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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제 이처럼 한하게 웃어 보았던가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6. 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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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제 이처럼 한하게 웃어 보았던가


박 종 국



벌써 삼십년 전의 일이다. 갓 스물 나는 대학 새내기였다. 그때는 누구나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으레 후미진 선술집 소주 한 잔으로 시대와의 불화를 달랬다. 영구 독재자의 꿈을 꾸었던 박통, 그가 심복으로부터 불덩이를 맞은지 채 일 년이 안 된 무렵이었다. 그러나 그 놀람도 잠깐, 그보다 더한 망나니들이 권좌를 꿰차고 무지막지한 일이 자행했다.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가 남도에서 붉디붉은 꽃향기를 타고 전해졌다.


나는 방황했다. 철권에 맞서 들끓어 오르는 민주화의 열망이 나를 달뜨게 했다. 자연 나는 강의실보다 군중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 흡인력은 대단했다. 집회 장소마다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사람들과 불끈 내지르는 함성소리 컸다. 체류탄 가스도 난무했었다. 그 무렵 학교는 군인들에 의해 닫혀버렸다. 얼떨결에 권력을 그러쥔 군부가 들불처럼 타오르는 민주화 열기를 저지하려는 의도를 가장 먼저 내보인 곳이 대학이었다. 그렇게 얼치기 군부 권좌는 나의 이십대 삶을 난삽하게 후벼팠다.  


세월은 살같이 빠르다. 어느덧 80년의 나는 지천명에 섰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하지만 지금 세상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민중의 삶은 오히려 더 가혹하다. 어디 하나 마음을 두고 빌붙을 굶이 없다. 정치는 국민의 열망과는 괴리된 채 오합지졸로 지리멸렬하고, 경제는 오직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데만 충직하다. 사회 전체도 괴리의 폭이 너무나 크다. 교육도 연일 덧난 상처를 꿰매기에 바쁘다. 누구하나 결단 난 사회병리를 치유하겠다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다들 그렇게 산다. 그래도 우리 사회가 이만큼 유지되는 건 80년의 봄을 무던히 이겨낸 그 힘 때문이다.


중년의 삶은 어떤 빛깔일까. 중년의 나는 새로운 대상보다는 오래된 걸 좋아한다. 반짝이는 아름다움 보다는 은근한 매력을 더 좋아하며, 화려하기보다 오래 남을 은근한 믿음을 꿈꾼다. 참을 줄도 알고, 숨길 줄도 알며, 은근히 내세울 줄도 아는 성김을 가진 나이다. 화딱지가 나면 조용한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으로 화를 달래기도 한다.


지천명에 서보니 그동안의 세월이 덧없다기보다 남을 탓할 까닭이 없다. 어쨌거나 중년의 삶을 든든하게 산 사람은 자기한테 주어진 몫에 대하여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중년에 이르면 자기 주변을 훑어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진다. 중년은 많은 색깔을 가진 나이다. 눈물이 많은 나이며, 새로움을 꿈꾸는 나이다. 중년은 진정한 사랑을 가꾸어갈 줄 알고, 아름답게 포기를 할 줄도 아는 나이다. 중년은 자기주위가 얼마나 소중한 지 안다. 그래서 중년은 앞섬보다 한발 뒤에서 챙겨가는 나이다.


중년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은 별딴 게 아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하루에 하나씩 즐거운 일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중년은 시대에 뒤떨어져 살아서는 안 된다. 젊은 사람과 더 많이 어울려 지내야할 나이다. 매사 느긋한 모습을 보일 때다. 그뿐만이 아니다. 후덕한 인간미를 갖춘 중년이어야 한다. 중년은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대우를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80년 5월, 그때의 삶을 반추하며 오늘에 섰다. 세상이 말끔하게 변했다. 대통령이 처신을 바르게 하니 나라 전체가 살아났다. 때문에 신명난다. 만나는 사람마다 입이 벙긋 즐겁다. 다들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물론 배 아픈 족속이 없지 않으리라). 우리 언제 이처럼 한하게 웃어 보았던가. 중년의 나잇살을 갖기까지 선연한 기억이 드물다.


박종국 2017-31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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