갖고 다정스레 이끌어주어야 한다.
어떤 책을 고를까. 머뭇거릴 까닭이 없다. 부모님과 선생님, 어른들이 먼저 읽고 권하면 다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형편은 어떤가. 책읽기라면 무턱대고 위인전기를 많이 권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나 소설보다 재미가 없거나 딱딱함을 느끼게 되어 책을 멀리하는 큰 이유가 된다. 하물며 위인전기에서 흔히 보게 되는 왕이나 장군들이 높은 권위로 자리에 앉는 모습이 답답해진다. 또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는 학자나 발명가, 예술가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봉사정신과 희생정신을 실천한 사람은 드물다. 단지 이유는 그 뿐만이 아니다. 단지 그 사람의 공덕을 칭찬하여 기리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아쉬움이 많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주역이 될 다음 사회는 남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남을 위해 봉사하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인물이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이가 올바른 책을 선택하는데 자신의 삶을 값지게 하는 체험을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 주변의 훌륭한 인물들의 얘기를 통해서 올곧은 마음을 키우고, 힘찬 용기를 주는 책의 선택이 중요하다.
책을 고르는 데는 어떤 틀이 없다. 먼저 아이들의 연령이나 학년, 성격 등을 생각하고, 독서 욕구나 독서 능력에 대한 개인적 수준을 고려하여야 자신에게 알맞고 유익한 책을 고른다. 우선 책의 형식면에서 좋게 소개된 책을 고르고, 지은이가 분명하고, 훌륭한 분들의 책을 선택하는 게 좋다. 출판사도 그 방면에서 인정을 받는 쪽으로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책의 발행 연도가 최근이면 좋은 책이다. 문장의 경우에도 알기 쉽고 내용과 분량이 적당해야 한다. 내용면에 그 책이 삶을 가치와 보람을 느끼게 해야 하고, 마음을 밝고 명랑하게 이끌어 주며, 올바른 생활 태도를 길러 주는가를 차분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역사나 과학적 지식을 쌓음에 도움이 되는지, 도덕이나 예술·종교적 교양을 높임에 도움이 되는지 가려보아야 한다.
무섭고 비참하고, 잔인하거나 나약하고, 안일한 감상적 이야기의 책은 피하는 게 좋다. 또한 옳지 못한 방법으로 승리를 한다거나, 약자가 강자를 무조건 골탕 먹임으로써 승리한다는 내용도 좋지 않다. 책의 내용은 정당해야 하고, 이치에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들의 경우 감상력은 뛰어나지만 비판정신은 덜 성숙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책을 선택하면 끝까지 읽겠다는 꾸준한 인내력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베이컨은 '어떤 책은 맛을 보고, 어떤 책은 삼키고, 소수의 책은 잘 씹어서 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독서 방법은 여러 가지다. 먼저 소리 내어 읽는 방법(음독, 音讀)과 소리 없이 읽는 방법(묵독, 默讀)이다. 책은 소리 내어 읽는 게 좋다. 동화나 동시를 낭독하면 발음의 정확성이나 표현력이 높아진다. 그러나 도서실이나 교실에서는 남을 생각하여 반드시 소리 없이 읽어야 한다.
다음으로, 빨리 읽기(속독, 速讀)와 천천히 읽기(지독, 持讀)다. 그림 이야기나 오락 도서는 빨리 읽어도 좋다. 빨리 읽으려면 머리는 움직이지 말고 눈동자만 움직이는 훈련을 계속하면 쉽게 익숙해진다. 그러나 책에 대한 이해력 없이 무조건 빨리 읽으려고 덤비면 책 속의 깊은 뜻을 음미할 수 없기 때문에 천천히 생각하며 읽는 게 좋다. 특히 중요한 대목은 골똘히 생각하며 읽고 그 내용을 노트에 기록하면 좋다. 책을 빨리 읽는 게 좋지만, 그래도 너무 빨리 읽으면 마치 음악테이프를 빨리 돌리는 경우와 같이 아름다운 음악이 무슨 음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경우와 같아진다.
또 다른 책을 읽는 방법에는, 전체적으로 읽는 방법(통독, 通讀)과 부분적으로 읽는 방법(적독, 摘讀)이다. 통독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차근차근 빠짐없이 읽어 가며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고 기억하는 방법이고, 적독은 꼭 필요한 부분만 가려 읽는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자세로 권장할 만 하다. 적독은 '조사용 독서'로서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 동·식물도감이나 참고서 등에서 읽고 싶은 부분만 찾아 볼 때 필요하다.
또한 깊이 읽기(정독, 精讀)와 마구 읽기(남독, 濫讀)다. 정독은 여러 모로 살피어 세밀하게 읽는 방법이고, 남독은 순서도, 방법도, 체계도 없이 내용을 음미하거나 검토하지 않고 마구 읽는다. 흔히 오락 잡지나 만화를 읽을 때 마구 읽는 현상이 나타난다.
더불어 권장해야 할 독서 방법으로 많이 읽기(다독, 多讀)와 가끔 읽기(과독, 過讀)이다. 글짓기 실력을 높이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지어 보라고 권한다. 여러 종류의 책을 많이 읽으면 저절로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다독은 바로 독서의 습관을 몸에 배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반대로 과독은 너무 적게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리듯이 문화실조에 걸리게 된다.
그밖에도 고루 읽기(균독, 均讀)와 치우쳐 읽기(편독, 遍讀), 다시 읽는 방법(재독, 再讀)이다. 고루 읽기는 폭 넓은 지식과 교양을 쌓게 하고 응용력과 적응력을 길러 준다. 한 갈래만 치우쳐 읽어 가는 아이는 융통성이 없고, 고집이 세며, 자기주장만 내세우게 된다. 어른들도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남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이 없고 외톨박이가 되며, 성격이 빗나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폭 넓은 독서가 좋다. 공자는 주역의 가죽 표지가 닳아서 세 번이나 그 표지를 갈아붙이면서까지 반복해서 읽었다고 전해진다. 일단 한번 읽은 책도 미루어 두지 않고 다시 한번 그 의미를 생각하며 읽는 게 중요하다는 예이다.
이상에서 독서의 필요성과 유익한 책을 야무지게 고르는 방법을 살펴보았는데, 대체적으로 초등학교 때는 남독을 하다가 중학교 때는 다독을 하게 되며, 고등학교 때는 정독을 하게 되는 경향이다. 하지만 어느 선택이 옳다고 고집할 수 없다. 스스로 알맞은 방법을 선택하는 게 좋겠지만 늘 내가 입고 다니는 옷처럼 편안한 방법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편안한 마음으로 읽고 싶을 때 좋은 책을 가려 읽어야 그 진맛을 안다.
영국의 작가 골드 스미스는 좋은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새 친구를 얻은 듯 기분이 좋고, 전에 잘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는 옛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이라고 했다. 이처럼 한 권의 좋은 책은 평생 친구가 된다. 한번쯤 곰삭여 봄직한 말이다.
/박종국에세이칼럼 2015년 170편
[박종국독서칼럼]그침 없는 책 읽기 (0) | 2016.02.10 |
---|---|
왜 아이가 책을 읽지 않으려고 할까 (0) | 2016.02.03 |
독서광 빌 게이츠 (0) | 2014.09.26 |
사랑, 그 길들여짐에 대한 책임감 (0) | 2014.08.19 |
타성에 벗어난 책 읽기_박종국 (0) | 2013.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