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모두가 즐거운 명절, "웃어라 명절!"

박종국에세이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8. 2. 19. 11:16

본문

728x90

 

 

 

 

모두가 즐거운 명절, "웃어라 명절!"

 

정말 우리네만큼 귀소본능에 집착이 강한 민족은 또 없다. 물론 바다 건너 중국도 춘절이면 귀성인파로 일대 소동이 벌어진다. 때문에 외지로 돈 벌이 나갔다가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수천만 명의 민공(民工)을 운송하는 이른바 춘운(春運)은 매년 연례행사가 되었다. 해서 수천만이 일제히 수구초심 꼬리를 잇는다.

 

지금의 정치는 사납기가 그지없는 승냥이 떼와 같고, 경제는 하나뿐인 단속곳에 구멍나듯이 남루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벌써부터 뉴스에는 전국의 도로마다 고향을 찾아가는 차량의 물결로 비좁다. 나흘 연휴라 일찍 귀향을 서두르는 듯하다. 길은 막히고 더디가도 마음은 벌써 고향에 닿았다.

 

요즘은 한 붙이로 났어도 사는 곳 달라서 전국에 흩어져 사는 형제가족이 많다.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 지 오래다. 그러니 명절 때면 만나지 않고서는 못 견뎌 몸살을 앓는다. 그러다 고향집 마당에 들어서면 애틋한 향수가 씻은 듯 사라진다. 그런 까닭에 너도 나도 덩달아 귀성 대열에 나선다. 그게 우리네 사는 멋이다.

 

그러나 고향 가는 길이 다 좋아도 오직 한 사람, 며느리의 존재만큼은 그렇게 즐거운 게 아니다. 명절무렵이면 며칠 전부터 머리가 어질하다. 아무 탈 없이 지내다가도 시집의 ‘시’자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얼굴이 흙빛으로 까매진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며느리가 시집을 꺼려하지 않는다.

 

시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섭섭하다. 뜬구름같이 그냥 한번씩 다녀가는 시댁이 뭐 그렇게 어렵겠느냐고, 당신들만큼 너그러운 사람이 어딘냐고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다지 탐탁하지 않다. 결혼 생활이 오래됐건 갓 시집 왔건 간에 시집에 적응하기 어렵다. 더구나 형식을 앞세우는 집안이면 며느리는 더 안타깝다.

 

명절 시집에 도착하자마자 며느리들은 부엌데기를 면치 못한다. 모든 음식마련은 오직 며느리에게 맡겨버림으로써 시어머니는 냉정해지고, 시아버지의 무덤덤한 헛기침 소리 잦다. 때문에 며느리는 외롭다. 더구나 감당하기 힘들만큼 많은 일을 하는데도 수고한다는 말 한 마디 선뜻 건네지 않는 남편의 방관자적인 태도를 볼 때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극히 일부는 예외겠지만, 시집에서 며느리가 아들만큼 깍듯한 대접을 받는 존재는 못된다.

 

평소 살을 맞대고 살던 남편의 따사로움은 부모형제친척을 만난 순간 사라진다. 아내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집안 가득 즐거움이 넘쳐날수록 성찬 치다꺼리에 바쁘다. 며느리는 부엌 한 편에서 답답한 가슴을 쓸며 마른 눈물을 삼킨다. 그 순간 며느리들은 외롭다. 너무 비약적인 이야기일까?

 

며느리도 구정물 묻은 손을 털고 친정으로 달려가 부모형제를 만나고 싶다. 그런데도 며느리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런 내색도 하지 못한다. 그저 부엌데기로 그 많은 그릇들 닦고 부셔야한다.

 

남편 입장에서 아내의 설움을 한번쯤 생각해 보라. 명절마다 연례행사로 겪어야 하는 일 고생했다 아내의 젖은 손 따뜻이 만져보라. 되러 당연하다는 듯 ‘그것도 일이냐?’고 지청구 하지 마라.

 

이제 그런 명절맞이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빛나지도 않은 일들 며느리 몫으로만 미뤄두지 마라. 며느리는 시댁 종이 아니다. 자잘한 일 하나까지 갖다 달라, 차려달라 명령하지 마라.

 

손이 없나? 발이 없나? 간단한 먹을거리는 알아서 챙겨 먹어라. 그저 쉬운 말로 술상 차려라, 안주 내와라는 소리만 들어도 며느리는 스트레스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집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집안 남자들 손 까닥 하지 않는다. 권위주의 왕처럼 오직 대접만 받는다. 이것 가져와라, 저것 챙겨줘라 주문이 바쁘다. 그러니 몸 닳아가며 일하는 며느리들 시댁식구 시중들다 보면 지쳐서 물 먹은 솜뭉치가 된다. 어깨가 천근만근이다.

 

그러니 무엇 하나 내치지 못하고,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참아내는 마음은 오죽할까? 다감하게 챙겨주지 않는 남편의 존재가 얼마나 원망스럽겠는가? 며느리는 그렇게 명절을 맞는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겉치레만 치우쳐 양반입네 하는 가풍은 냉정하게 떨쳐내야 한다. 며느리는 쉽게 부려도 되는 몸종이 아니다. 자기 아들딸이 소중한 만큼 며느리에게도 똑같은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또 남자는 무조건 대접받아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도 바로 잡아야 할 때다. 이제는.

 

굳이 말리지 않아도 따뜻한 말 한 마디면 세상 며느리는 거안제미한다. 며느리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라. 명절에는 더욱더. 근데도 너는 그렇게 하느냐고 다그치면 할 말 없다. 일상적인 며느리의 입장을 대변했으니 못난 남자들이여 너무 성토하지 마라.

 

이제는 더불어 나누고, 함께 즐거워하는 따뜻한 명절을 보내야겠다. 어른들 눈이 두려워서 그랬다면 돌아오는 차 안이라도 좋다. 시댁식구들 수발에, 한시도 쉴 틈 없이 몸 닳아가며 애썼던 아내의 거칠어진 손을 꼭 잡아보라. 명절 뒷바라지에 파김치가 된 아내의 처진 어깨를 다독이며 ‘수고했다’는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보라.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설연휴 동안 명절음식 마련으로, 뒤치다꺼리로 지치고 힘들었을망정 ‘당신 수고했다’는 그 말 한 마디면 아내는 만족한다. 그것만으로도 더없는 남편 사랑에 겨워 콧날이 시큰해진다. 아내는 조그만 일 하나에 감동 받는다.

 

설 명절,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

 

__박종국또바기글

 

 

 

 

 

 

 

'박종국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날, 이런 놀이 어떨까요?"  (0) 2018.02.19
따뜻한 설명절 바라기  (0) 2018.02.19
부끄러움을 상실한 시대  (0) 2018.02.19
동네 목욕탕 풍경  (0) 2018.02.19
생각 차이  (0) 2018.02.19

관련글 더보기