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의 독서칼럼/무시로 책 읽기
박 종 국
제 아들은 책벌레입니다. 서너 살 때부터 책 읽는 아빠 모습을 보았던 까닭이겠지만, 집안 가득한 책들과 파묻혀 생활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그렇게 책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애써 책 읽으라고 끌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활화되고 습관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다그치지 않습니다. 책 읽으라는 흰소리가 다른 사람의 귀에 들리면 이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달아나 버립니다. 책은 강요에 의해서 읽어지지 않습니다. 저절로 읽혀져야 합니다. 누구나 경험하였을 겁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한 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요받았을 때 얼마나 화가 나고 원망의 눈빛을 보였습니까. 아이에게 그렇게 책을 권해서는 안 됩니다.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하도록 조근조근 배려해야 합니다.
여태껏 아이를 키우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게 하려면 우선적으로 책과 가깝게 지내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집안 곳곳에 책을 두고, 언제나 손 잡히는 곳에 책이 꽂혀야합니다. 예쁜 장식장을 따로 마련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침대 머리맡에도, 소파나 거실 탁자 위에도 좋습니다. 주방식탁 위에도, 베란다 창틀에도, 신발장 위에도, 화장실 변기 위에도 어디든 책이 놓일 자립니다. 쉽게 손닿는 자리에 책이 놓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더러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잘 꾸며진 갖가지 장식물이 눈에 띕니다. 비까번쩍한 생활도구들이 즐비하다고 해서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 보아도 읽을 만한 책 한 권 보이지 않을 때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은 마음만 조급해집니다. 그런 집일수록 음식 내놓는 그릇이 요란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가 안타까워집니다. 너무 심한 이야기같지만, 그렇게 겉모습에만 화려하게 치장하는 사람도 많은 듯합니다.
아이가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합니다. 부모가 아무리 다그쳐도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 오락게임, 텔레비전, 만화 등에 더 친숙합니다. 그게 바람직한 노릇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개의 부모는 아이의 그러한 여가문화를 이해하려 들지 않습니다. 무조건 텔레비전 끄고, 인터넷으로부터 멀어지기만을 강요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부모는 늘 텔레비전을 보고, 인터넷 오락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아이한테만은 관대하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아이가 기를 쓰고 조금이라도 더 컴퓨터에 매달리려고 바동댑니다. 그 결과는 뻔합니다. 아이를 닦달하는 소리만 높아집니다. 아이는 그렇게 해서 책을 읽지 않습니다. 먼저 부모가 일정시간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부모가 즐겨 책을 읽으면 아이는 저절로 따라읽습니다.
근데, 사성의 여의치 못합니다. 부모 입장이면 한주일 동안 잡다한 일상사에 소진한 뒤 공휴일만큼은 그냥 쉬고 싶습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낮잠을 잡니다. 쉰다고 해서 별다른 놀이문화가 없는 만큼 어느 집이나 휴일 풍경을 비슷합니다. 그러니 아이가 조금만 소란을 떨거나 컴퓨터에 매달리면 공연히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마침내는 까닭 없이 아내에게 불똥이 떨어집니다. 그것으로 집안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이 냉랭해집니다.
생각을 바꾸면 즐거운 일이 많아집니다. 휴일 가족 나들이도 쇼핑도 좋지만, 온 가족이 함께 가까운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아보세요. 무턱대고 의미 없이 먹고 마시기보다 한결 나들이가 즐거워집니다. 아이에게, 아내에게 책을 골라주고, 그것을 통해서 대화를 나눠보세요. 책은 그 무엇보다도 훈훈한 마음의 선물이 됩니다. 가족 모두가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함께 느끼는 여력이 커집니다. 아이의 눈에 비친 부모의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럽겠습니까. 아내의 마음에 남편이 얼마나 크게 자리하겠습니까. 그것만으로 건강한 나들이가 됩니다.
바빠서 그러지 못한다는 건 일종의 핑계거립니다. 가족을 위하는 성의가 부족해서 그런 거지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서점 가고, 도서관을 찾을 자투리 시간은 언제나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책은 크게 마음먹고 읽어어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독서법을 고집한다면 차라리 아니함만 못합니다. 오히려 정신 건강에 해롭습니다. 집안 곳곳에 책을 놓아둬 보세요. 자녀와 날마다 일정시간 책을 읽어보세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는 잠시 꺼 두어도 좋습니다. 짬이 날 때마다 한 줄씩 읽는 자투리독서가 소중한 생각을 일깨우고 사람 사는 향기와 교양을 늘려줍니다.
저는 잠깐이라도 바깥나들이를 할 때면 반드시 가방에 책을 두어 권 넣고 다닙니다. 책 읽기는 꾸준함이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독서는 언제 어디서나 한결 같아야 합니다다.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은 남다른 지식과 교양을 쌓는 데 힘을 기울일 때입니다. 어느 때고 다른 무엇보다 책 읽는 시간만큼은 소중하게 가져야 합니다. 해서 제 아들은 이제 심성 좋은 성인이 되었습니다.
ⓒ 박종국
<감성지휘자, 우리 선생님> 살림터.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