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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착한 시각장애인의 소망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5. 8. 1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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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착한 시각장애인의 소망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살아있음에 감사함과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얼마 전의 일이다. 오십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 시각장애인 한 분이 사무실 문을 더듬거리면서 들어왔다. 초점을 잃은 커다란 눈동자는 허공을 향해 맴돌았지만, 갸름한 얼굴에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가 그녀의 깔끔한 성격을 짐작하게 했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추춤거리며 상담 석에 앉았다.

그녀가 내게 호소한 내용은 이런 내용이었다.

 

그녀를 비롯해 안마를 하는 시각장애인 몇 명이 그 동안 저축한 돈을 모으고 은행 융자를 끼어 간신히 공동의 안식처로 연립주택 지하층을 분양 받았다. 그러나 그 집은 부실공사에 날림 집이었다. 입주하자마자 하수구의 물이 역류해 변기에서 오물이 거꾸로 솟아 나왔다. 집안에 물이 차면서 장농이며 가재도구가 모두 오물에 젖어 옷 한 가지 제대로 건지지 못했다. 더듬거리며 젖어 있는 바닥을 청소했지만 번번이 하수구에서 더러운 물이 넘쳐 흘렀다. 여러 번 전화를 해도 건축업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친 그녀는 드디어 법에 호소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사는 게 이렇게 힘이 드셔서 어떻게 하죠?”

내가 그녀를 보며 위로했다. 불과 얼마 전에 나는 비슷한 문제를 처리한 적이 있었는데 시각장애인의 경우에는 정상인과 달리 분노조차 터뜨릴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물은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젊었을 때의 고생에 비하면 별거 아니에요.”

고통의 연속으로 어느 한계를 넘었을 때 찾아오는 평온함이 그녀의 미소 속에 들여다보였다.

 

서서히 그녀의 과거가 흘러나왔다. 세 살 때 그녀의 엄마가 병으로 죽었다. 엄마의 병이 전염됐는지 그녀 역시 열병을 앓고 난 뒤 시력을 잃었다. 부모님도 없고 앞이 안 보이는 그녀는 잡초같이 끈질긴 생명력 하나로 자라났다. 시각장애인의 생존 방법은 구걸 아니면 안마사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녀는 안마사가 되었다. 떳떳하고 싶었다. 그러나 스스로 벌어서 살려는 자존심의 대가는 혹독했다.

 

안마 손님이 불러놓고는 그냥 가버리는 바람에 택시 값만 날리기도 하고, 술취한 사람을 안마해 주고 돈 한 푼 받지 못하기도 했으며, 때론 문을 잠궈 놓고 추행을 하려고 잔인하게 때리는 사람도 만났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더듬어서 집에 돌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그녀는 의외로 담담했다. 어린 시절엔 고통이 닥칠 때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쳤지만 그럴수록 고통은 올가미가 되어 그녀를 괴롭혔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고통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오히려 고통에 친숙해졌다. 그렇게 되면서부터 그녀에게 고통은 고통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녀는 달동네의 엉성한 셋방에 살았는데 매서운 황소바람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바깥 기온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녀는 거기서 아이들의 기저귀 빨래도 하고 바느질도 했다. 손으로 더듬어서 바늘귀도 꿰고 연탄불도 갈았다. 이따금씩 손님이 찾으면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안마를 하러 갔다. 얼어붙은 서울거리를 달릴 때면 추위가 뼈 속까지 스미는 듯했다. 그녀에게 고통은 일상이고, 편안함이 오히려 예외였다. 일을 끝내고 돌아와 연탄불로 따뜻해진 방바닥에 몸을 누일 때면 알 수 없는 뭉클한 감동이 솟아올랐다.

“하나님, 이렇게 따뜻한 방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어떤 고난이든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된 그녀에게 다가온 은총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그녀의 머리는 어느 새 허옇게 변했다. 나는 평생을 어둠과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 그녀의 소망을 알고 싶었다.
“앞으로 남은 소원이 있다면 어떤 건 지요?”

내 물음에 그녀가 상냥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제게 남은 소망이 있다면 요. 그건…. 몇 푼 안되지만 저축해 놓은 돈으로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요.”
그녀의 맑은 얼굴에선 밝은 빛마저 스며 나왔다.
“더 어려운 사람이라뇨?”
그녀보다 더 힘들 사람이 누굴까 의아했다.
“가난해서 밥을 못 먹는 사람들과 등록금이 없어 공부를 계속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제가 모은 돈을 주고 싶어요.”


가슴 뭉클한 말이었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보고 싶은 대상만 보고 이해하고 싶은 생각만 이해한다. 결국 정작 봐야 할 대상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의 눈은 생명의 근원에 닿았다.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꿰뚫어보았다.

 

그날 그녀와 상담을 하면서, 내 삶에 누렇게 이끼처럼 끼었던 욕망을 조금은 닦아냈다. 지금 내가 어떤 고통으로 번뇌한다고 하더라도 그녀에 비하여 사치스런 고민일 뿐이다.

 

필자 : 엄상익 변호사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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