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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목욕탕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5. 1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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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목욕탕

 

박 종 국


주말 하루는 으레 동네 목욕탕에 간다. 다소 허름한 목욕탕이지만 주인이 나그럽고 물이 좋다. 하여 냉탕온탕 번갈아가며 한 시간 여 부시고 나면 한주일 피로가 싹 가신다. 아무리 좋은 사우나를 드나든들 동네 목욕탕 기분에 미치지 못한다. 한사코 사우나를 고집하던 친구도 동네 목욕탕의 여유를 만끽하고부터는 아예 단골이 되었다.


나 역시도 비까번쩍한 사우나보다 한적한 동네 목욕탕을 즐겨 찾는다. 그곳에 가면 사람들과 금방 마음 트인다. 다들 고만고만 사는 형편이 비슷한 까닭이다.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서로의 등을 쓱 밀어준다. 그네들과 나는 목욕만 같이 하는 게 아니다. 몸을 부시고 난 뒤에는 탈의실 평상에 앉아 그간 막막했던 세상사 물꼬를 튼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못난 세상을 싸잡지 않는다. 좋게 이야기하고, 너그럽게 공감한다. 나를 내세우기보다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향한 경청의 폭이 넓다. 마음이 착하기 때문이다. 분명 마음이 선량하면 모든 게 좋게 보인다. 사람의 마음은 일정한 음정을 가진 악기와 같다. 그래서 즐거운 일을 만나면 맑고 고운 소리를 낸다. 그렇지만 괴로운 일을 만나면 불협화음을 만들어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침묵으로 빠져들게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두 개의 침실을 두었는데, 기쁨이와 슬픔이가 산다. 한 방에서 기쁨이 깨었을 때, 다른 방에서 슬픔이 잠을 잔다. 슬픔을 깨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행복과 불행은 모두 마음에 달렸고, 행복한 생활 또한 마음의 평화에 좌우한다. 그렇기에 누구나 그 마음에 숨겨진 미치광이가 깨어 날뛰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동네 목욕탕에서 만나는 이들은 분명 기쁨의 침실을 소유한 자들이다.


마음처럼 부드럽고 엄한 대상은 없다. 날마다 수염을 깎듯이 각자의 마음도 매일 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번 청소했다고 언제까지나 방 안이 깨끗하지 않다. 그처럼 우리의 마음도 한 번 좋게 가졌다고 해서 늘 우리 마음속에 머물지 않는다.


한편 마음처럼 사악하고 변덕스러운 게 또 없다. 좋든 싫든 자기 편으로 붙들지 못하고 이랬다저랬다 자주 변하는 사람을 만나면 불행이다. 더구나 마음 없이 그냥 대하는 만남에는 항시 미운 구석이 보인다. 그래서 혹자는, 싫은 사람의 정원에서 자유로이 사느니 좋아하는 사람 곁에서 속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쪽이 훨씬 낫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마음처럼 아름다운 게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상대를 오래 소유하려든다면 그것은 오히려 그를 경멸하는 처사다. 위아래가 나눠지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서로 동등해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배려하고, 함께 발전해야 한다. 서로에게 보다 관심을 가져야한다. 날머다 서로의 좋은 점을 찾아내고 북돋워주어야 한다.


시냇물은 산을 만나면 몸을 좁혀서 가늘어져서 바위틈을 빠져나간다. 결코 불평하지 않다. 때론 평야를 만나면 해변에 누운 피서객처럼 게을러서 마냥 널브러지기도 한다. 땅위에서 나아가는 게 불가능하면 땅속으로 쓰며들거나 하늘로 올라가 구름으로 변신했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와 바다로 향하는 열정을 계속 이어간다. 참 좋은 사람을 만나고자 하거든 동네 목욕탕으로 가 보라. 그곳엔 아직도 어머니가 뚝배기로 끓여주시던 토장국 같은 순한 인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우리는 고급화된 사우나로 너무 많은 이웃을 잊어버렸다.

|박종국 207-28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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