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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아줌마의 슬픈 하루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5. 11. 1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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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아줌마의 슬픈 하루 

 
"할아버지 이젠 그만 집으로 가세요."
"뭐라? 이 에미나이가 뭐라카노?"
"할아버지 벌써 몇 시간째예요?
저 장사하게 이제 그만 가 주세요. 네?"

"싫어 안 가! 아니 못 가!
내 돈 내고 내가 정당하게 사먹고 싶다는데
왜 못 팔겠다는 거야 응? 200원은 돈 아니야?"


위 대화 내용은 알콜 중독증세를 보이는
동네할아버지와 나의 대화 내용이다. 


남편이 사업을 하는데 수금도 안 되고 힘들어 해서
길가에서 떡볶이와 어묵, 순대 등등을 파는
포장마차를 한지 6개월째 접어들었다.
둘째 아이를 낳기 전인 4년 전쯤에도
해봤던 일이기에 한결 수월하긴 하지만,
가끔 이렇게 힘들 때가 많다.
 

포장마차 문을 열자마자 할아버지께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술이 취한 상태로
소주 한 병을 사 가지고 오셔서는
하나에 200원씩 하는 어묵을 하나 드시겠단다.
노인 분들이야 돈이 없는 걸 뻔히 아는지라
늘 소주를 사 오셔서 한 잔씩 드시는 걸
그냥 눈감아 드렸는데 오늘은 받아 줄 기분이 영 아니다.할아버지께서 200원 짜리 어묵 하나와
국물에 소주를 몇 시간 씩 앉아서 드시니
손님들이 왔다가도 눈살을 찌푸리고 가기 일쑤다.
추운 겨울날씨 만큼 내 마음도 오늘은 차가웠다.
 

문을 열자마자 오셔서
내 기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으시는
할아버지가 너무나 미웠다. 

아직 개시도 하기 전에 오셔서는
200원 짜리 어묵을 하나 먹어도
본인의 돈을 내고 먹으니 정당하다고,
못 팔겠으면 파출소에 가자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신다.
아침부터 술에 취하셔서 눈은 무섭게 충혈됐고
발음도 제대로 되질 않는다.
 

전엔 이런 할아버지가 싫어도 불쌍하고 안돼 보여서
그냥 하시는 대로 바라보았는데,
오늘은 할아버지께서 길에서 큰 소리를 치시고
나를 망신 주시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무슨 일인가 싶어서 몰려든다.
내가 오늘 이렇게 기분이 나빠서
할아버지와 다투는 이유는
엊그제 할아버지께서 술에 취하셔서
포장마차에 들르셨다.
 

"이 봐! 난 순대를 싫어 하니 순대 말고 내장만 줘.
내장 중에서도 간만 줘!"
술에 취하셨어도 또박또박
순대 말고 간만 달라고 하셨다. 

난 순대도 싸 드리겠다고 했지만,
할아버지께선 당신은 순대는 안 드시니
간만 달라고 하셨다.
 
마침 옆에 손님 한 분이 계셨는데,
우린 그냥 마주보며
할아버지의 술 주정을 받아들이며 웃었다. 

난 할아버지가 달라셔서 간만 썰어서
2,000원인 순대를 1,000원에 그냥 싸드렸다.
 

그런데 10분쯤 지났을까?
할아버지의 부인인 할머니께서 오시더니
아까 할아버지께서 싸 가신 봉투를
내게 내던지며 다짜고짜 큰 소릴 치신다.
 

"아니, 이 봐요! 아무리 술 취한 양반이
순대를 달라고 했기로서니
먹지도 못 할 간만 싸줘요?  

떽끼 나쁜 사람 같으니라구."
 

난 눈물이 나는 걸 간신히 참으며
할머니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할머니, 제가 간만 싸드린 게 아니고
할아버지께서 간을 좋아하신다고
간만 싸 달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할머니께선 술 취한 할아버지께
내가 간만 싸드린 걸로 오해를 하신다. 

마침 옆에 아까 계시던 손님이
조금전의 상황을 말씀해 주셔서 위기를 모면했다.
그때서야 할머니께서 믿으시며 조금 누그러지셨다.
난 할머니께 그냥 천 원을 돌려 드리고
할머니께서 가져오신 간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내 자존심마저 쓰레기통에 그렇게 쳐 박혀 버려졌다.
 

그 날 이후로 난 그 할아버지만 보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부터 나오려고 한다. 

그런데 오늘 또 오셔서는
내 지치고 아픈 가슴속에 불을 지르신다. 

개시도 하기 전에 술을 사오셔서
어묵 하나에 마시겠다고 하니
지난 번 일도 생각나고 해서
내 기분이 도저히 허락하질 않았다.
 

오늘은 울면서 할아버지와 싸웠다.


"할아버지 오늘은 그냥 가세요.
제가 어묵 돈 안 받고 그냥 싸 드릴게요.
집에 가서 드세요. 네?"
"됐어! 날 뭘로 보는 게야?"
"할아버지 저 장사해야 해요.  

할아버지께서 소주병을 이 곳에 놓고
오래 앉아 계시니까

손님들이 눈치만 보다 그냥 가잖아요.
여긴 술 파는 곳이 아니잖아요." 

"가라고 해!
지 까짓 것들이 뭔데 날 우습게 봐 엉?"
말도 안 되는 할아버지의 술 주정은
멈출 기세를 보이질 않았다.
 

난 그냥 길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울어버렸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추운 날 흐르는 내 눈물은 더욱 차가웠고
내 설움도 그렇게 차갑게 흘러내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봐도
부끄럽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내 자존심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고
서글프고 또 서글퍼서 울었다.
 

옆 건물의 단골 청년이 와서
할아버지를 겨우 설득해서 보냈다. 
종일토록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산다는 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고
수많은 파도를 헤치고 건너야 다다르는 바다 끝이지만
오늘 같이 힘든 날엔 온 몸에 힘이 다 빠진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섧은 마음으로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내 소중한 새끼 둘은 9시가 넘었는데,
아직 밥도 먹질 않고 TV만 쳐다보다가
내 아픈 가슴에 와락 안긴다.
 

서글픈 눈물이 주책 없이 마냥 흐른다.
오늘만 울리라. 오늘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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