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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더불어 살아가는 한 소년의 성장기

박종국에세이/독서서평모음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7. 7. 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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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더불어 살아가는 한 소년의 성장기 
 조재도의 <이빨자국>

 
 
       박 종 국  
  

올림픽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그 자리에 장애인 올림픽(패럴림픽)이 개최된다. 그러나 ‘패럴림픽’ 은 올림픽 경기만큼 눈길을 끌지 못한다. 방송의 무관심 탓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좋지 않은 관습이다. 왜냐면 우리는 ‘장애’를 특정한 날, 특별한 행사 속에서만 만나기때문이다.

 

그런 점에 볼 때, 조재도의 성장소설 『이빨 자국』은 우리가 삶의 한쪽에 비켜 둔 장애문제를 생활의 중심으로 가져와 그것을 미시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이 책은 장애를 삶의 한 부분으로 안고, 장애와 더불어 살아가는 소년의 일상을 잔잔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은 중학교 2학년 학생인 ‘구승재’라는 아이의 눈을 통해 본 그네들의 이야기다. 성장하느라 팔다리가 길어 몸의 균형이 맞지 않는, 코밑이 거뭇거뭇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승재. 그러나 큰형이 장애인이기에 겪는 마음고생과 열등감을 숨기는 승재, 그런 아이가 결국 주위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열등감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자라난다는 이야기이다. 누군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가 모두 실제 일이냐고. 거기에 대한 나의 답은 이렇다. 먼저 구승재와 나는 어느 면에서 같고 또 어느 면에서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에 내 체험이 아주 없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소설이란 작가의 체험을 벽돌로 찍어 지은 집이라는 점에서." - 작가의 말 중에서

 

그렇다. 『이빨 자국』은 작가가 자신의 가족사를 바탕으로 우리가 마주보지 않았던 장애의 문제를 현실로 이끌어낸다. 그래서 이 소설은 소년의 성장일기를 꾸밈없는 문장으로 풀어놓으면서, 성장의 진정한 의미를 새삼 되짚어보게 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맺는 첫 번째 관계에서의 '상처'를 다루었다.

 

시골의 밤, 모두 잠든 어두운 시간. 말하지 못하는 형과 그에게 말을 가르치는 동생 둘만 깨어나곤 했다.

'왜 말을 못 할까?'

'형은 자기 생각을 뭐로 보여줄까?'

형은 대답은커녕 '엄마'라는 말 한마디만 겨우 따라하는 정도다, 동생의 질문은 부메랑처럼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오곤 했다. - 본문 중에서

 

결국 밤의 말을 찾던 그 소년이 바로 『이빨 자국』의 저자 자신이다. 『이빨 자국』은 작가의 유년에서 출발한 성장 소설로, 정신지체 장애인 형을 둔 작가의 가족사가 작품의 모티프다.

 

소년 조재도의 성장담은 소설의 화자 ‘승재’를 통해 마치 성실하게 써내려간 일기처럼 생생하고 담담하게 펼쳐진다. 때문에 이 고백적 소설은 현재의 시공간에서 숨 쉬는 한 소년 ‘구승재’의 삶으로 거듭난다.

 

소설은 승재가 오가는 집과 학교 두 공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승재네 집은 장애아 가정의 일상 그대로 보여준다. 정신지체장애인인 형 승운은 승재의 생활 속에 늘 함께 하는 불편한 존재다. 처마 밑에 하염없이 섰거나 버스 정류장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은 승운의 모습은 언뜻 평온해 보인다.

 

그러나 큰형 승운은 언제나 그 평화로운 풍경에 균열을 일으킨다. 승운은 승재의 방학숙제를 망가뜨리는가 하면, 다리 밑으로 떨어져 다치고, 사기를 치려고 마음먹은 이웃의 도구가 되고, 급기야 행방불명된다. 이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승운의 모습보다는 그를 둘러싼 가족의 모습에 더 밀착하게 된다. 때문에 화자인 승재를 비롯하여 아버지, 엄마는 우리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으로 드러난다.

 

아버지는 승운을 골칫덩어리로, 애초부터 소통이 불가능한 대상으로, 불운의 탓으로 생각한다. 해서 아버지에게 승운은 폭력의 대상이 된다. 그렇지만 승운의 수족이자 유일한 응원군인 엄마는 다르다. 엄마는 장애를 한없는 보살핌의 대상으로 여긴다. 그런 가운데 평범한 듯하지만 결코 예사롭지 않은 승재의 시선이다. 승재는 승운과 ‘장애’와 ‘소통’을 시도하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는다.

 

하지만 승재는 승운에 대한 관심을 접지 않는다. 그것은 감추고 외면하고 싶지만 그것이 바로 자신의 가족이 앓는 상처다. 상처는 상처를 숨기는 데서 치유되는 게 아니라 드러내는 데서 치유되기 때문이다. 승재의 시선 안에서 ‘소외’되지 않았으면서도 ‘소외’된 대상인 승운. 승재는 그 승운의 실체를 어둡고 구석진 형의 방에서 목격한다.

 

방에 들어서니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발에서 나는 고린내보다 더 심했다. 아마도 엄마가 바쁜 나머지 가을이 다 가도록 목욕 한번 시켜주지 않아서 더 그렇다.

방바닥엔 요와 이불이 깔려 있고 형이 입던 옷들이 아무렇게나 널렸다. 수건을 덧댄 베개에는 시커먼 때가 반질반질하게 묻었다.

아무리 보아도 이건 사람 사는 방이 아니다. 짐승의 우리도 이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자 코끝이 시큰해지며 눈물이 맺혔다.

형이 너무 불쌍했다.

한집에 살면서 나는 형이 집에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집에서 밥 먹고 집에 들어와 잠만 자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방에서 짐승처럼 지내다니. 엄마야 바빠서 어쩔 수 없다지만 나는 뭔가? 일주일에 한 번 청소만 해줘도 이렇게 더럽고 지저분하지 않을 게 아닌가? - 본문 중에서

 

승재가 그 퀴퀴한 방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 사회의 수많은 ‘외진 방’들이 떠오른다. 승재가 본 그 방의 실체는 우리가 가둬둔 이야기다. 소외된 현실의 또 다른 얼굴이다. 중학교 2학년인 승재의 최대 관심사는 이성친구도, 진로도 아닌 정신지체장애인 형이 속한 ‘우리 가족’이다. 그리고 장애라는 문제가 자리 잡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히 한 소년의 가족에 관한 사적비밀로 끝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공공연하게 숨기는 비밀이다.

 

소설의 또 다른 주요 공간인 학교에서는 ‘공언하기’, 즉 ‘자기 드러내기’의 노력이 펼쳐진다.  승재가 속한 특별활동 '만두빚어'반의 ‘마인드비전’ 수업은 소년소녀들의 내밀한 속사정을 풀어내는 장이 된다. 그네들은 이 수업을 통해 학교 안팎 어디에서도 털어놓을 수 없던 사소하고도 속 깊은 비밀이야기들을 나누고, 그 이야기 듣는 와중에 자신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진실게임을 벌인다. 그래서 '만두빚어'라는 기발한 별칭은 마치 만두처럼 자아를 빚어가는 이들의 진짜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종민’이 들려주는 고모 이야기는 장애인들의 세계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이해시킨다. 종민이가 장애인인 자신의 고모의 이야기는 우리가 소외 문제를 다루는 데 범하기 쉬운 오류에서 멀찌감치 벗어났다. 도덕, 윤리, 공동선의 의무로써 장애 문제를 대하기보다는 “또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과 이 세상이 어떻게 어울릴 지 고민한다. 종민의 솔직한 글과 행동은 승재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킨다. “쪽팔림은 순간이고 행복은 영원하다”라는 종민의 말은 수치와 상처가 비밀이라는 마법에서 풀려나야 한다는 이유를 건강한 소년다운 특유의 낙천성으로 대변한다.

 

소년 승재에 투영된 작가의 얼굴은 만두빚어반 선생님에게서도 찾는다. 작달막한 키, 안경 너머 반짝거리는 눈마저 실제 작가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만두빚어반 선생님은 작가의 현재를 반영한다. ‘마인드비전’은 학교 선생님인 작가가 실제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그 현장에서 영감을 얻은 소설 속 장면들에는 학생들의 글과 대화가 고스란히 실렸다.

 

그러나 이 소설의 결말은 마냥 낙천적이지 않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 엄마, 승재는 승운을 장애인 시설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한다. 쌀쌀한 초봄에 시작되어 첫눈이 오기 직전, 겨울이 끝나는 즈음 승재의 성장일기는 마치 계절이 돌아오듯, 그들의 장애는 그들 곁에 머무른다는 사실을 예견하게 한다. 새로울 게 하나 없는 결정이지만 이 마지막 장의 제목은 '새로운 결정'이다.

 

작가는 승재네 가족이 통과한 세 계절이 또 다른 시작을 예견하게 할 거라는 단순하게 암시한다. 그렇지만 그 외에도 우리에게 '새로운 결정'이라는 숙제를 제시한다. 함께 사는 게 옳은 결정인가? 모두가 더 쉽게 행복해지는 다른 방법은 없는가? 이는 앞선 종민의 이야기와 부딪치기에 더욱 문제적인 결론일 수밖에 없다. 즉, 작가는 장애 문제에 있어 어떤 입장도 취하 않는다. 우리 사회에 물음을 던지며 이 소설을 끝맺는다.

 

이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게 없다. 그만큼 소박하게 씌어졌다. 화려한 수식이나 과장도 없다. 그저 유유한 강물처럼 흐르는 문장으로 일기의 마지막 장을 닫는다. 그러나 현재의 청소년 문학에서 톡톡 튀는 형식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인터넷 소설과도 크게 차별화 된다. 이 점이야말로 이 소설이 담아내는 매력이다. 멋 부리지 않고, 흉내 내지 않고, 오직 자신의 문제에 골몰하는 승재는 반항심보다는 고민이 더 깊고, 내뱉고 표현하기보다는 세상의 말을 듣는다. 그가 꾸밈없는 담백한 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성장의 곰삭은 의미를 일깨운다.

 

『이빨 자국』의 마지막 장면에서 승재의 손등에 허옇게 남은 ‘이빨 자국’은 긴 여운을 남긴다. ‘이빨 자국’으로 대변되는 성장 과정의 상처는 승재가 더 이상 쪽팔리지 않고,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앙금은 말끔히 지워지지는 않는다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이러한 결말은 우리에게 사춘기적 쓸쓸한 성장의 한 모습을 발견하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빨 자국』전반에 스민 골계미와 문장의 힘 외에도 이 소설이 가지는 최대의 장점은 진솔함이다. 이는 교직에 몸담았던 작가의 실제 삶이 글 속에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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